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친아’ 청년의 슬픈 현실, 못 받고 많이 내는 ‘제로의 삶’
‘엄친아’ 청년의 슬픈 현실, 못 받고 많이 내는 ‘제로의 삶’

 

▲ 우리나라 직장인 중 상당수는 정부 혜택 등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아 실질적인 소득은 프리랜서나 고액 아르바이트 종사자에 비해 적은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지출액 중 가장 큰 부담을 차지하는 주거비 부분에 있어서도 정책 혜택 등에서 엄격한 소득기준이 적용돼 직장인들의 시름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사진은 출근 중인 직장인들의 모습. [사진=뉴시스]

 

우리나라 대다수 직장인들의 삶은 프리랜서나 아르바이트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각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을 안정적으로 벌어들이곤 있지만 정부 혜택 등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고 소득과 비례하는 세금 규모는 크다 보니 근로 강도나 시간에 비해 실질적인 소득은 오히려 적은 경우가 많은 것으로 평가됐다. 특히 지출액 중 가장 큰 부담을 차지하는 주거비 부분에 있어서도 정책 혜택 등에서 엄격한 소득기준이 적용돼 직장인들의 시름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좋은 직장 취직했을 땐 좋았는데…정작 현실은 세금부담·정책소외로 고만고만한 삶

 

통계청 등에 따르면 주거비는 우리 국민의 지출액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항목이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전체 지출 대비 주거비(주거·수도·수도광열비) 지출 비중은 12.5%에 달했다. 청년세대가 상당수를 차지하는 1인 가구의 경우 주거비 비중이 더욱 높았다. 올 1분기 기준 1인 가구의 평균 주거비 지출 금액은 월 평균 30만원이었다. 전체 소비 지출액(146만7000원) 대비 20.5%를 차지하는 규모다.

 

1인 가구 중 상당수는 주거비 부담을 체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연구원이 발표한 2021년 서울시 1인 가구 실태조사에 따르면 주거비 부담이 있다고 응답한 1인 가구 비중은 54.1%에 달했다. 특히 청년세대(20~30대)의 경우 66.8%가 주거비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 서울연구원은 “주거비는 필수로 나가야 하는 품목인데 1인 가구의 총 소득은 다인 가구보다 적다 보니 주거비가 부담이 상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여론 안팎에선 혼자 사는 청년을 위한 주거비 부담을 경감하는 정책적 지원이 시급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한창 돈을 모을 시기에 주거비에 많은 돈을 쓰다 보니 결혼이나 출산 등을 꺼리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어서다. 현재 정부 차원에서 청년세대를 위한 주거비 경감 대책을 쏟아내곤 있지만 불만의 목소리를 여전하다. 지원 대상을 정하는 데 있어 현실과 괴리된 기준을 적용하고 있어서다.

 

청년 직장인들의 상황은 특히 암울하다. 굳이 대기업이 아니더라도 어지간한 직장 월급만 받아도 곧장 기준에서 벗어나버리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국토부, LH 등에 따르면 1인 가구도 신청 가능한 생애최초 특별공급으론 추첨제 신청이 있다. 전체 특별공급 물량의 30%만이 추첨제 물량으로 배정된다. 확률적으로 신혼부부 등 다가구에 비해 불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 청년 직장인들은 소득으로 정책 혜택을 구분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반응이다. 연봉이 높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한 노력을 무시한 처사라는 반응이 적지 않다. 특히 소득과 비례하는 세금과 더불어 정책 혜택까지 줄어들 경우 실질적인 소득의 격차가 거의 사라져 노력의 가치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일부 직장인들은 근로의욕 저하가 불가피하다는 반응도 보였다. 사진은 독서실에서 공부 중인 청년들의 모습. ⓒ르데스크

 

그렇다고 신혼부부라고 해도 유리한 것은 아니다. 특별공급 청약에 신청하려면 5년간의 소득세 납부 이력과 일정한 소득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기준은 도시근로자 월 평균소득 160% 이하(초과 시 부동산 자산 약 3.3억 이하)다. 올해 기준 3인 이하 가구의 도시근로자 월 평균소득 160%에 부합하는 금액은 1041만5123원이다. 맞벌이 부부가 입사 후 5년이 지난 시기에 해당 금액 이상을 벌면 신혼부부 특공 신청이 불가능한 셈이다.

 

채용 플랫폼 사람인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대기업 초봉은 평균 3422만원이다. 일부 기업의 경우 5000만원이 넘는다. 대학생들이 가장 가고 취직하고 싶어 하는 기업 1위에 오른 삼성전자의 지난해 대졸자 초봉은 5300만원이다. 올해 기준 직장인 평균 연봉인상률은 4.6%였다. 부부 중 한 명이라도 대기업에 다닐 경우 신혼부부 특공 신청 자체가 어려울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당장 집을 사지 않더라도 전세나 월세를 저금리로 지원받을 수 있는 정책자금 신청요건도 소득기준을 따르고 있다. 1인 가구 청년 직장인이 신청할 수 있는 주거비 관련 지원정책으론 △중소기업 취업청년 전월세보증금대출 (중소기업청) △청년전세자금대출(LH) 등이 있다. 두 상품 모두 금리가 1~2% 수준으로 저렴하다. 시중은행 평균 전세자금대출 금리가 4%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이자 부담이 절반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도 아무나 신청할 순 없다. 까다로운 소득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중소기업 취업청년 전월세보증금을 신청 자격은 중소기업에 재직 중이며 연 소득 3500만원 이하여야 한다. LH 청년전세자금대출은 소득기준 도시근로자 월 평균소득 100%(299만원)를 충족해야 한다. 연봉으로 따지면 약 3600만원 가량이다. 대기업에 입사한 청년 직장인에겐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가혹한 현실에 좌절한 청년 직장인들…“약자 배려만큼 중요한 노력 인정”

 

청년 직장인들은 소득으로 정책 혜택을 구분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반응이다. 연봉이 높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한 노력을 무시한 처사라는 반응이 적지 않다. 특히 소득과 비례하는 세금과 더불어 정책 혜택까지 줄어들 경우 실질적인 소득의 격차가 거의 사라져 노력의 가치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일부 직장인들은 근로의욕 저하가 불가피하다는 반응도 보였다.

 

▲ [그래픽=석혜진] ⓒ르데스크

 

서울소재 한 대기업에 재직 중인 황선우 씨(33·남·가명)는 “초·중·고 10년에 대학 4년, 취업준비 2년까지 총 16년을 노력해서 어렵게 대기업에 입사했는데 막상 시간이 지나고 보니 주변 친구들과 삶의 수준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며 “실제로 현재 연봉이 6000만원 중반인데 세금 떼고 전세자금대출 이자 내고 하면 한 달에 통장에 남는 돈은 350만원 수준이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중소기업에 다니는 친구를 보니 연봉은 4000만원 정도 되지만 전셋집을 정책자금 대출로 구해 비슷한 보증금인데도 월 이자 비용이 내가 내는 돈의 3분에 1 수준에 불과하고 세금도 적다 보니 실제 통장에 남는 돈은 나와 큰 차이가 없었다”며 “약자 배려도 물론 중요하지만 지금처럼 조금 더 노력한 사람이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배려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경상북도 포항시 소재 한 대기업에 재직 중인 김준수 씨(35·남)는 “중소기업 사장 아들인 친구가 있는데 아버지 회사에서 형식적으론 연봉 3000만원을 받지만 모든 생활비를 부모님 카드로 생활한다”며 “그런 친구가 얼마 전 특별공급 청약에 당첨됐다는 소리를 들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나는 연봉 기준 때문에 신청조차 못 한다는 걸 알았는데 참으로 허탈한 감정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갖은 고생을 해서 좋은 회사에 들어가 월급 하나만 보고 사는 사람이 금수저로 태어나서 굳이 좋은 직장에 들어가지 않고도 부족함 없이 사는 사람 보다 정책에서 소외받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연봉이 높다고 세금은 세금대로 내고 정책 혜택도 못 받으니 매일 같이 다람쥐 쳇바퀴 도는 삶만 사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요즘엔 삶의 낙도 없고 일할 의욕도 생기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전문가들도 소득이 낮은 청년 근로자에 대한 배려도 중요하지만 정책 혜택이 역차별로 이어질 경우 자칫 사회 발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서진형 경인여대 교수(경영학과)는 “정부의 청년 정책 대부분이 소득 기준이 설정돼 있는데 사실 일반 중견기업 이상만 다녀도 기준을 충족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며 “그러다 보니 실질적인 소득 측면에서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식이면 힘들게 노력해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의미가 사라진다. 노력해서 얻은 성취 때문에 피해보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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