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말해도 처벌’ 사실적시 명예훼손 비판론 재점화
‘진실 말해도 처벌’ 사실적시 명예훼손 비판론 재점화

[지금 대한민국<551>]-사실적시 명예훼손 논란 ‘진실 말해도 처벌’ 사실적시 명예훼손 비판론 재점화

소비자 권리 침해 문제점 도마…“스스로 검열하게 만들어”

르데스크 | 입력 2024.04.22 14:09
[사진=뉴시스]

 

 

최근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피해자가 진실을 말할 수 없게 억압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거나 소비자로서 마땅히 제공받아야 할 정보가 제한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이 헌법상 위헌이라는 주장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은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에게 징역형 또는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는 법이다. 단 고발의 공익적 목적으로 인정되면 처벌하지 않는다. 그러나 공익적 목적의 기준이 모호하고 추상적이란 점이 문제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성형외과 시술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해당 병원에 대한 불만 리뷰를 올린 한 A 씨가 모욕죄로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A 씨는 커뮤니티에 성형외과 병원을 특정하고 불만 섞인 글을 올렸다. A 씨는 “한 쪽만 푹 패이게 만들고 법무팀으로 넘겼다”며 “이 정도 실력이면 의사 자질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해당 병원 정보를 카페 회원들과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A씨가 사용한 용어들을 보면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모욕적인 표현으로 피해자를 모욕하려는 미필적인 고의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며 “다른 사람에게 의사 이름을 알려주는 등의 A씨 행위는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정당행위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판결에 대한 여론은 정반대다. 오히려 사실적시 명예훼손과 모욕죄가 소비자 권리를 무시하는 악법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다. 한 누리꾼은 “A씨가 올린 사진만 보더라도 당사자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알 수 있다”며 “억양이 다소 강하긴 했어도 증거들도 첨부한 사실이고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보를 공유한 것 아니냐”고 A씨를 두둔했다.

 

 

또 헌법에서 보호하는 소비자 권리에 위반되는 법이란 점도 지적받고 있다. 소비자 기본법 4조는 ‘소비자가 물품을 선택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는 권리' 그리고 '소비자가 사업자의 사업 활동 등에 대하여 의견을 반영시킬 권리가 있다’고 적시돼 있다.

 

▲ 일부 소비자들은 알 권리를 주장하며 제품 및 서비스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더 자유로워 져야한다고 주장한다. 사진은 신경 증세를 보여 동물병원에 입원한 렉돌 품종 고양이. [사진=동물보호단체 라이프]

 

최근 논란이 된 고양이 사료 사태에서도 비슷한 불만이 제기된 바 있다. 지난주 동물보호단체 라이프에 따르면 21일까지 163가구의 고양이 263마리가 급성 신경·근육 병증을 보였고, 이 중 94마리가 폐사했다. 이상 징후를 보인 고양이들의 공통점은 특정 제조원에서 올해 1~4월 만든 사료를 먹은 것으로 조사됐다.

 

심인섭 라이프 대표는 “전국적으로 고양이의 연령이나 품종과 무관한 피해가 나타났으며 현재까지 확인된 공통점은 사료 이외에는 없다”며 “일부는 상호만 달리하고 제조 공장의 주소는 동일한 곳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문제의 제조원이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생산한 사료는 약 20종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사료 목록을 소비자들이 알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해당 사료 품목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사료 회사에 대한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비자들은 특정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암암리에 해당 사료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기도 했다.

 

한 소비자는 “물론 사료가 문제라고 명확하게 나오진 않았지만 문제가 생긴 고양이들의 공통분모로 조사된 건 사실 아니냐”며 “한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사안에서 명예가 우선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말 못 하는 동물이라 해도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정보는 알리는 것이 정상 아니냐”고 지적했다.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도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대한 비판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국내에서 ‘명예’를 지키기 위해 헌법과 공익에 반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골자다. 전문가들은 특정 명예를 위해 헌법에서 지정한 다른 권리들이 위축될 우려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서초 소재 한 법무법인 변호사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는 사건들이 생각보다 많다”며 “특히 피해를 입은 소비자의 표현행위가 많이 제약돼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 순간에도 스스로 검열을 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고 말했다.

 

김성돈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진실한 사실의 적시는 사회적으로 명예를 재조정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사회적 의미 차원에서 불법성을 갖고 있지 않다”며 “사실 적시를 금지함으로써 추구되는 목적은 과장된 명예 내지 허명의 보호이지 진정한 의미의 명예 보호가 아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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