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연봉 맞먹는 돈벌이…암표의 늪에 빠진 평범한 이웃들
직장인 연봉 맞먹는 돈벌이…암표의 늪에 빠진 평범한 이웃들

온라인 거래 활성화로 탑승권, 입장권 등을 사고팔기가 용이해지자 웃돈을 얹고 팔아서 이득을 챙기는 행위, 이른바 ‘암표’ 거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수요가 많은 티켓을 운 좋게 구하기만 하면 큰 노력 없이도 적지 않은 돈을 벌 수 있다 보니 청소년부터 가정주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암표 거래에 뛰어들고 있다.

 

현행법상 암표 거래는 엄연히 불법이다. 다만 처벌 기준이 모호하고 단속 또한 사실상 전무하다시피 하다 보니 대부분 불법이라는 인식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암표 거래는 선량한 소비자들의 피해를 유발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불공정거래로 평가된다. 이미 해외 여러 나라에선 불법 암표 거래를 막기 위한 다양한 조치가 이뤄지고 있다.

 

정상가 16만원 티켓이 중고 사이트에 180만원 매물로…암표의 늪에 빠진 대한민국

 

얼마 전 전 국민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소식이 전해졌다. 인기가수 임영웅의 콘서트 티켓이 판매 시작과 동시에 완판된 것도 모자라 곧장 중고거래 사이트 등에 암표가 등장한 것이었다.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중고거래 사이트에 올라온 암표의 가격이었다. 공식 가격 대비 최소 3배에서 최대 10배에 가까운 가격에 판매되고 있었다. 공식가 16만5000원인 VIP티켓이 장 당 180만원에 매물로 올라오기도 했다.

 

이번 임영웅 콘서트 티켓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추석이나 설날 기차표부터 국·내외 인기가수의 콘서트 티켓, 지역축제 입장권 등 수요가 많다 싶으면 어김없이 암표 거래가 뒤따른다. 판매자 중 상당수가 전문 암표상이던 과거와 달리 청소년, 가정주부, 직장인 등 평범한 일반인들까지 암표 판매에 뛰어든 결과로 분석된다. 티켓 구매부터 판매까지 온라인으로 이뤄지다 보니 큰 노력 없이 오로지 확률만으로 손쉽게 돈을 버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 [그래픽=김진완] ⓒ르데스크

 

심지어 전문 암표상들만 암암리에 사용해오던 불법 프로그램을 평범한 일반인이 사용하는 사례까지 등장했다. 불법 다운로드 사이트 등을 통해 프로그램을 구매하거나 아예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식이다. 대부분의 티켓 구매는 선착순 방식으로 판매되는데 불법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사람의 반응 속도보다 월등히 빠른 속도로 구매를 진행할 수 있다. 구매만 성공하면 수익이 보장되다 보니 암표거래 외에 또 다른 불법의 유혹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가정주부 홍선희 씨(42·여·가명)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이후 남는 시간을 활용해 부업거리를 찾던 도중 ‘티켓 리셀(Ticket resell, 티켓을 구매한 후 되파는 행위)’을 알게 됐다”며 “처음 한두 번 시도할 때만 해도 크게 재미를 못 봤는데 점점 하다 보니 익숙해져 이젠 어지간한 알바 수입 정도는 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간혹 티켓팅(Ticketing, 티켓을 구매하는 행위)이 어려운 인기가수 콘서트 티켓은 메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수요가 많아 거래가 쉽고 차익도 크다 보니 불법인줄 알면서도 쓰게 된다”고 귀띔했다.

 

“사기나 다를 바 없는 암표 거래, 추첨제·실명제·처벌강화 등 대책 마련 시급”

 

법무부,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시중에 판매되는 티켓을 웃돈을 주고 되팔 경우 경범죄에 해당돼 2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다만 오프라인 상에서 이뤄지는 거래에 한해서다. 기차표 부정판매의 경우 철도사업법에 위배돼 최대 1000만원까지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지만 사실상 단속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최근 5년간 기차표 암표 단속 건수는 ‘0’ 건이었다. 2020년엔 공연·예술계의 암표 거래를 막는 내용이 추가된 공연법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구체적인 세부 규정이 없어 사실상 유명무실한 법으로 평가되고 있다.


 

▲ 법무부,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시중에 판매되는 티켓을 웃돈을 주고 되팔 경우 경범죄에 해당돼 2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다만 오프라인 상에서 이뤄지는 거래에 한해서다. 기차표 부정판매의 경우 철도사업법에 위배돼 최대 1000만원까지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지만 사실상 단속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최근 5년간 기차표 암표 단속 건수는 ‘0’ 건이었다. 사진은 중고거래사이트에 올라온 암표 매물들. [사진=중고거래사이트 갈무리]

 

다수의 전문가들에 따르면 암표 거래는 사회적으로 심각한 부작용을 양산하는 행위다. 암표 자체가 사회의 암적 존재라고 봐도 무방하다. 우선 소비자 입장에선 합리적 소비가 불가능해 진다. 통상 모든 재화에는 원가라는 게 존재하는 데 암표에는 원가를 훌쩍 뛰어넘는 부가 비용이 포함돼 있다. 간혹 수요와 공급의 원리가 적용됐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긴 하지만 정상적 거래를 방해하는 수요가 많다는 점에서 자연스러운 시장 원리로 보기 어렵다.

 

예를 들어 한 유명가수의 콘서트 티켓의 한정수량이 100장인데 암표상들이 90장을 구매한다면 결국 일반 소비자들은 10장 밖에 사지 못한다. 나머지 90명은 제 값에 살 기회를 잃게 되는 셈이다. 또 높은 가격에 팔린 티켓 수입이 가수나 제작자에 돌아가면 콘서트의 질적 향상에 도움이 되겠지만 전부 암표상의 주머니로 들어가기 때문에 산업 발전에도 전혀 도움 되지 않는다. 불법 프로그램 등과 같은 방법을 동원한다면 일반 소비자에게 사기를 치는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의 처벌강화 조치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대중음악공연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공연기획자와 소비자 중 83.9%는 온라인상에서 이뤄지는 암표 거래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 각 국가들은 일찌감치 암표 거래의 사회적 파장을 고려해 저마다의 방지책을 마련했다. 일례로 일본의 경우 일정 기간 접수를 받은 후 추첨을 통해 구매자를 선정하는 ‘추첨제’를 권장하고 있다. 판매 시작과 동시에 구매자가 몰리고 여기에 불법 프로그램까지 동원되는 선착순의 부작용을 없애기 위함이다.

 

 

▲ 한국대중음악공연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공연기획자와 소비자 중 83.9%는 온라인상에서 이뤄지는 암표 거래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한 유명가수의 콘서트 현장(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독자제공]

 

중국, 대만 등에선 일부 인기가수 공연에 한정해 실명제를 시도하고 있다. 공연 티켓에 적힌 이름과 신분증 이름이 일치한 사람에 한해서만 입장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대만에선 지난 5월 암표 판매자에게 재판매 성사 여부와는 관계없이 티켓 액면가나 정가의 10∼50배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문화창의산업발전법’ 개정안이 통과되기도 했다. 대만은 국내 아이돌 가수의 정가 38만원짜리 공연 티켓이 최고 1734만원에 팔릴 정도로 암표 거래로 인한 폐해가 심각한 편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민간 주도의 암표 방지책만이 하나 둘 등장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앞서 가수 아이유의 소속사 카카오 M은 아이유의 10주년 콘서트 티켓 판매에 ‘실명제’를 도입했다. 가수 임영웅 콘서트의 주최 측 역시 불법 거래로 간주되는 예매 건에 대해서는 사전 안내 없이 바로 취소시키겠다는 강력한 대응을 예고한 바 있다.

 

서진형 경인여대(경영학과) 교수는 “암표가 기승을 부리게 되면 소비자들은 피로감이 커져 결국엔 포기 상태에 이르게 된다”며 “공연 예술이든 일반 소비재든 소비자가 구매를 포기하면 결국 해당 분야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유통환경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법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암표 거래 자체가 엄연히 불공정 거래인만큼 정부 차원의 단호한 조치와 적절한 개입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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