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여부 보단 ‘뉴진스 하니’에 관심…괴롭힘 금지법 실효성 논란 여전
사실여부 보단 ‘뉴진스 하니’에 관심…괴롭힘 금지법 실효성 논란 여전

최근 뉴진스 하니 사태를 계기로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정작 해당 법이 실효성을 갖추고 있는지 여부에 대해선 의구심어린 목소리가 나온다. 괴롭힘 여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는 데다 사업주가 자체 판단한 뒤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다보니 현장에선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뉴진스의 따돌림 의혹은 앞서 지난달 11일 민희진 전 대표의 해임 이후 불시에 올라온 라이브 방송을 통해 알려지게 됐다. 당시 하니는 “하이브 사옥 복도에서 다른 연예인과 매니저에게 인사했는데 매니저가 ‘무시해’라고 말했다”며 “왜 (우리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이후 관할 고용노동청인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서울서부지청에는 민원이 잇따라 제기됐다. 이에 고용 당국은 해당 사안이 근로기준법에서 금지한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지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근로기준법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직장 내 괴롭힘’을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라고 정의하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한 개정 근로기준법이 2019년 7월부터 시행됐음에도 불구하고 근로자의 피해 신고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지난 4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직장 내 괴롭힘 신고는 모두 1만28건으로 이는 하루 평균 27.5건으로 전년보다 12% 늘어난 것으로 밝혀졌다. 신고 유형별로는 폭언이 32.8%로 가장 많았으며 부당인사가 13.8%, 따돌림·험담이 10.8%로 그 뒤를 이었다.

 

▲ 개정된 근로기준법에는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된 사용자의 의무에 대해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잘못의 판단을 사용자에게 맡기고 있다. [사진=AI이미지/MS bing]

  

개정된 근로기준법에는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한 사용자의 의무에 대해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지만 잘잘못에 대한 판단마저 사용자에게 맡기고 있다. 사실상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했을 때 사용자가 자율적으로 판단한 뒤 문제를 해결하는 식이다.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했는지 여부를 파악하는 것조차 힘든 데다 온전히 기업에 사건 해결의 책임을 떠넘기다 보니 현장에선 피해자 보호보단 문제를 회피하는 경향이 뚜렷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금 협상이나 승진 등에서 또 다른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 쉬쉬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3년차 직장인 송은빈 씨(27·여)는 “주로 상사에게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는 경우가 많을텐데 지금처럼 직관적이고 구체적인 판단 기준이 없다면 개인 입장에서는 상사를 선뜻 신고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기업의 입장에서 판단하고 처벌을 내리는 것 자체도 신고를 망설이게 되는 요인 중 하나”라며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객관적으로 해당 사안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판결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을 밝혔다.

 

국내와 달리 일부 해외 국가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을 판단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해놓은 상태다.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했을 경우 기준에 맞게 판단한 뒤 정부적 차원에서 처벌하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캐나다 퀘백 주의 경우 지난 2024년 근로 기준법을 개정했다. 개정법에는 ‘괴롭힘 및 폭력’의 기준을 분명하게 마련했다. 퀘백 주는 ‘규정된 행위, 행동 또는 언사를 비롯해 노동자에게 불쾌감, 모욕감 또는 그 밖에 신체적·정신적 부상이나 질병을 초래할 것이라 예상할 수 있는 모든 행위, 행동 또는 언사를 말하며, 성적인 성질도 포함한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퀘백 주에 있는 모든 기업의 사용자와 노동자는 직장 내 괴롭힘을 방지하는 교육을 의무적으로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했을 경우 기업이 나서서 해당 사안을 조사하는 것이 아닌 주 직장 위원회 및 위원자 또는 보건안전대표가 참석해 처벌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사용자는 관련된 조사에 참여할 수 없다.

 

노중기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하루에 8시간 이상 직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직장 내 따돌림을 없애기 위해서 처벌 수위를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판단 기준을 먼저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해외의 사례가 모두 우리에게 적합한 게 아닌 만큼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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