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블랙핑크 낳은 K-팝 생태계 근간 흔드는 ‘배신 리스크’
BTS·블랙핑크 낳은 K-팝 생태계 근간 흔드는 ‘배신 리스크’

BTS·블랙핑크 등 세계적 뮤지션을 낳은 K-팝 생태계의 근간을 흔들만한 치명적 약점이 노출됐다. 자회사(레이블) 대표의 경영권 탈취 의혹에서 비롯된 모회사와의 갈등 사태로 K-팝의 핵심 자산인 아이돌 그룹 육성 시스템의 한계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성공 확률이 극히 낮은데다 바늘구멍 확률을 뚫고 성공을 한다 해도 통제 불능 변수인 ‘인간의 감정’에 좌지우지되는 불안한 수익구조에 ‘돈맥경화’ 가능성이 국내·외에서 언급되고 있다.

 

툭 하면 터지는 ‘소속사 vs 연예인·제3자’ 분쟁에 소속사 권리 보호 빠진 전속계약서 도마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하이브는 특유의 ‘멀티 레이블(Multi Lable)’ 시스템으로 K-팝 아이돌 육성 시스템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멀티 레이블’은 자회사(레이블)가 아이돌 육성부터 관리까지 전담하고 모기업인 하이브는 후방 지원만을 담당하는 시스템을 일컫는다. 각각의 자회사가 컨셉, 음악적 색깔 등에서 자신들만의 뚜렷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보니 하이브는 각기 다른 색깔을 지닌 아이돌 그룹들을 여럿 보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자회사 대표의 경영권 탈취 의혹에서 불거진 내부 갈등으로 멀티 레이블 구조에 대한 평가가 바뀌고 있다.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쌓은 공든 탑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치명적 결함을 지니고 있다는 견해가 적지 않다. 갈등이 벌어지게 된 핵심 원인이 데뷔 2년 만에 1000억대의 수익을 벌어들이는 아이돌 그룹의 거취 문제와 관련 깊기 때문이다. 자회사의 독립이 현실화 될 경우 하이브는 엄청난 캐쉬카우를 눈 뜨고 잃게 되는 셈이다.

 

엔터테인먼트(이하 엔터)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사태에 대해 “K-팝 아이돌 육성 시스템이 안고 있던 잠재적 위기가 표면화된 것이다”고 입을 모았다. 그동안 꾸준히 벌어져왔던 일들이 하이브 내홍 사태로 좀 더 널리 알려졌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엔터업계 등에 따르면 시장에서 통용되는 표준전속계약서가 과거 노예계약 논란으로 여러 차례 수정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연예인 보호’에만 치우치다 보니 소속사의 권리 보호 규정이 배제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 [사진=뉴시스]

 

이후 인기를 얻고 난 후 소속사 권리 보호 규정의 취약성을 역이용해 전속계약을 해지하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았다. 아예 노골적으로 연예인에게 접근해 기존 소속사보다 좋은 조건을 제시해 계약해지를 유도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일례로 앞서 ‘큐피드’라는 곡으로 글로벌 흥행에 성공한 걸그룹 ‘피프피피프티’는 데뷔 7개월 만에 소속사를 상대로 전속계약 효력정지가처분을 냈다. 정산 의무 불이행, 건강 보호 무시, 지원 부족 등을 이유로 들었다.

 

당시 소속사는 전속계약 해지 요청 배경에 제3자가 있다며 프로듀서 안모 씨가 멤버들을 꼬드겨 소속사 이전을 노리고 벌인 짓이라고 주장했다. 양측의 갈등은 법원의 가처분 신청 기각과 원고의 항고 취하로 일단락됐지만 ‘피프티피프티’는 ‘배신돌(배신과 아이돌의 합성어)’이라는 오명을 쓰며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신뢰가 깨진 어트랙트는 일부 멤버와의 전속계약을 해지하고 계약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도 청구했다. ‘피프티피프티’는 그룹 자체가 완전히 공중분해 된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엔터업계 관계자 P씨는 “엔터산업 자체가 사람에 투자해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다”며 “시쳇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백날 키워봐야 거위가 알을 안 낳으면 손 쓸 도리가 없는 게 지금의 엔터업계가 처한 현실이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전속계약 된 연예인에게 접근해 소속사 이전을 꼬드기는 행위, 그리고 꼬드김에 넘어가 연예인이 키워준 소속사를 배신하는 행위 등을 방지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엔터업계 관계자 I씨는 “성공 확률에 비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데다 설령 대박이 난다 해도 다른 기획사나 사람이 멤버들을 꼬드겨 빼 가면 소속사 입장에선 눈뜨고 당할 수밖에 없다”며 “계약서가 있다곤 하지만 이런저런 꼬투리를 잡아 계약해지를 요구하고 법정공방까지 가게 되면 다툼 기간 동안은 활동도 요구할 수 없고 기껏 키워낸 가수의 이미지 타격도 불가피하기 때문에 일단 가수 이탈 조짐이 생긴다면 그냥 끝났다고 보면 된다”고 성토했다.

 

실패하면 돈 날리고 성공 하면 연예인 뺏기는 K-팝 민낯에 ‘돈맥경화’ 가능성 전망

 

▲ [그래픽=김상언] ⓒ르데스크

 

주목되는 사실은 ‘사람’이라는 통제 불능 변수에 손 놓고 당할 수밖에 없는 국내 엔터기업의 현실이 종국엔 우리나라 문화강국의 씨앗을 뿌린 K-팝 산업 전체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나마 지금까지는 ‘성공만 한다면 투자금 회수와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는 믿음 덕분에 K-팝 생태계가 유지됐지만 만약 ‘성공 후에도 결과물을 장담할 수 없다’는 불신이 퍼진다면 누구도 아이돌 그룹을 육성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엔터업계의 중론이다.

 

실제로 국내 한 엔터기업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보이그룹 한 팀을 육성하는 데 어림잡아 3년 간 약 60억원 가량이 투입된다. 세부적으론 △트레이닝 및 관리 4억원 △앨범 제작비(1년 2장 기준) 51억5000만원 △매니저 등 보조인력 채용(2년) 1억3000만원 △연습실 임차료(2년) 9500만원 △숙소 임차료(2년) 8200만원 등이다. 걸그룹의 경우 기간은 동일하지만 비용적인 측면에선 보이그룹의 절반 수준이 투입된다.

 

전직 엔터업계 종사자 K씨는 “보통 아이돌그룹 한 팀을 데뷔시키려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2~3년의 연습기간은 기본이고 비용 또한 최소 수십억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이 들어간다”며 “보통 연습생의 가능성을 홍보하고 투자를 받아서 가수를 육성하는데 뜨자마자 계약 분쟁이 벌어지면 누가 엔터기업에 투자를 하겠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어트랙트에 이어 하이브까지 연이은 전속계약 분쟁 이슈는 K-팝 산업에 대한 투자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고 우려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그동안 K-팝 관련 산업에 투자수요가 몰린 이유는 확률은 낮지만 성공할 경우 엄청난 수익이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며 “그러나 지금처럼 계약분쟁 이슈로 성공 이후에도 수익을 장담하기 어려운 구조라면 투자를 꺼릴 수밖에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돈이 마르면 산업이 위축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장기적으론 국가 문화산업 발전에도 엄청난 리스크라고 봐야 한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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