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하거나 저지르거나…청소년 연루 범죄의 도화선 ‘불법도박’
당하거나 저지르거나…청소년 연루 범죄의 도화선 ‘불법도박’

 

▲ 최근 온라인 불법도박에 빠지는 청소년들이 늘고 있면서 제2, 제3의 부작용 우려도 커지고 있다. 최근 발생하는 청소년 범죄 중 상당수가 불법도박과 깊이 관련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하교 중인 청소년들.(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뉴시스]

 

불법도박이 온라인으로 옮겨가면서 생겨난 청소년들의 도박중독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도박중독 자체는 말할 것도 없고 거의 100%에 가까운 확률로 제2, 제3의 부작용을 낳고 있다. 도박할 돈을 마련하거나 빚을 갚기 위해 거리낌 없이 범죄를 저지르는 식이다. 도박이 발단이 된 청소년 범죄 수위는 성인범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심지어 청소년들이 저지른 범죄라곤 믿기 어려울 정도의 끔찍한 사건도 적지 않다.

 

학교에선 자고 방과 후엔 도박하고…시간·장소 구애 없이 불법도박 일삼는 청소년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가 케이스탯리서치에 의뢰해 발표한 ‘2022 청소년 도박문제 실태조사’에 따르면 재학 중 청소년 도박 문제 위험집단은 4.8%에 달했다. 100명 중 5명이 도박문제에 노출돼 있다는 의미다. 2년 전인 2020년 조사 당시에 비해 약 2배 가량 증가한 수치다. 또 경찰청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불법 도박으로 검거된 청소년은 총 381명이나 됐다.

 

도박을 끊지 못해 병원 진료를 받는 청소년들도 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도박중독으로 진료를 받은 청소년은 △2017년 837건 △2018년 1032건 △2019년 1328건 △2020년 1597건 △2021년 2269건 등으로 5년 새 무려 3배 가까이 늘었다. 도박 중독 자체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대부분 병원을 찾길 꺼려한다는 점에서 실제 도박중독 청소년 수는 더욱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도박에 빠지는 청소년들이 급격하게 늘어난 배경에는 온라인 불법도박의 등장과 코로나19 펜데믹 등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으면서 마땅한 제재 장치도 없다 보니 청소년들도 쉽게 도박에 손을 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코로나19로 원격수업이 확대되면서 스마트폰, 테블릿PC 등의 이용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자연스레 온라인 도박을 접할 확률도 높아졌다.

 

▲ ⓒ르데스크 [그래픽=석혜진]

 

르데스크가 만난 청소년들이 전한 실상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적지 않은 학생들이 학교, 학원 가릴 것 없이 도박을 하고 있으며 방과 후나 쉬는 시간, 심지어 수업 중에도 도박을 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중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김수형 군(가명))은 “주변에 도박을 하는 친구들이 꽤 많다”며 “대부분 재미 삼아 하지만 일부는 완전 빠져 사는 애들도 있다”고 귀띔했다.

 

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홍은혁 군은 “중학교 1학년 때 사다리 게임을 시작으로 몇 개월 동안 도박에 빠져 살았다”며 “부모님께 들킨 후 2달 가량 스마트폰을 압수당하면서 자연스럽게 도박과 멀어지게 됐는데 그 때 같이 하던 친구들 중에 지금도 여전히 도박을 하는 친구들이 꽤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 친구는 빌린 돈을 갚기 위해 부모님 몰래 알바를 하기도 하는데 학교 수업시간 내내 조는 모습을 보면 안쓰러운 느낌도 든다”고 덧붙였다.

 

도박자금 벌기 위해, 도박 빚 갚기 위해 범죄 선뜻…청소년 일탈의 도화선 ‘불법도박’

 

청소년 도박 문제는 중독 자체도 그렇지만 또 다른 부작용을 낳는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사안으로 평가된다. 도박 자금을 마련하거나 빚을 갚기 위해 절도, 사기, 금품갈취, 폭행 등 각종 강력 범죄를 저지르는 청소년들이 늘고 있다. 범죄의 수위 또한 갈수록 높아져 성인이 저지르는 범죄와 비견해도 결코 죄질이 가볍지 않은 실정이다. 도박이 청소년 비행·탈선의 도화선이 되고 있는 것이다.

 

▲ ⓒ르데스크 [그래픽=석혜진]

 

한국도박문제 예방치유원(이하 예방치유원)이 지난해 9~11월 케이스탯리서치에 위탁해 도박 게임을 해 본 경험이 있는 청소년 6968명에게 도박으로 인한 피해 경험을 물은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14.9%는 주변 사람에게 돈을 빌린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또 학교생활에 문제를 겪었다(9.2%), 남의 돈이나 물건을 훔친 경험이 있다(9.1%),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이 있다(8.8%) 등의 답변도 나왔다.

 

도박에 빠져 돈을 빌린 청소년들 중 상당수는 빚 때문에 범죄의 길로 빠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 2020년 소년범의 강도 범죄 동기 중 1위는 ‘유흥·도박비 마련(21.9%)’이었다. 또 경찰청의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범죄자 범행동기’ 통계를 보면 도박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범죄는 총 2110건이나 발생했다. 범죄 유형은 강도 뿐 아니라 사기, 폭행, 성범죄, 절도, 금품갈취 등으로 다양했다.

 

일례로 지난해 11월 춘천지법 원주지원 형사1부(신교식 부장판사)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사기 등의 혐의로 기소된 고등학생인 A군에게 징역 장기 5년, 단기 4년을 선고하고 1650만원을 추징했다. 소년법상 만 19세 미성년자에겐 장기와 단기로 나눠 형을 선고하는데 수감 생활에서 모범적인 태도를 보이면 장기형을 채우지 않아도 출소가 가능하다.

 

 

▲ 도박에 빠져 돈을 빌린 청소년들 중 상당수는 빚 때문에 범죄의 길로 빠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 2020년 소년범의 강도 범죄 동기 중 1위는 ‘유흥·도박비 마련(21.9%)’이었다. [사진=픽사베이]

 

당시 검찰에 따르면 A군은 마약 판매상의 지시를 받고 필로폰을 수거해 인천과 수원 일대 60여곳에 나눠 보관하다 구매자가 나타나면 보관한 장소를 알려주는 식으로 판매했다. 또 중고물품을 인터넷이 올린 후 돈만 받고 물건은 보내주지 않는 식의 사기로 총 100명으로부터 1800만원 상당을 편취해 도박자금으로 사용했다. A군이 마약을 팔고 사기를 벌인 결정적 이유는 도박자금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도박에 빠진 청소년들은 범죄의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을 뿐 아니라 타인의 강압에 못 이겨 범죄에 가담하는 경우도 빈번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에 따르면 최근 청소년들 사이에 일종의 모집책을 심어 놓고 주변 친구들에게 도박을 권유하는 식으로 회원을 모집한 일당이 검거됐다. 이들 일당은 도박을 하다 돈을 부족한 청소년들에겐 하루 10% 이상의 초고금리로 돈을 빌려주는 고리대금업도 병행했다. 돈을 갚지 않으면 모집책을 통해 위협을 가하고 경우에 따라선 폭행까지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청소년의 도박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일탈에서 그치지 않고 사회 전체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는 만큼 철저한 단속과 강력한 처벌을 통해 하루빨리 해결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은 “청소년들이 도박을 게임으로 착각해 손을 댔다가 중독까지 이르는 사례가 빠르게 늘고 있다”며 “특히 개인의 일탈에서 그치지 않고 절도, 사기, 폭력 등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2차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청소년 도박 문제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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