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저출산 대책의 일환으로 추진 중인 ‘일·가정 양립 정착’ 시도를 둘러싼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일·가정 양립의 핵심인 육아휴직 제도 개선안을 두고 여전히 중소기업에는 ‘먼 나라 이야기나 다름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자금이나 인력에 여유가 없는 중소기업의 경우 아무리 정부가 일부 보전을 해준다 해도 유아휴직 급여와 기간이 늘어나는 게 부담이라는 지적이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사업주는 물론, 소속 직원들까지 모두 “육아휴직자 한 명이 발생하면 주변 피해가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특히 사업주들은 대체 인력을 채용하는 데 여러 가지 어려움이 뒤따른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당장 사람을 뽑기가 어려운데다 일이 익숙해지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돼 주변 직원들의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또 육아휴직자가 복귀할 경우 인력과잉에 따른 인건비 증가도 부담요인 중 하나로 지목됐다.
저출산 해결 칼 빼든 尹정부 첫 번째 시도는 ‘중소기업 육아휴직’ 활성화
정부가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공식 선언하며 저출산 문제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가장 먼저 일·가정양립, 양육, 주거 등 3개 분야로 구분한 뒤 특성에 맞는 해결책을 내놨다. 이 중 일·가정 양립과 관련해 정부가 집중한 부분은 육아휴직이었다. 특히 정부는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금이나 인력에 여유가 없는 중소기업 소속 근로자를 타깃으로 한 내용에 집중했다. 중소기업 근로자가 전체 근로자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육아휴직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탓에 저출산 사태 해결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실제로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국내 772만3867개 기업체 중 771만3895곳이 중소기업이다. 비율로는 전체의 99.9%에 달한다. 근로자 수로 따지면 국내 전체 근로자의 80.9%가 중소기업에 종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 육아휴직 제도에선 다소 동 떨어져 있는 게 현실이다. 2022년 기준 육아휴직 사용자 수는 19만9976명에 달하지만 이들 중 62.7%(12만5484명)는 ‘300인 이상 기업체’ 소속이었다.
정부 등에 따르면 현행 월 150만원인 육아휴직 월 급여(통상임금의 80%) 상한액을 최대 250만원으로 올린다. 첫 3개월은 최대 250만원, 이후 3개월은 200만원, 6개월 이후는 160만원 등으로 조정한다. 1800만원인 연 지급액 상한액도 2310만원으로 인상한다. 육아휴직 급여의 25%를 복직 후 6개월이 지나야 주는 사후지급 제도도 없애고 육아휴직의 분할 사용 횟수를 2회에서 3회로 확대한다. 2주만 사용하는 ‘단기 육아휴직’ 제도를 도입하고 가족돌봄휴가, 배우자출산휴가 등도 시간 단위로 쪼개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의 경우 자녀 대상 연령을 8세 이하에서 12세 이하로 넓히고 최대 사용기간을 24개월에서 36개월로 확대한다. 주변 동료 눈치 때문에 육아휴직 사용이 꺼려진다는 반응을 의식해 월 20만원 수준의 ‘동료 업무분담 지원금’도 신설한다. 출산 가정에 주는 아빠 출산휴가 기간도 10일에서 20일로 늘리고 3회까지 분할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부모 모두 육아휴직을 3개월 이상 사용할 경우 현행 1년으로 제한돼 있는 총 기간을 1년 6개월로 연장한다.
“사람 뽑는 것도 문제, 뽑고 나서도 문제…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경력직 충원”
그런데 정부가 ‘인구 국가비상사태’까지 선언하며 마련한 대책을 두고서도 일선 기업 현장에선 여전히 시큰둥한 반응이 주를 이루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전히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정부가 정책의 타깃으로 삼고 있는 중소기업들의 반응이 예사롭지 않다. 여전히 정책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 열악한 현실이 바뀔지는 미지수라는 반응이 적지 않다.
르데스크 취재 결과 중소기업에서 가장 많이 나온 현실적 고충은 바로 대체인력과 관련된 문제였다. 공교롭게도 사업주든 근로자든 같은 사안을 지목했다. 사업주들은 대체인력 충원 과정이 순탄하지 않다는 점과 향후 육아휴직 근로자가 복귀했을 경우 해고가 어려워 인건비 중복 지출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언급했다. 근로자들 역시 새로 충원된 인력의 업무 적응 기간 동안 과도한 업무가 몰리는 게 부담이라고 토로했다. 양측 모두 스스로 마련한 해결책으론 ‘경력직 채용’을 언급했다.
경기도에서 5인 이상의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황중원 씨(56·남·가명)는 “우리 같은 중소기업은 자금이나 인력이 빠듯하게 돌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육아휴직자가 한 명 생기면 그 때부터 고민이 많아진다”며 “당장 사람을 뽑는 것도 쉽지 않다 보니 1년 계약직 채용은 사실상 불가능하다시피 하고 결국 정규직을 뽑을 수밖에 없는데 이럴 경우 나중에 육아휴직자가 복귀하면 인력 과잉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서울에서 5인 이상의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강주옥 씨(63·여·가명)는 “육아휴직자가 한 명 생기면 회사 입장에선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며 “정부가 일부 자금을 보전해준다 해도 말 그대로 일부일 뿐이고 결국 부담이 커지는 것은 매한가지다 보니 아무래도 더 이상 출산 계획이 없는 경력직을 선호하게 된다”고 귀띔했다.
근로자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서울의 한 중소기업에 재직 중인 김성관 씨(44·남·가명)는 “기존 동료 중에 육아휴직자가 나오면 새로운 인력을 뽑거나 주변 동료가 일을 나눠서 하거나 둘 중 하나인데 새로운 인력을 뽑아도 곧장 업무 투입이 어렵다 보니 한동안은 업무가 과도하게 몰리는 게 사실이다”며 “그러다 보니 내심 신입 보단 경력을 뽑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저출산 문제 해결이나 경력직 선호 현상에 따른 청년 실업 해소를 위해서라도 중소기업에 육아휴직 문화 정착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동시에 중소기업 현실 여건 상 육아휴직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선 육아휴직 이후의 인력과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노동유연성 확대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경제 단체 관계자는 “육아휴직 문화 정착을 위해선 사업주의 부담을 덜어주는 게 중요하다”며 “사업주가 재량껏 근로시간 등을 조절해 인력과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 등이 효과적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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