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여당 지지층이 크게 술렁이고 있다. 내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포퓰리즘 행태가 자주 보여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포퓰리즘은 사회와 국가의 앞날은 외면한 채 오로지 권력 유지를 위한 인기가 목적인 경우가 많아 보수층에선 금기로 여겨졌던 행위 중 하나다. 국민의힘 지지층 중 상당수는 보수 정치색을 띄고 있거나 타 정당의 포퓰리즘 행위에 신물을 느껴 차악(次惡)을 선택한 국민이다.
발 등에 불 떨어진 정부·여당, 민생 돌파구로 선택한 카드는 ‘포퓰리즘’
정치권 등에 따르면 정부·여당은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이후 연일 민생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고 있다. 등 돌린 민심을 민생 정치로 되돌리겠다는 의도다. 각 부처는 그동안 국민적 요구가 높았던 사안의 해결사를 자처했고 여당 역시 민심 확보를 위한 굵직한 정책 이슈를 쏟아내고 있다. 공매도 금지, 김포시의 서울 편입, 일회용품 규제 보류, 교통망 확충 등 특정 지역이나 계층, 연령 등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사안이 대다수다.
그런데 정부·여당 지지자들은 이러한 정책에 대해 못마땅해 하는 기색이 역력한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실망스럽다’며 지지할 지 말 지를 다시 고민해보겠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민생 정치를 표방하곤 있지만 오히려 선거 표심을 잡기 위한 포퓰리즘에 가까운 모습이 엿보인다는 이유에서다. 포퓰리즘으로 평가되는 정책으론 공매도 금지, 인회용품 규제 보류 등이 우선적으로 거론된다.
소상공인연합회 등에 따르면 환경부는 오는 24일 계도기간이 종료되는 일회용품 규제를 사실상 무기한 연기하기로 했다. 식당, 카페 등 식품접객업과 집단급식소에서의 일회용 종이컵 사용 금지 조처는 철회하고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와 젓는 막대 사용 금지 조처에 대해서도 계도기간을 사실상 무기한 연장한다. 일회용품 규제로 생겨날 소상공인 부담을 줄여주기 위함이다. 소상공인들은 정부 결정에 크게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일반 대중들의 반응은 정반대다.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 금지를 확대하는 글로벌 추세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환경오염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외면한 결정이라는 목소리가 많다. 특히 보수 성향이 짙을수록 더욱 격양된 반응을 보였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뽑았다는 대학생 황상훈 씨(24·남·가명)는 “미래세대와 직결된 사안을 대안조차 없이 뒤집은 것은 무책임의 극치다”며 “나라의 앞날을 위해서라도 포퓰리즘을 배척해야 한다고 했던 말들은 전부 거짓이었나”라고 성토했다.
자신을 보수 성향의 시민단체 회원이라고 소개한 유희진 씨(34·여·가명)는 “지난 문재인정부 시절 포퓰리즘 정책을 싸잡아 비판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똑같은 일을 저지를 수 있나. 환경규제 철회는 누가 봐도 소상공인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이다”라며 “당장 급한 불부터 끄고 되돌리겠다는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금기라는 게 있다. 멀리보고 책임지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보수에게 포퓰리즘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금기다”고 강조했다.
급한 불끄기 식 마구잡이 정책에 지지층 패닉 “미래·책임 등 보수의 가치 팽개쳤다”
여당의 요청으로 금융당국이 전격 시행한 한시적 공매도 금지 조치에 대해서도 긍정 보단 부정 여론이 우세한 편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5일 임시 금융위원회 회의를 열고 다음 날인 6일부터 내년 6월 말까지 약 8개월 간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기로 의결했다. 여당의 불법 공매도에 대한 엄정 처벌과 제도 개선 요구를 수용한 결과다. 금융당국은 공매도 금지 기간 동안 현행 제도의 허점을 보완하겠다는 계획이다.
공매도는 갖고 있지 않은 주식을 빌려서 팔았다가 주가가 떨어지면 싸게 사서 되갚아 이익을 내는 투자 기법이다. 주가가 내려야 돈을 벌 수 있는 구조이다 보니 자금력을 갖춘 외국인과 기관투자자들은 공매도를 하나의 투자기법으로 활용했다. 반면 개인투자자들은 공매도가 주가 하락의 원인 중 하나라며 폐지를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이 갑작스레 공매도 금지를 추진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게 여론의 중론이다.
정부·여당의 공매도 금지 조치에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조차 우려감을 드러내고 있다. 공매도의 순기능을 간과할 수 없다는 견해가 주를 이룬다. 실제로 공매도는 뚜렷한 실적 없이 급등한 종목에 대해 주가 거품을 빼 제값을 찾아주는 역할을 한다. 주식시장의 자정작용을 일으키는 장치나 다름 없다 보니 공매도 자체는 ‘글로벌 스탠다드’로 여겨져 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공매도 금지 국가는 한국과 튀르키예 뿐이다.
공매도 금지 조치 발표 직후 증권업계 안팎에선 “총선을 앞두고 개인투자자의 환심을 사기 위한 조치라고 보기엔 너무 위험한 선택을 했다”는 우려가 쏟아졌다. 해외에서는 우리나라 자본시장의 퇴행이 우려된다는 반응까지 나왔다. 영국의 통신사 로이터는 “영향력 있는 지수 제공업체 MSCI가 한국을 선진국으로 격상시키기 위해 해결해야 할 요인 중 하나로 공매도 규제에 대한 불확실성을 꼽고 있다”며 “한국의 이번 조치로 한국 자본시장의 선진시장 진입이 늦어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대다수가 보수 성향을 지닌 정부·여당 지지자들은 더욱 격양된 반응을 보였다. 인기에 매몰돼 기존 보수가 추구하던 경제 정책 방향과 상반된 행보를 걷는 모습에 실망했다는 목소리가 주를 이뤘다. 자신을 국민의힘 지지자라고 소개한 김우현 씨(61·남·가명)는 “힘들고 오래 걸려도 국가와 국민에게 이로운 선택을 해야 하는 보수 정당이 어떻게 눈앞에 이익만 생각할 정도로 타락 했나”라며 “미래와 책임을 져버린 보수는 더 이상 보수라 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진보의 포퓰리즘이 위험하다고 판단해 보수를 지지한다는 강주찬 씨(34·남)는 “20대 때는 진보가 개방적이고 진취적이라고 생각해 꾸준히 선거 때마다 진보 정당 후보를 뽑았다”며 “그러나 지난 정부 시절 나라 빚을 내서 생색내는 모습을 보고 이러다가 ‘나도 망하고 나라도 망하겠구나’라고 생각해 보수로 갈아탔다”고 운을 뗐다.
이어 그는 “그런데 요즘 정부와 국민의힘이 하는 행태를 보니 우리나라 정치엔 보수·진보는 없고 탐욕스런 권력욕만 남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며 “조금의 희생이 뒤따르더라도 나중의 영광을 위해 꿋꿋하게 전진하는 과거 보수의 모습이 사라진 것 같아 너무 아쉽다. 아마 내년 총선에선 당 보다는 후보 자체를 볼 것 같다. 후보가 마음에 안 들면 투표를 하지 않을 생각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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