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억 사기’ 징역 10년 남짓…낡은 법 · 제도, 사기공화국 민낯
‘수천억 사기’ 징역 10년 남짓…낡은 법 · 제도, 사기공화국 민낯

 

▲ 사기 피해자 및 법조계에서 국내 처벌 및 수사 강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엄중 수사·처벌을 요구하는 아도 피해자 단체. ⓒ르데스크

  

최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대형 금융사기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면서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사기범들이 법과 수사의 허점을 너무 잘 파악하고 있어 이에 대한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사기 피해 예방과 피해자 구제를 위한 법·제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사기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미국과 영국 등 해외 선진국의 경우 경제·금융 사기범들에게 수십 년에서 수백 년까지 징역 선고가 가능하다. 반면 국내에서 내려지는 실형은 고작 4~6년으로 해외와 비교해 매우 적다. 최근 5년 동안 사기 범죄는 꾸준히 증가한 반면 검거율을 감소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8년 사기 범죄는 27만건에서 지난해 32만5848건까지 증가했다. 반면 고도화 되는 사기 수법에 검거율은 20만2330건에서 16만5910건까지 떨어졌다.

 

수천억 사기쳐도 징역 10년 이하…"미국처럼 가중처벌 무기한 늘려야"

 

아도페이에 투자했다 아직까지 원금 7000만원을 돌려받지 못한 김길수(67·가명) 씨는 매주 서울지방검찰청 앞에서 가해자들의 엄벌을 촉구하는 릴레이 집회에 참석하고 있다. 아도페이는 ‘국내에서 반품된 물건을 해외에 팔아 수익을 내면 수익금을 나눠 주겠다’며 피해자 4만명에게서 5000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대표가 구속수사 받고 있는 사건이다. 김 씨는 매주 구속된 아도 인터네셔널 대표에게 최고 형벌을 요구하는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김 씨는 “수만 명이 이 사건으로 가정이 파탄 나고 자살하기 일보 직전까지 몰렸는데 솜방망이 처벌이 나온다면 화병으로 먼저 죽을 것 같다”며 “그간 대한민국 법원이 사기범들에게 관대한 모습을 보여 불안하다. 대한민국 법에 허점이 너무 많고 사기꾼들은 그걸 이용하는 만큼 보완과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그래픽=김진완] ⓒ르데스크

  

형법 347조 사기죄 처벌에 명시된 사기죄 처벌은 '10년 이하의 징역,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피해자뿐만 아니라 전문가들도 처벌 수위가 낮아 억제력이 미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중처벌 시스템에 대한 형평성 논란도 나온다. 사기 사건의 경우 여러 가지 범죄가 총망라돼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국내 형법은 가장 무거운 형량에 최대 1.5배까지 적용되는데 그친다. 형법 제38조(경합범과 처벌례)에 따르면 같은 종류의 형인 경우에는 가장 무거운 죄에 대하여 정한 형의 장기 또는 다액(다액)에 그 2분의 1까지 가중하되 각 죄에 대해 정한 형의 장기 또는 다액을 합산한 형기 또는 액수를 초과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국내 경제사범들이 미국처럼 수백 년 형량이 내려지기 위해서는 가중처벌에 대한 제한을 풀지 않는 이상 해외와 같은 판결이 나오기 힘든 시스템이다. 유광훈 법무법인 시우 변호사는 “국민들이 사기범의 처벌이 약하다고 보는 이유는 경합범의 처리 방식 때문이다”며 “외국처럼 형을 무제한 더하기 방식이 아닌 1.5배 제한이 있는 현행법에서는 아무리 다수를 상대로 사기를 치더라도 법정형에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5억원 이상만 피해자 취급…특경법, 서민 위해 총액으로 개정 필요성 증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법)의 처벌 수위도 지나치게 미미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경법은 특정경제범죄에 대한 범죄 행위자에게 가중처벌과 취업제한 등을 규정함으로써 경제질서를 확립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법률이다. 그런데 특경법 제3조 특정재산범죄 가중 처벌 조항은 피해자가 서민일 때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 사기 피해자들은 국내 사기꾼들의 형벌이 너무 약하다고 호소한다. 사진은 대검찰청 등 수사 기관 앞에서 구속수사와 엄벌 촉구 릴레이 시위를 벌이는 아도 피해자들. [독자제공]

  

해당 법에 따르면 '사기, 공갈, 횡령, 배임 등의 죄를 범한 사람은 그 범죄 행위로 취득한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 가액이 5억원 이상일 때 가중처벌한다'고 적혀있다. 가중처벌의 금액을 5억원 이상으로 제한한 것이다. 가령 1000명을 대상으로 1000만원씩 사기를 쳤어도 건당 5억원 피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특경법 가중처벌이 적용 대상이 아니다.

 

또 무기징역을 선고하기 위해서는 50억원 이상의 피해자가 있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해당 사항을 총액으로 수정해야 서민을 대상으로 한 사기를 방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민석 변호사는 "돈이 많은 사람은 5억, 50억 사기 피해자가 될 수 있지만 아도 피해자같이 서민을 대상으로 한 경제 범죄는 총 피해액은 클지라도 1인당 그만큼의 피해액이 나오기 힘들다"며 "1인당 피해금이 아닌 총합으로 법이 개정돼야 서민을 대상으로 한 경제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라임과 옵티머스 주동자들이 징역 40년을 받은 것을 보면 현행법으로도 양형을 최대로 내린다면 범죄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며 “범죄를 주도한 가장 윗선이 형량을 적게 받으면 그 밑에 공범들은 더 적게 받는다”고 말했다. 이어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형을 크게 내려야한다”고 주장했다.

 

낡은 수사 시스템…유사수신 단계부터 엄벌주의 필요

 

법조계 안팎에선 사기에 대한 형벌만큼 피해 예방과 선제적 조치 또한 풀어야 할 숙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사범에게 높은 징역이 내려져도 피해자들의 원금 회복은 별개의 문제다. 수사 기간 혹은 그 이전부터 해외로 자금을 빼돌리고 세탁을 돌린다면 이를 추적하기란 쉽지 않다.

 

아도페이 피해자 조기현(58·가명) 씨는 "사기꾼들에 대한 형벌은 당연하고 더 중요한 것은 피해자들의 원금 회복이다"며 "수사도 판결도 너무 오래 걸려 자금 세탁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피해자 중심으로 수사가 이뤄진다면 원금회복에 중점을 둬야한다"고 말했다.

 

▲ 일각에서는 처벌강화와 더불어 피해방지와 원금회복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진은 집회중 극심한 스트레스와 건강악화로 쓰러진 아도 피해자. ⓒ르데스크

 

법조계에서는 사기 피해 방지하기 위해서는 예방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유 변호사는 "검찰에서 사기 전담 부서를 설치해 매년 마약백서를 발행하듯 사기백서를 발행해 본질적인 사기 예방에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나종민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는 "적극적 예방이 요구되는 사기범죄 특성상 사후적 제재 위주의 경찰서의 고소 고발 사건 처리 방식은 근본적 제약이 있다"며 "사기정보 분석원을 중심으로 구축한 통합 데이터베이스를 통신사, 금융사 등 민간 부분에서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예방뿐만 아니라 수사에 있어서도 선제적 조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대다수 사기 범죄가 유사수신행위에서 시작하는 만큼 해당 단계부터 체계를 보완해야 신속한 피해 회복이 가능하단 설명이다. 또 기존 수사 시스템을 강화해 전국적이고 더 전문적인 수사 시스템을 구축해야 원금회복부터 사기 범죄 뿌리까지 뽑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변호사는 "대다수 사기는 유사수신행위로 시작하는 만큼 법을 금액별로 분리할 필요가 있다"며 "유사수신단계부터 금액에 따라 형벌을 크게 만들고 빠른 구속수사가 이뤄져야 예방은 물론이고 피해 회복에도 유리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김용판 국민의힘 의원은 “신·변종 사기 수법이 지속해서 출현해 사기 범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실정이다”며 “사기 범죄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고 검거율을 높이기 위해 전문적 역량을 갖춘 기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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