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못다니면 늘봄팸”…맞벌이 보육 지원책 둘러싼 슬픈 현실
“학원 못다니면 늘봄팸”…맞벌이 보육 지원책 둘러싼 슬픈 현실
▲ 늘봄학교의 전면 시행을 앞두고 아이들 간의 '편 가르기'가 조장될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사진은 울산 중구 울산초등학교 가입학식에 참여한 예비 초등학생 모습. (사진은 특정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뉴시스]

  

“늘봄학교 취지는 좋은데, 벌써부터 아이들 사이에서 ‘늘봄팸’ 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룹이 나눠지네요. 혹여나 부모 경제력에 따른 편 가르기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지 걱정돼요.”

 

오전 7시부터 오후 8시까지 초등학교 자녀를 학교에 맡길 수 있도록 하는 ‘늘봄학교’가 올해 전국 시행되는 가운데 시범 운영 기간부터 뒷말이 무성하다. 늘봄학교가 부모 경제력에 따른 ‘사교육 지불 능력’의 척도가 돼 어릴 때부터 보이지 않는 계급이 형성되는 등 아이들의 교육에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교욱부는 지난해 8월 열린 간담회에서 늘봄학교 전면 시행을 기존 2025년에서 2024년으로 1년 앞당길 것이라고 밝혔다. 우선 올해 1학기 전국 초교 6100여 곳 중 2000곳에 선도입 후 2학기부터 전국으로 확대할 것이라는 방침이다. 대상은 ▲2024년 1학년 ▲2025년 1~2학년 ▲2026년 모든 학년이다.

 

그 시작으로 오는 9월 부산교육청은 전국 최초로 강서구 명지 일대에 30인 규모의 ‘늘봄 전용 학교’를 조성해 시범 운영한다. 해당 지역은 정규 교육과정과 별도로 보육과 예체능 중심의 무료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학원 vs 늘봄학교’ 아이들 상대적 박탈감 확대 우려…‘평등·화합’ 붕괴될라

 

늘봄학교는 고물가·고금리에 따른 맞벌이 가구 복지 차원에서 실시된 정책이다. 학부모들 사이에선 여전히 해당 정책이 ‘교육과 보육’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높다. 교육부가 초1 예비 학부모 34만명을 대상으로 지난 1일부터 8일까지 설문 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83.6%가 늘봄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하겠다고 답한 것에서 알 수 있다.

 

▲ [그래픽=김진완] ⓒ르데스크

 

하지만, 벌써부터 부모 경제력에 따른 아이들 간 갈등 조성 우려가 새어나오고 있다. 또한, 방과후 수업의 연장선에 불과하다는 주장에 더해 12시간을 학교에 가두는 것은 아동학대라는 의견 또한 분분하다.

 

불과 몇 년 전 초등학생 사이에서는 월거지(월세 사는 거지), 엘사(LH 사는 사람) 등 본인의 주거 공간이 놀림거리가 됐다. 특히 주거 형태뿐 아니라 부모의 월 소득을 비유한 ‘이백충’, ‘삼백충’ 등의 은어도 별명으로 쓰였다. 이백충(삼백충)은 월 수입 200만원(300만원) 이하인 사람을 일컫는 일종의 혐오 표현이다.

 

화접초에서 근무하는 교사 이은지(여·29·가명)씨는 “기성세대의 유년시절과 달리 현재 초등학교 교실에는 이미 부모 경제력 차이에 대한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이 형성돼 있다”며 “늘봄학교 시행이 교육비 지출 수준에 따른 계급화를 더 촉진시키는 것이 아닌지 우려되는 건 사실이다”고 밝혔다.

 

▲ 현직 교사는 늘봄학교 학생과 사교육 학원생과의 갈등이 야기될 수 있다는 우려다. 사진은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한 화접초등학교 외부 전경. ⓒ르데스크

  

이어 “늘봄학교의 운영시간이 오전 7시부터 오후 8시까지로 지정돼있는데, 사실 시간만 보면 학교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것과 마찬가지다”며 “학교는 아이들을 올바르게 가르치는 곳이지, 아동 위탁소는 아니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그는 “늘봄학교가 시행되면 정규수업 후 학원을 가는 학생과 학교에 남아있는 학생으로 그룹이 나눠지게 되는데, 각 그룹 간의 친밀도는 당연히 깊어질 수밖에 없다”며 “학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평등과 존중인데, 아이들 사이에 파벌이 생길까 노심초사다”고 덧붙였다.

 

학부모들 역시 걱정하기는 마찬가지다. “쟤 이제 우리 학원 안다닌데요. 이제 같이 못 놀겠다.”, “학교 지박령 늘봄팸 모집합니다” 등 벌써부터 아이들 사이에서 편 가르기의 전조 증상이 나타나고 있어서다.

 

초2 자녀를 둔 최수정(34·여)씨는 “저희 아이가 다니는 태권도 학원에서 벌써부터 학원비와 늘봄학교 가성비를 따지는 아이들이 보인다”며 “한 학급 내에서 ‘그들만의 세상’이 만들어질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늘봄학교 ‘전담사 확충 필요’…“교사·교직원 갈등, 피해는 아이들 몫”

  

늘봄학교 운영으로 학교 현장 역시 혼란스러운 상태다. 현직 교사들은 인력과 공간이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즉각 반발에 나섰다. 초등교사노동조합은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정부청사 앞에서 늘봄학교 확대 시행 반대 집회를 열어 의견 피력에 나섰다.

 

▲ 전문가들은 교육업계의 갈등에 따른 피해가 순전히 아이들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걱정을 드러냈다. 사진은 27일 서울 정부청사 앞에서 열린 초등교사노조의 '교육훼손 정책 및 늘봄학교 규탄' 집회 장면. [사진=뉴시스]

 

이에 교육당국은 늘봄학교와 관련해 교사와 완전히 분리된 업무체계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올해 1학기까진 늘봄지원실을 설치해 늘봄지원실장을 교감과 공무원이 맡을 예정이다. 또한, 교원의 업무부담 경감을 위해 2025년까지 교원과 분리된 운영체제를 완성하겠다는 설명이다.

 

김동오 성균관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는 “늘봄학교의 성공은 실질적인 관리를 맡은 전일제 전담사 확충에 달려 있다”며 “방과후 수업과의 혼란과 책임 소재 여부 등 관리자들이 명확한 기준에 따라 움직이지 못한다면,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아이들이다”고 밝혔다.

 

이어 “과거에 비해 물질만능주의가 더 심화됨에 따라 경제력을 최우선시 하는 분위기가 최근 어린아이들 사이에서도 만연하게 퍼지고 있다”며 “이 같은 현상은 부모 세대의 특권의식이 아이들에게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어 부모의 책임이 크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초중고 시절의 경험과 기억은 성인이 된 후 가치관과 삶의 태도에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에 학교는 배려와 화합의 장을 만들어 줘야한다”며 “아이들은 부모와 선생을 반면교사 삼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교육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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