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학가·역세권 금싸라기 땅에 새겨진 저출산의 비극
서울 대학가·역세권 금싸라기 땅에 새겨진 저출산의 비극

저출산 여파로 서울에서도 문을 닫는 학교들이 속출하고 있다. 서울 합계출산율이 0.59명까지 떨어진 만큼 폐교 숫자는 계속해서 늘어날 전망이다. 문제는 폐교 이후 방치된 학교 부지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통상 학교 부지는 건물, 운동장 등을 포함해 상당한 규모에 달하는 탓에 지역 흉물로 전락한 곳도 여럿 존재한다. 폐교 부지의 활용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주차장·산책로 등으로 전락한 학교…금싸라기땅 방치에 지역 주민 시름 한가득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올해 서울 공립초등학교 취학 대상자는 5만9492명이다. 지난해 6만6324명보다 10.3% 줄어든 수치다. 입학 전 국외 이주나 취학 유예를 선택하는 경우까지 포함하면 실제 초등학교 1학년 수는 취학 대상자보다 적다. 초등학교는 규모가 줄거나 아예 사라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실제로 학생 수 240명 이하인 소규모 초등학교는 2022년 42개에서 2027년 80개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이미 폐교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지역은 말할 것도 없고 서울에서까지 폐교 사례가 늘고 있다. 얼마 전 화양초등학교는 개교한지 40년 만에 폐교했다. 서울에 위치한 초등학교 중 홍일초(2015년), 염강초(2020년), 공진중(2020년) 등에 이어 벌써 네 번째 폐교 사례다.

 

주목되는 점은 출산율 하락으로 폐교 숫자가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 기정사실화로 여겨짐에도 불구하고 폐교 부지 활용에 대한 제대로 된 가이드라인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학교 부지 대부분 규모가 적지 않은데다 교통망이 어느 정도 확충돼 있다는 점에서 국가 자산의 낭비 논란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저출산 여파로 문을 닫는 학교는 점점 더 늘어날 전망이다. 사진은 반려동물 산책로로 전락한 학교 운동장 트랙. ⓒ르데스크

 

얼마 전 폐교한 화양초등학교 부지도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자리하고 있음에도 사실상 방치되다시피 한 상황이다. 아이들이 뛰어놀던 운동장 절반은 인근 주민들을 위한 주차장으로 나머지 반은 반려동물을 위한 산책로로 변해있다. 학교 건물은 펜스로 막혀있고 따로 사용되진 않고 있다. 학교를 찾는 사람들도 아이들이 아닌 산책하러 나온 노인들과 커피를 들고 앉아 있는 청년들인 것으로 파악됐다.

 

지역 주민들은 학교 부지가 방치되는 상황에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인근의 한 부동산 관계자는 “바로 길 건너편에 건국대학교와 세종대학교가 있고 역과 거리도 5분 정도밖에 안 걸려 입지만큼은 정말 좋다”며 “잘만 활용된다면 지역에 구심점이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 소상공인은 “대형 공영 주차장을 만들면 주민뿐만 아니라 놀러 오는 사람도 늘어 상권 확장에도 좋을 것 같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한 지역주민은 “대학교, 시장 상권이라 정작 토박이 주민들이 이용할 만한 문화시설이 없다”며 “화양동 주민센터도 작아 양로원과 도서관밖에 없는 상황에서 다양한 스포츠 및 문화 공간을 제공하는 복합문화센터 부지로 활용되면 좋겠다”고 주장했다.

 

현재 화양초등학교 활용 방안은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의 협의가 늦어지면서 구체적인 계획조차 없는 상태다. 시교육청은 ‘화양미래교육문화원’을 서울시는 청소년 숙박시설인 유스호스텔을 방안을 각각 내세우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폐교 활용 방안에 대해서는 교육청과 협의 중이고 구체적인 용도에 대해서는 검토 중이다”고 밝혔다.

 

폐교도, 부지 활용도 전부 재단 재량…사립학교 폐교에 지역 주민만 속앓이 

 

▲ 인근 주민들은 방치된 폐교의 안전 및 치안 문제를 우려했다. 사진은 녹슨 정문이 지키고 있는 은혜초등학교 전경. ⓒ르데스크

 

일부분이나마 주차장으로 활용된 화양초등학교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2018년 폐교한 은평구 은혜초등학교 부지는 수년째 활용방안을 찾지 못해 마을 흉물로 전락한 상태다. 르데스크가 직접 찾은 은혜초등학교 부지는 연신내역에서 10여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음에도 전혀 활용되지 않고 있었다. 우편함에 가득 쌓여 있는 우편물들은 이 학교가 얼마나 오랫동안 방치돼 있었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학교 주변은 슬럼가나 다름없었다. 예전에 운영됐던 문방구는 폐업한 상태였고 학교 담당 곳곳은 담배꽁초 등 쓰레기로 어지럽혀져 있었다. 은혜초등학교가 6년째 방치된 이유는 토지 소유주인 재단이 어떠한 결정도 내리지 않고 있어서다. 통상 학교가 문을 닫으면 교육당국이나 지자체에서 활용방안을 검토하는데 사립학교는 사실상 민간 재산이라 교육청이나 구청이 간섭할 수 없다.

 

학교 부지의 방치가 장기화되면서 인근 주민들의 불만을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한 지역주민은 “밤마다 집에서 학교가 보이는데 폐교 이후 너무 방치되니까 저녁에 볼 때마다 좀 무서워 보기 싫다”며 “인근 청소년들이 학교에 들어가서 음주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 한밤에 소음이 들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학교는 지역사회의 중심 역할을 해 온 만큼 재활용에 있어서도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병환 순천대학교 교육행정학 교수는 “학생 수 감소로 인한 학교 시설을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는 방안을 마련하여야 한다”며 “폐교의 활용 방안을 결정할 때에는 해당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공공시설과 지리적, 환경적 조건과 지역주민 의견을 반영하되 학교라는 교육적 의미가 전제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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