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총액(이하 시총)은 상장주식을 시가로 평가한 총액으로 그 기업의 실질적 가치를 평가하는 척도로 활용된다. 그러나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데 있어 실적, 성장 가능성, 잠재적 가치 등 다양한 요인이 반영되다 보니 단순히 기업 가치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는 시각이 많다. 시가 총액 1위 기업이 각 나라 경제의 경쟁력으로 평가되는 이유다.
자연스레 시총 1위 기업의 수장에게는 다양한 자질이 요구된다. 전문성은 물론 경력이나 자질, 인적네트워크 등 여러 가지 능력을 고루 갖춘 소위 ‘팔방미인’을 선호하는 기조가 뚜렷하다. 아시아 주요국 내 시총 1위 기업들 역시 회장에 오른 인물들의 면면은 상당히 화려한 편이다. 학력부터 출신, 전문성 등 뭐 하나 뒤처질 것 없는 ‘능력자’들이 대부분이다.
도요타 4세, 릴라이언스 2세 등 일본·인도 시총 1위 기업 ‘가족 승계’ 기조 뚜렷
일본의 시총 1위 기업은 글로벌 자동차 기업 중 한 곳인 도요타자동차(이하 도요타)다. 12일 도쿄거래소 기준 도요타의 시가총액은 원화 약 448조4585억원에 달한다. ‘일본의 상징’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도요타는 지난해 기준 연간 1123만대를 판매하며 4년 연속 전 세계 자동차 판매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일본의 지역구 중 하나인 고모로시를 도요타시 바꿀 정도로 일본 내 영향력도 상당한 편이다.
도요타그룹 수장은 ‘도요타 아키오(豊田 章男)’ 회장이다. 아키오 회장은 1956년 나고야 출생으로 그의 할아버지 기이치로 도요타는 도요타그룹의 기존 사업이었던 자동 직기 제조를 자동차로 변경한 인물이다. 아키오는 게이오 대학에서 법학 학사를 졸업한 후 미국 매사추세츠에 위치한 밥슨 대학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1984년 도요타에 입사하며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아키오 회장은 ▲상무이사(2002년~2003년) ▲전무이사(2003년~2005년) ▲본부장(2005년) ▲부사장(2005년~2009년) ▲대표이사(2009년~2023년) 등을 차례로 거쳤고 지난해 4월 사장직에 오른 지 14년 만에 그룹 회장 자리에 올라섰다. 선대로부터 회사를 물려받긴 했지만 그 역시 상당한 능력을 갖춘 인물로 알려졌다. 특히 리먼 사태, 대규모 리콜 사태 등을 원활하게 극복하며 스스로 능력을 입증해 보였다.
세계에서 인구수가 가장 많은 인도(약 14억명)를 대표하는 기업은 릴라이언스 그룹이다. 인도의 삼성이라 불리는 릴라이언스는 인도를 대표하는 재벌기업으로 수도인 뭄바이에 본사를 두고 있다. 12일 뭄바이 증권거래소 기준 시가총액은 원화 약 353조9053억원에 달한다. 릴라이언스 그룹을 이끄는 수장은 창업주 2세인 ‘무케시 암바니’ 회장이다. 그의 아버지 디루바이 전 회장은 주유소 직원으로 시작해 재직 공장과 석유화학 사업을 근간으로 하는 릴라이언스 상사를 설립해 지금의 릴라이언스 그룹을 일궈냈다.
아시아 최고 갑부로 불리는 암바니 회장은 1957년 예멘의 아덴 주에서 태어났다. 암바니 회장은 힐 그레인지 고등학교, 화학기술 공업대학교를 거쳐 미국으로 건너가 스탠퍼드 대학 경영대학원에 입학했다. 이후 부친으로부터 직접 경영 수업을 받았고 2010년 인도의 잠나가르에 세계 최대 규모의 유전 시설을 설치하며 릴라이언스 그룹을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 시켰다.
인도 현지에서 암바니 회장은 사업 확장에 능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실제로 그는 2012년 약 40조원을 투자해 자회사 ‘지오’를 만들어 인도 내 80% 지역에 4G 통신 네트워크망을 설치하며 통신사업에 뛰어들었다. 지오는 현재 약 4억 명의 가입자를 확보한 인도 최대 통신 기업으로 거듭난 상태다.
중국 IT공룡 일군 공산당 간부 아들 텐센트…AIA·TSMC 영향력 막강한 선대회장들
중국의 시총 1위 기업은 거대 IT 기업인 텐센트다. 텐센트는 2000년 초반 한국의 네이트온과 유사한 국민 메신저 QQ의 성공으로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QQ의 성공 이후 모바일 시대에 발맞게 위챗과 위챗페이를 연이어 개발하는 등 꾸준히 산업 분야를 넓혀나가고 있다. 아울러 게임유통 등 적극적인 인수합병과 투자활동으로 사업 다각화에 성공하며 현재 중국 내에 인터넷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사업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12일 홍콩 거래소 기준 텐센트의 시가총액은 원화 약 654조7302억원이다.
텐센트의 창업주는 마화텅(馬化騰) 회장이다. 마화텅 회장은 1971년 하이난성 둥팡시에 위치한 부유한 고위 공산당 간부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1993년 선전대학에서 컴퓨터학과를 졸업한 후 무선호출기를 제작하는 통신사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근무했다. 이후 동료들과 함께 회사를 나와 1998년 텐센트를 창립했다. 그는 창립 이듬해에 곧바로 QQ를 개발해 엄청난 사업 성공을 거뒀다.
이후 마화텅 회장은 알리바바 창업주인 마윈과 함께 중국 최고 부자에 손꼽히기도 했다. 지난해 연간 보고서에 따르면 마화텅은 텐센트 홀딩스의 지분 7.4%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다만 언론에 자주 노출되는 마윈과 달리 인터뷰 자체를 기피하며 대중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아 ‘은둔의 경영자’로도 불리고 있다.
아시아 금융시장 허브 홍콩의 시총 1위 기업은 센트럴에 본사를 둔 다국적 보험사 AIA 그룹이다. AIA는 설립 당시 코넬리우스 반더 스타가 창립한 미국 AIG의 자회사였지만 2009년 3월 AIG그룹으로부터 완전 독립에 성공했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가장 큰 상장 생명보험사를 가진 AIA 그룹은 우리나라에선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손흥민 선수가 뛰고 있는 토트넘 홋스퍼의 메인 스폰서로 더욱 유명하다. AIA의 시가총액은 12일 홍콩 거래소 기준 109조975억원에 달한다.
AIA는 전문경영인(CEO)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전문경영인 체제란 기업의 소유권과 경영권을 분리해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가진 인사를 경영인으로 고용하는 시스템이다. 2023년 연간 보고서에 따르면 AIA의 최대주주는 월가의 대형 투자은행 JP모건체이스(8.29%)다. 2020년부터 지금까지 AIA 그룹을 이끌고 있는 인물은 위안 시옹(Yuan Siong Lee) 최고 경영자이지만 그룹 내 실질적인 권력의 키는 이사회 의장 에드먼드 세윙 츠(Edmund Sze-Wing Tse)가 쥐고 있다.
올해로 86세인 에드먼드 세윙 츠는 AIA 그룹의 이사회 의장 및 비상임 회장이다. 그는 홍콩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1961년 AIA에 입사하면서 보험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현 AIA 그룹과 전신인 AIG에서 통합 60년 가량을 근무한 ‘보험통’이다. 그는 1983년부터 2000년까지 약 17년 동안 AIA 최고경영자를 역임했다. 위안 시옹 역시 그가 주관한 이사회 회의를 통해 선임된 인물이다.
대만의 시총 1위 기업은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인 TSMC다. TSMC는 7나노미터 이하 파운드리 시장의 90% 이상의 막강한 점유율을 바탕으로 꾸준히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대만 현지 내에서는 ‘나라를 지키는 신성한 산’으로 불릴 정도로 영향력이 막강하다. 지난 8일 엔비디아에 이어 글로벌 반도체 기업 중 두 번째로 시가총액 1조달러(원화 약 1381조원)를 달성했다. 지난해 말 기준 TSMC의 최대주주는 대만 정부 산하 국가개발펀드(6.37%)다.
현재 TSMC의 수장은 웨이저자(魏哲家) 회장이다. 1958년 대만 중부 난터우현에서 태어난 웨이저자는 대만 명문 국립교통대에서 전기공학 학사·석사 학위를 이수했다. 이어 곧바로 미국 유학길에 올라 예일대에서 전기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학계 생활을 마친 후 웨이저자는 미국의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싱가포르 차타트반도체 등을 거쳐 1998년 TSMC에 입사했고 주요 보직을 거쳐 지난 5월 회장에 선임됐다.
웨이저자가 경영을 도맡곤 있지만 TSMC를 지금의 반열에 올린 주인공은 따로 존재한다. 창업주인 ‘모리스 창’이다. 2018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으나 지금도 전 세계 반도체 산업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1937년 중국 저장성의 은행가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하버드 대학에 최초 입학한 후, 2학년 때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으로 편입했다.
학사 졸업 후 그는 MIT에서 기계 공학 석사 학위, 스탠포드 대학에서 전기 공학 박사 등을 취득했다. 학위를 마친 후 텍사스인스트루먼트 등 반도체 기업에서 경력을 쌓은 후 대만 정부의 요청에 대만으로 돌아가 1987년 TSMC를 설립했다. 이후 TSMC를 반도체 분야의 최강자로 일궈냈고 2018년 전문경영인 체제 전환 후 스스로 경영에서 물러났다. 철저한 성과주의 원칙을 고수해 온 덕에 역대 회장 모두 창업주와는 혈연·지연·학연 등에 있어 전혀 무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한국경제 전반에 걸쳐 시총 1위인 삼성그룹의 영향력이 높은 것처럼 세계 주요국마다 국가 경제를 뒷받침하는 거대 기업들이 존재한다”며 “이 중 아시아 국가의 시총 1위 기업의 경우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 전문경영인 대신 회사의 주인인 ‘오너’가 기업을 직접 이끌거나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댓글
로그인 후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