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중독’ 비극 현실로…일손은 부족한데 일한다는 사람은 없다
‘공짜중독’ 비극 현실로…일손은 부족한데 일한다는 사람은 없다

우리나라 고용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구직자는 일자리를 못 구하고 기업은 직원을 못 구하는 ‘아이러니’ 한 상황이 심화되고 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포퓰리즘 성격의 현금성 복지 정책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적은 수고만으로도, 혹은 일하지 않아도 일정 수준 이상의 수입이 생기다 보니 구직자들의 일자리에 대한 눈높이가 높아졌다. 기업은 현실 여건 상 높아진 눈높이를 맞추기 어렵다 보니 아예 채용을 포기하고 있다. 국가 경제에 치명적 타격을 입힐만한 ‘심각한 악순환’이 만들어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중소기업 “사람 뽑기 어려워”…청년 구직자 “청년수당 받으면서 대기업 취업 준비”

 

직원 10명 규모의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이한준 씨(41·남·가명)는 요즘 들어 부쩍 고민이 늘었다.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인력을 충원해야 하는데 사람 뽑기가 하늘에 별 따기 수준이다. 처음엔 중소기업 평균 연봉 수준인 2800만원에 초봉을 책정했다가 결국 3000만원으로 올리기까지 했는데 여전히 이력서조차 들어오지 않는다. 직원 몇몇에게 물어보니 만약 앞으로의 가능성을 배제한다면 실업급여나 청년구직수당 등을 받으며 편하게 아르바이트만 해도 충분히 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이 씨는 “예전에도 초봉 2800만해도 사람 뽑기가 수월했는데 불과 몇년만에 구직자들 눈(기준)이 부쩍 높아진 것 같다”며 “우리 같은 중소기업은 회사 성장에 맞춰 연봉 성장률을 높게 책정할 순 있지만 처음부터 높은 연봉을 주기는 어려운데 당장 사람 뽑기가 어려우니 고민이 많다”고 토로했다. 이어 “당장 급하다고 초봉을 대폭 올릴 순 있지만 기존 직원들의 형평성 문제가 생길 것 같아 그 마저도 쉽지 않아 답답할 따름이다”고 부연했다.

 

구직자들에게도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그들 역시 자신에게 유리한 판단을 내려 취직을 미루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취업준비생 양현지 씨(25·여)는 올해 초 대학교를 졸업했지만 일부러 구직 활동을 하지 않았다. 이왕이면 연봉을 많이 주는 대기업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위해 외국어와 자격증 공부를 하기로 했다. 그나마 취직이 쉬운 중소기업에 들어갈까도 고민했지만 연봉 수준을 보니 청년구직수당을 받으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어 기왕이면 대기업에 들어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양 씨는 “사실 요즘엔 지자체 등에 신고만 해도 몇십만원은 그냥 들어오기 때문에 알바를 하면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고도 천천히 구직 활동을 할 수 있다”며 “이렇게 구직 활동을 하다 보면 중소기업 평균 초봉 수준은 눈에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평균 초봉 수준은 아니더라도 지금도 실제 수입은 거의 비슷한데 굳이 부랴부랴 취직할 필요가 있나 싶다”며 “앞으로 계속해서 대기업 입사에 도전할 생각이다”고 덧붙였다.

 

기업은 구인난, 청년은 구직난…“무분별한 혈세 퍼주기가 초래한 비극의 시작”

 

한국경제인협회(이하 한경협),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우리나라 청년실업률은 4.5%를 기록했다. 청년실업자수는 18만5000명이나 됐다. 전체 실업자(57만3000명) 중 3분에 1 가량이 청년인 셈이다. 사회초년생 나이대인 20~29세 고용률도 61.5%로 30대와 40대, 50대 등에 비해 낮았다. 10명 중 4명은 놀고 있다는 의미다.

 

현재 정부와 각 지자체에서는 청년의 구직활동을 돕기 위해 다양한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 중에는 다양한 현금성 지원 정책이 다수 포함돼 있다. 대표적인 현금 지원 대책으론 ‘구직촉진수당’이 있다. 국민취업지원제도에 참여하는 저소득 구직자에게 월 50만원씩 최대 6개월 동안 현금을 주는 사업이다. 취업경험이 있더라도 미취업 상태이기만 하면 신청 가능하다. 또 수입이 있어도 월 50만원 미만이면 받을 수 있다.

 

굳이 저소득이 아니더라도 받을 수 있는 지원금도 있다. 국민취업지원제도 참여자에게 지급되는 ‘취업활동비용’이 대표적이다. 신청하면 최대 6개월 간 195만4000원을 받을 수 있다. 구직활동을 성실하게 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지만 입사 의지 없이 채용지원을 하거나 면접에 참여했다는 증빙만 내면 된다. 각 지자체에서 실시하는 ‘청년수당’도 미취업 청년을 위한 현금 지원 성격의 정책이다. 지급 액수나 기간은 각 지자체별로 다르다. 서울은 50만원씩 6개월 간 총 300만원을 지급한다.

 

그런데 높은 청년실업률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와 지자체의 현금 지원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뒤따른다. 고용시장의 상황이 ‘취직이 어렵다’고 판단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상당수 기업들은 사람을 구하고 싶어도 구하지 못해 극심한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례로 올 상반기 중견기업으로 불리는 300인 이상 사업장마저도 적극적인 구인활동에도 미쳐 채용하지 못한 인원이 1만2000명에 달했다. 3년 전 같은 기간에 비해 2배 수준으로 늘었다. 중소기업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건설업계만 보더라도 시공능력평가 200위 이하 중소종합건설업체의 94%가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고용시장의 반응과 통계 결과에서 ‘일자리 미스매치’의 심각성이 여실히 나타나다 보니 전문가들 사이에선 정부와 지자체의 현금성 지원 정책의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청년 구직자에게 불로 소득을 제공한 탓에 연봉 기대치만 높아졌고 결국 중소·중견기업 기피로 이어졌다는 반응이다. 반대로 대기업만큼의 여력이 없는 중소·중견기업 입장에선 높아진 눈높이를 맞추기 어렵다 보니 신규채용에 애를 먹고 결국 기존 직원들의 부담도 커져 계속해서 사람이 빠져 가나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서진형 경인여대 교수는 “그리스 등 극심한 경제위기를 겪은 나라들의 공통점은 경제가 호황을 이루던 시기에 무분별하게 포퓰리즘 정책을 펼쳤다는 것이다”며 “공짜로 퍼주다 보니 국민들이 어지간한 돈을 받고는 일을 하지 않았고 결국 일손이 없어 기업들이 망하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운을 뗐다. 이어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각종 현금성 지원 정책이 등장한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그리스와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며 “공짜는 술, 도박 등과 마찬가지로 중독성이 심하고 나라 전체를 피폐하게 만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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