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은 뚫기 쉽죠”…무방비 노출된 청소년 전자담배 실태
“온라인은 뚫기 쉽죠”…무방비 노출된 청소년 전자담배 실태

 

▲ 2020년까지 감소하던 청소년 액상형 전자담배 흡연률이 최근 다시 증가하며, 원인으로 온라인에서 유통되는 니코틴 액상이 지목된다. 온라인판매점 대부분이 신분증 검사 없이 액상 구매가 가능했다. 사진은 미국에 사업자를 둔 온라인 전자담배샵에서 판매중인 니코틴 액상.[사진=누리집갈무리]

  

#동두천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심지연(56·가명) 씨는 “교사 생활만 20년째다보니 척하면 누가 담배 피웠는지 알 수 있는데 액상형 전자담배는 냄새가 하나도 안 나서 도저히 알 수가 없다”며 “과거에는 담배 피우는 학생들을 찾아 훈계했지만, 이제는 찾는 것조차 불가능한 수준이다”고 말했다. 이어 “전자담배가 생김새가 얼핏보면 샤프심 케이스나 USB처럼 보여 더 그렇다”고 덧붙였다.

 

최근 청소년의 액상형 전자담배 흡연이 급증하면서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미성년자가 구매할 수 없는 니코틴 액상이 온라인에선 무분별하게 유통되는 데다 액상형 전자담배는 연초나 궐련형 전자담배와 달리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 크기가 작고 디자인도 특이하다 보니 적발조차 쉽지 않다.

 

액상형 전자담배는 2003년 처음 등장해 전 세계에 빠르게 확산됐다. 국내에는 2010년부터 각종 전자담배를 판매하는 이른바 베이핑샵이 늘어나면서 본격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했다. 문제는 청소년들의 액상형 전자담배 흡연률도 덩달아 증가했다는 점이다.

 

청소년 전자담배 흡연 급증…“들킬 위험도 적고 구하기 쉬워요”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률은 성인과 유사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2019년까지 지속적으로 증가했던 전자담배 흡연율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주춤했다가 지난해부터 다시 증가세다. 특히 여성의 경우 지난해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률 4.2%로 최대치를 기록했다. 

 

▲ 니코틴 물품은 허가권 없이 판매·재판매는 불법이다. 온라인에서는 커뮤니티와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전자담배 거래가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 사진은 액상을 판매하는 커뮤니티 글과 트위터 대리구매를 통해 전자담배를 구매한 채팅 내역. [사진=누리집·트위터갈무리]

  

청소년의 액상형 전자담배 흡연률이 증가하는 배경엔 무엇보다 연초형 담배보다 니코틴 액상 등을 구하기 쉽다는 점이 지목된다. 동두천 소재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박기한(17·가명)군은 "액상은 온라인에 널려 있어서 구하는 게 어렵지 않다"며 "해외사이트를 통한 직구도 가능하고, 수제 액상 사이트도 있고, 아니면 대리구매를 통해 살 수도 있다"고 밝혔다.

 

박 군이 소개해 준 사이트에는 다양한 종류의 전자담배와 액상이 판매되고 있었다. 액상뿐만 아니라 기기와 카트리지 등 전자담배 흡연에 필요한 모든 물건이 진열돼 있다. 전자담배를 구입하는 과정에서 성인임을 인증하는 주민등록번호 확인이나 휴대폰 확인 등의 인증절차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국내에서 온라인 니코틴이 포함된 액상 판매는 엄연히 불법이지만 온라인 사이트의 경우 대부분 해외에 사업장을 마련하고 해외에서 판매하다보니 국내법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일부 온라인 업체는 일종의 편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니코틴이 포함되지 않은 원액 액상과 고농도 니코틴을 따로 구매하면, 업체 측에서 니코틴을 첨가하는 일명 ‘후첨’ 방식이 대표적이다.

 

온라인 전자담배 유통경로 다양…미성년자 구매 규제책 마련 시급

 

청소년들이 온라인 니코틴 액상을 구하는 또 다른 경로는 중고마켓과 대리구매다. 전자담배 커뮤니티 중고거래 게시판에는 액상을 판매한다는 글이 하루에도 수십 개씩 올라와 있다. 물론 19세 미만은 가입할 수 없지만, 부모님 명의 아이디를 통해 가입만 한다면 이후 아무 절차 없이 무통장 입금만으로 액상 구매가 가능하다.

 

▲ 온라인과 다르게 오프라인 베이핑샵들은 대부분 청소년들에게 액상을 절대 판매하지 않는다. 신분증 확인은 물론이고 일부 베이핑샵은 검사기까지 구매해 청소년 판매 방지에 노력하고 있다. 사진은 신분증 지문 검사기를 설치한 베이핑샵. ⓒ르데스크

  

온라인을 통한 대리구매도 비일비재하게 이뤄지고 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에 ‘액상 대리구매’라고 검색하면 수많은 대리구매 업자들이 나온다. 이들은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돈만 내면 누구에게나 전자담배와 액상을 판매한다. 미성년자의 전자담배 구매가 지나치게 손쉽게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강북에서 베이핑샵을 운영하는 이창우씨(37)는 “오프라인 매장에선 신분증 검사는 물론이고, 지문 검사 기기까지 들여 청소년 구매를 방지하는데 앞장서고 있다”며 “온라인에서 불법으로 판매하는 업자들로 인해 동종업계 종사자들까지 싸잡아서 욕을 먹고 있는 상황이다”고 밝혔다. 기자가 방문한 대부분 전자담배 매장에는 19세 미만에게 판매 안 한다는 문구와 신분증 검사기기가 구비돼 있었다.

 

청소년의 전자담배 흡연이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선 연구가 아직 진행 중이지만 성인보다 유해성이 더 크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액상형 전자담배가 청소년의 니코틴 중독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는 이유에서다. 니코틴 의존도가 높아지면 두통, 우울, 불안, 집중력 저하, 짜증, 졸음 등의 금단 증상이 나타난다.

 

전자담배로 시작해 연초 담배까지 피우는 복합흡연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아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언숙 교수(인제대학교 의과대학 가정의학과)는 “청소년기에 전자담배 사용은 니코틴에 노출을 쉽게 하면서 니코틴 중독을 유발하게 되고, 지속적으로 니코틴에 노출되면 성장기 뇌피질에 영향을 줘 불안, 학습능력 저하, 약물남용 등 건강위해가 발생한다”며 “청소년 시기 높은 니코틴 의존도와 복합사용 상관관계가 보이고 있어 개인의 건강뿐 아니라 공중보건학적으로도 심각한 문제로 작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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