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서울 대신 지거국 장학생” 고물가·집값폭등이 낳은 ‘웃픈’ 현실
“인서울 대신 지거국 장학생” 고물가·집값폭등이 낳은 ‘웃픈’ 현실

“비싼 등록금에 월세까지 내면서 서울에서 대학 다닐 필요 못 느껴요. 서울서 아등바등 사느니 덜 벌더라도 속 편하게 지방에서 살래요”

 

‘사람은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도로 보내라’는 유명한 이야기도 이젠 옛말이 됐다. 예전에는 말은 제주도로 가야 성공하고 사람은 서울로 가야 성공한다는 믿음에서 흔하게 쓰였지만 요즘 청년세대 중엔 오히려 이 말에 공감하지 않는 이들이 상당하다.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고물가 압박까지 거세지자 우수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인서울 대학’을 포기하는 지방 학생들이 속출하고 있다.

 

광주·전남 1등 신랑감 전기남(전남대·기아)…인서울 대신 지거국 입학자 꾸준히 증가

 

르데스크가 입시 컨설팅 업체 지원 사례를 조사한 결과, 최근 전국에 걸쳐 인서울 대학 대신 지방거점국립대학교(이하 지거국)을 선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상대적으로 타 지역에 비해 양질의 일자리 숫자가 적은 것으로 평가되는 충청도 지역에선 같은 사례가 드물었다. 높은 집값과 생활비 부담, 지역 학생에 유리한 지방 기업의 채용방식 등이 원인으로 꼽혔다.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유정수 씨(20·남)는 인서울 상위권 대학인 중앙대학교 자연과학대학과 부산대학교 공대에 장학생 두 가지 선택지를 두고 결국 후자를 택했다. 그는 “예전 같으면 당연히 중앙대를 택했겠지만 요즘엔 오히려 지방 국립대가 취업에 유리한 경우가 많아 고민 끝에 부산대를 택했다”며 “본가가 부산이라 월세, 식대 등의 비용도 아낄 수 있어 훨씬 이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상북도의 지역거점국립대학(이하 지거국)인 경북대학교에 재학 중인 정범석 씨(19·남)는 “입시 당시 경희대 공대에도 합격했지만 최종적으론 경북대 공대를 선택했다”며 “경희대를 졸업한 후 운 좋게 서울의 좋은 회사에 취직한다 해도 어차피 집값도 비싸고 생활비도 많이 들어 오히려 지방에서 적당한 곳에 취직을 하는 게 삶의 질은 훨씬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 [사진=전남대학교·뉴시스]

 

광주광역시가 고향이며 전남대학교 공대에 재학 중인 정희철 씨(24·남·가명)는 “광주에서는 전남대학교를 나와 기아자동차에 취업하는 남자를 소위 ‘전기남’이라 부르며 1등 신랑감으로 꼽는다”며 “광주에서도 충분히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데 굳이 복잡한 서울에서 비싼 월세를 주고 외로움을 느끼면서 살고 싶지 않다”고 강조했다.

 

지방 출신 학생들에게 서울에서의 자취는 경제적 부담이 큰 것으로 파악됐다. 일례로 지난해 부산대학교 공대 등록금은 1년에 500만원 수준으로 4년간 2000만원 가량의 학비를 지불해야 한다. 같은 기간 중앙대학교 자연과학대학의 1년간 학비는 800만원 수준으로 4년간 약 3200만원이 든다. 여기에 월세와 생활비 등 매달 100만원 씩 들어간다고 가정하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4800만원이 추가로 들어간다. 체감물가 역시 지방에 비해 서울이 높은 편이다.

 

대치동의 한 학원에서 온라인 입시 컨설팅을 담당하고 있는 정현중 상담사(35·남)는 “저출산으로 지방대학의 위기가 눈앞에 닥친 현실에도 오히려 지거국을 선호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며 “해당 지역에서 쭉 살았던 학생들의 경우 서울살이에 부담을 느끼는데다 요즘엔 지역인재 전형 규모가 커져 취업에서도 유리한 측면이 많아진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지역 인재’ 합격자 3명 중 2명은 지거국 출신, 제도 허점 노려 서울서 지방 유학 사례도

 

실제로 지거국 졸업자는 공공기관의 채용에 있어 큰 혜택을 받는다. 현 정부의 ‘혁신도시 조성 및 발전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지방 혁신도시로 이전한 공공기관은 해당 소재지 대학·고등학교 졸업자를 전체의 30% 이상 의무적으로 채용해야 한다. 다만 지방은 대학이 많지 않은데다 그마나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몰리는 곳이 지거국이다 보니 지역인재 우선 채용 전형 합격자 중 상당수는 지거국 졸업생으로 채워진다.

 

▲ [그래픽=김진완] ⓒ르데스크

 

2020년에서 2023년까지 이뤄진 공공기관 지역인재 채용 현황(고졸 제외)에 따르면 지방 공기업의 지역 인재 합격자 중 3분의 2 가량은 지거국 졸업자였다. 구체적으로 부산·경남권에선 부산대와 경상국립대 출신이 강세를 보였다. 국토안전관리원의 경우 경상국립대 출신이 전체 지역인재 인원의 75%를 차지했다.

 

대구·경북에선 경북대, 광주·전남에선 전남대의 아성이 독보적이었다. 대구로 이전한 한국가스공사는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전체 합격자 53명 중 34명(64.2%), 신용보증기금은 2020년부터 2023년까지 126명 중 73명(57.9%) 등이 경북대 출신이었다. 한국전력공사는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합격자 337명 중 203명(60.2%)이 전남대 졸업생이었다.

 

전북에 위치한 국민연금공단은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지역인재 대졸 합격자 142명 중 무려 112명(78.9%)이 전북대 출신이었다. 같은 기간 한국식품연구원은 합격자 9명 중 오직 단 1명만이 비전북대 출신이었다. ‘이전 지역인재’ 채용 제도(대졸)는 그 기준이 졸업 대학이다. 초·중·고를 해당 지역에서 졸업하더라도 서울에 있는 대학을 다닌 이들에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한 입시학원 관계자는 “예전에는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무조건 서울을 목표로 했다면 요즘에는 공부를 잘해도 처음부터 공기업 취직을 노리고 지역 내에서 가장 우수한 대학에 하향 지원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심지어 서울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닌 학생도 대학 졸업을 기준으로 하는 지역인재 전형 제도의 허점을 노리고 아예 지방으로 유학을 가는 사례도 드물게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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