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 생산성 증가율이 10년 만에 0%대로 떨어졌다. 사실상 정체나 다름없는 수치며 경쟁국의 높은 성장률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마이너스나 다름없는 결과다. 그럼에도 직장인들 사이에선 ‘일과 삶의 균형’(이하 워라밸)을 추구하는 성향은 더욱 짙어지고 있으며 요구의 수위도 점차 높아져 우려감이 고조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무분별한 워라밸 요구가 국가 경쟁력을 저하하는 최대 악재가 될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나온다.
“일 20% 덜해도 임금 7%만 깍이길” 워라밸 넘어 무기력…구인난 시달리는 기업들
27일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이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주4일 근무제 관련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중 60.6%가 임금이 줄어도 주4일 근무제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감내할 수 있는 임금 감소폭은 평균 7.7%로 집계됐다. △5~10%미만(41.4%) △1~5%미만(33.8%) △10~15%미만(15.9%) △15%~20%미만(6.2%) 등의 순이었다. 수입이 줄어도 일을 적게 하는 게 좋다는 의미다.
이러한 분위기는 기업 생산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됐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경제학적으로 워라밸과 생산성이 양립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주장은 수치로도 입증됐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우리나라 기업의 혁신활동 분석 및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의 생산성 증가율은 2001~2010년 연평균 6.1%에서 2011~2020년 0.5%로 크게 낮아졌다. 생산성 증가율이 0%대라는 것은 사실상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는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생산성 둔화의 가장 큰 이유는 워라밸 분위기가 짙어지면서 기업 규모를 막론하고 일 할 사람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이 대부분인 국내 혁신기업의 생산성 증가율은 2001~2010년 연평균 8.2%에서 2011~2020년 1.3%로 약 7%p 가량 대폭 하락했다. 기업은행 경제연구소가 지난해 발표한 ‘제조 중소기업 인력난 실태조사’에 따르면 제조 중소기업의 경우 약 65%가 인력난을 겪고 있다.
대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삼성전자, 현대차 등 국내 대기업들 역시 인력 확보를 위해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추세다. 하청 기업들 역시 생산 및 사업의 편리성을 위해 타국으로 공장 설비를 옮기고 있다. 특히 인도, 베트남, 중국 등의 이전이 활발한 편이다. 대부분 우리나라에 비해 노동력이 풍부하고 인건비가 저렴한 국가들이다. 올해 초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인도를 세계 최대 해외 생산기지로 육성하고 이곳에서 신성장 동력을 찾겠다는 목표를 강조하기도 했다.
빠르게 치고 올라가는 글로벌 경쟁자 중국·일본…“무분별한 워라밸에 공짜중독 사회 우려”
그나마 우리나라보다 ‘워라밸’ 분위기가 덜 한 이웃나라 중국과 일본의 제조업 경쟁력은 날이 갈수록 강해지는 모습이다. 특히 우리나라가 강점을 지닌 분야에서 영향력을 빠르게 넓혀나가고 있다. 일례로 지난해 중국 배터리 제조업체 CATL의 배터리 시장 점유율(내수 시장 미포함)은 27.7%로 업계 1위 LG에너지솔루션(27.7%)과 동률을 이뤘다. 2022년보다 5.6%p 상승했으며 중국 내수 시장은 제외한 수치다.
일본 제조업 기업들의 순이익 역시 전년 대비 23% 증가하며 역대 최고액을 경신했다. 특히 자동차 산업이 전체 제조업 순이익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며 호실적을 이끌었다. 토요타자동차의 1분기 순이익은 5조엔 가량으로 전년 동기 대비 2배 넘게 늘었다. 닛산자동차도 미국 판매 증가로 순이익이 90% 급증했다. 일본 현지 대기업들은 1분기에 거둬들인 이익을 거래처나 공급·하청업체 등 중소기업으로 환원하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어느 정도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것은 맞지만 분위기가 과열될 경우 노동의 가치를 부정하고 공짜만을 바라는 풍토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주 4일제가 시행된다면 단순 수치상으로 20% 임금 감소가 불가피함에도 7%가 적당하다는 답변이 가장 많이 나온 여론 조사 결과를 근거로 ‘우리나라도 이미 공짜 심리가 만연해 있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워라밸 적용에 따른 생산성 문제는 기업별로 상이하지만 생산성이 높지 않은 기업이라면 부담이 클 것이다”며 “주4일제 등 기업별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무조건적 워라밸 적용은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댓글
로그인 후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