정치가 교육을 삼킨 그날 교사의 존재감도 사라졌다
정치가 교육을 삼킨 그날 교사의 존재감도 사라졌다

 

▲ 최근 일부 시·도 교육청에서 제정한 ‘학생인권조례’가 도마 위에 올랐다. 조례안의 내용이 학생 인권 보호라는 미명 하에 지나치게 학생 중심으로 편중돼 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교사의 권리는 추락하는 결과를 불러왔다는 지적이 많다. 사진은 얼마 전 한 교사의 비극적 사건이 발생한 서울 서이초등학교 교문 입구. [사진=뉴시스]

 

최근 교사를 대상으로 한 학생·학부모의 폭행, 괴롭힘 등 교권침해 사례가 잇따르면서 일부 시·도 교육청에서 제정한 ‘학생인권조례’가 도마 위에 올랐다. 조례안의 내용이 학생 인권 보호라는 미명 하에 지나치게 학생 중심으로 편중돼 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교사의 권리는 추락하는 결과를 불러왔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학생인권조례가 교육계와 정치권의 특정 세력 주도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권력형 교육의 비극’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인구 절반 거주 서울시·경기도, 진보 정당 교육감·지방의회 주도 학생인권조례 시행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의 존엄과 가치 및 자유와 권리를 보장한다는 취지로 각 시·도 교육청이 제정한 조례다. 지난 2011년 경기도에서 처음 시행됐다. 앞서 2006년 17대 국회에서 진보 계열 정당의 주도로 비슷한 취지의 법안이 발의됐으나 사회적 협의가 필요하다는 반대 목소리에 부딪혀 결국 처리가 불발됐다.

 

그러던 중 2009년 당시 진보정당 소속으로 경기도교육감 선거에 출마한 김상곤 전 교육부장관이 교육감에 당선되면서 지금의 조례 형태로 추진되기 시작했다. 김 전 장관은 학생인원조례제정위원회를 구성해 조례안을 만들었다. 당시 위원회의 위원장은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이 맡았다. 해당 조례안은 민주당이 절대 다수를 차지한 경기도의회 교육위원회를 통과하면서 본격 시행됐다.

 

이후 진보 성향의 교육감이 이끄는 지역에선 유사 내용의 조례안이 대거 등장했으나 각 지역의 지방의회 사정에 의해 시행 여부가 갈렸다. 지나치게 학생의 인권 보호에만 초점을 둔 편향적 내용을 두고 시민단체와 교육단체의 반대 목소리가 상당했던 탓이다. 그럼에도 서울특별시, 전라북도, 광주광역시, 제주특별자치도, 충청남도 등 진보 정당 소속의 지자체장이 이끄는 지역에선 시점에 차이만 있었을 뿐 결국 시행으로까지 이어졌다.

 

 

▲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의 존엄과 가치 및 자유와 권리를 보장한다는 취지로 각 시·도 교육청이 제정한 조례다. 지난 2011년 경기도에서 처음 시행됐다. 사진은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사진=뉴시스]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거주하는 경기도와 서울시가 시행함에 따라 해당 조례안의 내용은 전국 각 지역 일선 교육현장에 상당한 여파를 미쳤다. 조례안과 전혀 무관한 지역에서도 조례안의 내용을 앞세운 학생과 학부모의 민원과 압박이 끊이지 않았다. 교사들은 극심한 심리적·물리적 압박에 시달렸고 시간이 흐를수록 교권도 서서히 약화돼 갔다.

 

휴대폰사용·담배휴대도 제재 못하는 교사들과 대놓고 투명인간 취급하는 일부 학생들

 

최근 교사에 대한 학생·학부모의 폭행·괴롭힘 등 교권침해 사례가 잇따르면서 학생인권조례 폐지론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학생인권조례안의 내용이 지나치게 학생·학부모 위주로 편향돼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학생인권조례안 논의 단계 때부터 꾸준히 지적돼 온데다 시행 이후 예상됐던 부작용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만큼 폐지가 시급하다는 게 여론의 중론이다. 일각에서는 조례안 시행을 주도한 세력에 대한 책임론도 제기되고 있다.

 

교육시민단체 등에 따르면 각 지자체에서 시행 중인 학생인권조례안은 학생의 인권 보호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상대적 위치에 놓인 교사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제약을 걸어 놓았다. 아예 대놓고 ‘금지한다’라고 명시한 내용도 상당수 존재한다. 그 중에는 교사의 자율성과 권리를 지나치게 침해하는 것으로 평가받는 내용도 다수 포함돼 있다.

 

일례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제4절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및 정보의 권리’ 항목에는 학생의 복장, 두발 등 용모에 있어 개성을 실현할 권리를 갖고 학교장 및 교직원은 이에 대해 규제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은 담배구입, 술집출입 등 학생들의 교외 일탈을 방지하는 교사의 노력 자체를 규제하는 식으로 악용되고 있다.

 

 

▲ 교육시민단체 등에 따르면 각 지자체에서 시행 중인 학생인권조례안은 학생의 인권 보호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상대적 위치에 놓인 교사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제약을 걸어 놓았다. 아예 대놓고 ‘금지한다’라고 명시한 내용도 상당수 존재한다. 그 중에는 교사의 자율성과 권리를 지나치게 침해하는 것으로 평가받는 내용도 다수 포함돼 있다. 사진은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주장하는 학부모 시민단체 회원들. [사진=뉴시스]

 

같은 목적으로 학생의 휴대전화 소지를 규제하는 행위를 막으면서 ‘정당한 사유’를 예외로 두고 있는데 정당한 사유라는 부분이 애매하다는 점에서 교사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다른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내용으로 평가되고 있다. 일선 학교 현장에서는 이 조항 때문에 교사에게 “휴대전화로 촬영 중이니 해볼 테면 해보라”는 학생이 나오고 학부모가 자녀에게 몰래 녹음을 시켜 교사가 아동학대를 했다고 신고하는 사례가 등장하기도 했다.

 

‘교직원은 학생과 교직원의 안전을 위해 긴급한 필요가 있는 경우가 아니면 학생의 동의 없이 소지품을 검사하거나 압수해선 안된다’는 내용도 논란거리다. 담배나 칼, 유해물질 등 청소년에게 해악이 되는 물건에 대해서도 압수할 권리가 없는 탓이다. 한국식품커뮤니케이션포럼(KOFRUM)에 따르면 만 12~18세 청소년 1258명을 대상으로 코니틴 검사를 통해 실제 흡연자로 확인한 청소년의 비율은 13.8%(142명)에 달했다.

 

교사는 학생에게 학습을 지시할 수도, 성적 향상을 요구할 수도 없다. 서울시 조례안 제5조에선 교사에게 성별, 종교,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 등과 더불어 성적 등과 관련된 차별적 언사나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또 제10조에선 학생의 휴식을 누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충분한 휴식시간과 휴식공간을 확보하도록 하고 있다. 일부 학생들은 성적 향상에 대한 교사의 교수를 차별이라고 반발하거나 적절한 학습 지시를 회피하기 위해 휴식권을 언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학생인권조례 시행 이후 교실 내에서 학생 인권과 교사 권한의 불균형은 ‘심각’ 수준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2021년 아동청소년 인권 실태 조사에 따르면 초중고교생 중 ‘학교에서 인권을 존중받는다’고 응답한 비율은 95.2%였다. 반면 한국교총의 2022년 설문조사에서 교사의 95.0%가 ‘교권 침해가 심각하다’고 답했다.

 

 

▲ 학생인권조례 시행 이후 교실 내에서 학생 인권과 교사 권한의 불균형은 ‘심각’ 수준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2021년 아동청소년 인권 실태 조사에 따르면 초중고교생 중 ‘학교에서 인권을 존중받는다’고 응답한 비율은 95.2%였다. 반면 한국교총의 2022년 설문조사에서 교사의 95.0%가 ‘교권 침해가 심각하다’고 답했다. 사진은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사진=뉴시스]

 

최근 교권침해 사례가 잇따라 등장하자 정부는 대비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윤 대통령은 어제(24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교권을 확립하는 것이 교육을 정상화하는 것이고, 결국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정책 철학에 기반한 것이다”면서 교권 강화와 관련한 교육부 고시 제정과 자치조례 개정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교원의 교육활동과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생활지도 범위와 방식을 규정한 개정 고시안을 8월 안에 마련할 것이다”고 밝혔다.

 

반면 학생인권조례 도입을 추진한 교육계 진보 인사들 은 여전히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학생인권조례 폐지에 대해 “단호히 반대한다”며 “학생의 권리 외 책무성 조항을 넣는 것은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교권 하락을 ‘학생인권조례’로 축소해 해석하는 것은 무리라는 입장을 피력했다. 박광온 민주당 원내대표는 “학생 인권과 교권은 상충하는 것도 아니고 양자택일의 문제도 아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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