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노사가 임금협상 잠정합의안을 도출했다. 노조가 그간 고집하던 ‘직원 자녀 우선 채용’ 조항을 포기하는 대신 역대 최대 임금 인상과 복지 확대를 얻어냈다. 다만 고용세습이 문서상으로는 사라지더라도 문화로는 남아있지 않을까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기아 노사는 17일 오토랜드 광명에서 열린 16차 본교섭에서 3년 연속 무분규로 2023년 임금협상 잠정합의안을 끌어냈다고 밝혔다. 양측은 전날 교섭에도 의견차를 좁히는데 난항을 겪었지만 불확실한 미래 생존과 고용 안정을 위해 협력이 필요하다는데 공감하며 조금씩 양보해 잠정합의안에 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아 관계자는 "중동, 우크라이나 등 국제 정세 불안과 지속되는 고금리 기조,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국가 간 무역장벽 심화, 코로나 시점 대비 대기물량 대폭 감소 등 불확실한 미래 상황에 대해 노사 간 공감대가 형성돼 합의점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잠정합의안에는 호봉승급분을 포함한 기본급 11만1000원 인상과 경영성과금 300%+800만원, 생산판매목표 달성 격려금 100%, 특별 격려금 250만원,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재래시장 상품권 25만원, 무분규 타결 무상주 34주 지급이 포함됐다.
가장 문제였던 ‘고용세습’ 조항은 수정될 예정이다. 대신 연말까지 신입사원 300명 채용과 5년간 기아 근로자 자녀 1000명에게 해외봉사 체험을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사실상 고용세습을 포기를 대가로 역대급 연봉인상과 자녀 교육 혜택을 얻어낸 것이다.
노사 잠정합의안에 주주들은 반발하고 있다. 종목토론실 한 주주는 “애초에 고용세습이 말도 안된다는 것 쯤은 노조에서도 알고 있었을 거다”며 “고용세습을 핑계로 결국 얻어낼 것 다 얻어냈으니 노조의 승리고 이는 기아차의 가격상승으로 이어져 경쟁력 하락의 결과를 불러일으킬 것이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주는 “잠정합의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결국 노조가 원하는데로 흘러간 기분이다”며 “이런식이면 당장은 몰라도 또 똑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 뻔하고 주주들은 불안해 할 것이 뻔한데 투자를 하겠냐”고 하소연했다.
노조가 고용세습 대신 얻어낸 역대급 채용도 논란이다. 신규채용은 기업의 사정에 따라 이뤄져야 하는 부분인데 노조가 인사권을 침해했단 것이다. 일각에서는 노조가 요구한 역대급 채용에서 마지막 고용세습이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고용세습 조항이 서류상으로는 삭제됐지만 실질적 채용에서는 다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취업준비사이트의 한 누리꾼은 “애초에 독재국가에서도 없는 고용세습 조항이 공식적으로 존재했던 사실 자체가 충격적이다”며 “해당 조항을 삭제한다 해도 노조의 힘이 저렇게 쌔다면 실질적 세습이 이뤄지지 않는다란 보장은 어디있냐”고 되물었다.
기아뿐만 아니라 이전부터 국내 노조들은 ‘현대판 음서제’라 비판 받아왔다. 고용세습 조항이 없더라도 노조위원장의 추천서나 말 등으로 꾸준히 채용비리가 이뤄졌던 역사가 있다. 그런데 공식적으로 고용세습이 존재했던 기아에서 한순간에 해당 문화가 사라지기란 힘들 수 있단 것이다.
청년들 사이에서는 고용세습은 단순히 조항 하나 삭제한다고 없어지지 않는 만큼 당국에서 강력하게 감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취업준비생 김예나(24·여) 씨는 “고용세습이 취업시장에 뿌리 뻗은 것을 모르는 취준생은 아마 없을 것이다”며 “내 주변에도 아빠나 엄마를 통해 취업한 사람이 많은 만큼 조항이 없어졌다고 고용세습이 없어진건 아니다”고 꼬집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근로자의 날을 맞아 “헌법 정신에 위배되는 기득권의 고용세습은 확실히 뿌리 뽑을 것이다”며 “진정한 노동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노사 법치주의를 확립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기아 관계자는 이번 잠정합의안에 대해 "미래차를 둘러싼 글로벌 업체 간 경쟁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노사가 미래 발전과 고용안정이라는 큰 틀에 공감해 합의에 이를 수 있었다"며 "이번 합의를 토대로 경영 목표 달성과 미래 경쟁력 확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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