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태로운 농협은행 내부통제, 이석용 행장 입지 ‘흔들’
위태로운 농협은행 내부통제, 이석용 행장 입지 ‘흔들’

최근 농협은행의 내부통제에 또 다시 구멍이 뚫리면서 이석용 행장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취임 초부터 농협은행의 내부비리 근절을 외치며 ‘청렴 농협’을 내세웠지만 각종 비위행위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면서 관리부실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온다. 은행의 반복되는 내부통제 실패는 국민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져야한다는 지적이다.

 

농협은행 안팎에서는 이 행장의 조기퇴진마저 거론되고 있다. 시기상 강호동 농협중앙회장 취임과 맞물려 농협 금융계열사 CEO가 대거 물갈이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이 행장이 남은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물러날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금융당국에서도 내부통제 실패와 관련해 금융사 CEO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어 이 행장의 입지가 줄어들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번에 농협은행에서 발생한 금융사고는 110억원에 달하는 업무상 배임이다. 농협은행에 따르면 대출업무를 담당한 직원이 지난 2019년 3월 25일부터 지난해 11월 10일까지 담보물 가치를 부풀려 실제보다 많은 대출액을 내줬다. 아직 배임 사고로 발생한 손실액 규모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배임 행위가 4년이 넘도록 장기간 발생했다는 점에서 손실 규모가 더 커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농협은행은 해당 직원을 형사고발한 데 이어 향후 인사위원회를 열어 징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형사고발이 이뤄진 만큼 해당 직원의 고의성 여부는 경찰 수사를 통해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에서도 이번 농협은행에서 발생한 배임 사건에 대해 검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농협은행 관계자는 “횡령이 아닌 배임 사건으로 자체 검사를 통해 파악했고 조사 결과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할 예정이다”며 “내부통제 강화에 대한 노력을 이어나갈 것이다”고 말했다.

 

농협은행이 이번 금융사고를 두고 자체 감사에서 발견했고, 횡령이 아닌 배임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부실한 내부통제에 대한 비판을 피하긴 힘들어 보인다. 그간 농협은행은 은행권 내에서도 유독 내부비리 발생 건수가 많아 내부통제 시스템의 관리 감독 강화 및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을 꾸준히 받아왔기 때문이다.

 

지난해만 해도 농협은행에서 2건의 횡령사고가 발생했다. 최근 7년간 17건의 횡령사고가 발생했고, 횡령금액만 31억원에 달했다. 전체 횡령금의 28.9%는 회수조차 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내부직원이 횡령한 대상은 은행의 시재금뿐 아니라 고객 예금, 공과금 수납대금까지 다양했다. 비단 이러한 금융사고는 횡령에 그치지 않는다. 배임을 포함해 각종 금융사고에 이르기까지 농협은행의 금융사고 발생 빈도와 규모는 은행권 내에서도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석용 청렴농협 슬로건 무색, 내부통제 관리부실 책임론 부상

 

▲ 이석용 행장 취임 이후에도 농협은행 금융사고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면서 그가 강조한 청렴 농협 슬로건이 무색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이석용 농협은행장.[사진=NH농협은행]

 

농협은행의 도덕적 해이를 막지 못한 내부통제 시스템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지만 이 행장 취임 이후에도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그가 취임 초부터 강조했던 ‘청렴 농협’ 슬로건이 무색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이번 금융사고의 경우 이 행장 취임 이후까지 이어져왔지만 뒤늦게 발견한 만큼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거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앞서 지난해 1월 취임한 이 행장은 금융사고 근절을 통한 ‘청렴 농협’을 취임 일성으로 내걸었다. 윤리경영 실천 결의대회를 열어 대내외적으로 내부통제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정작 내부통제 시스템 개선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여부에 대해선 의문부호가 붙을 수 밖에 없다.

 

금융당국이 은행권 금융사고에 엄정한 잣대를 들이밀고 있다는 점도 이 행장 입장에선 부담이다. 지난해 은행권에서 대규모 횡령·배임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자 금융당국은 내부통제 관리 관리부실 책임을 금융사 CEO에게까지 확대한다고 강조했다. 내부통제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선 CEO의 강력한 개선 의지가 필수라는 점을 상기한 결과다.

 

지난해 이복현 금감원장은 금융회사 내부통제와 관련해 “반복적이고 중대하고 국민들이 수용할 수 없는 형태의 내부통제 실패에 대해서는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든 최고재무책임자(CFO)든 책임을 져야 한다”며 금융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선 금융사 대표의 개선의지를 강조했다.

 

농협은행 안팎에선 이 행장이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한 채 조기퇴진할 수도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간 농협중앙회장이 바뀔 때마다 의례적으로 농협 금융계열사 CEO에 대한 물갈이 인사가 이뤄져 왔다.

 

지난 2016년 김병원 전 회장은 중앙회장에 취임할 당시 이경섭 농협은행장과 김용복 농협생명 대표, 이윤배 농협손보 대표 등으로부터 사표를 제출받았다. 2020년 이성희 전 회장 역시 취임 한 달여 만에 이대훈 농협은행장과 홍재은 농협생명 대표, 최창수 농협손보 대표 등으로부터 사표를 받았다. 당시 이대훈 행장의 경우 농협은행 호실적을 이끈 데다 임기도 9개월여 남겨놓고 있었음에도 조기퇴진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강호동 회장이 7일부터 농협중앙회장 임기를 시작하는 만큼 농협 금융계열사 인사에 대대적인 변화가 이뤄질 거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여기에 이 행장의 경우 내부통제 실패로 인한 관리부실 책임까지 떠안게 되면서 조기퇴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 한 고위인사는 “이미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가 용퇴를 결정한 만큼 농협 금융계열사 CEO의 인사는 확정됐고, 시기의 문제로 비춰진다”며 “농협은행은 금융계열사 중에서도 핵심인 만큼 강 회장이 추진하는 지역농협 강화를 위해서라도 그와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인사로 교체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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