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권 대학 졸업, 월급은 세후 400만원 이상, 외제차는 기본, 서울 아파트 자가 한 채 소유, 주말 호캉스나 여행, 오마카세로 힐링’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커뮤니티에서 정의하는 국내 청년들의 ‘평균’이지만 현실과는 괴리감이 크다. 최근 SNS를 중심으로 범람하고 있는 이른바 ‘평균 올려치기’ 문화가 청년들의 우울감과 박탈감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올라온 ‘결혼 결심할 때 남자친구 월급 마지노선’이란 설문조사 결과에 많은 누리꾼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작성자가 현실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금액과 조건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작성자는 “예전에는 500만원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물가를 고려하면 700만원 이상은 돼야 애들 학원이라도 보낼 것 같다”며 결혼할 수 있는 남자 월급의 마지노선 투표를 진행했다.
직장인 205명이 참여한 투표 결과 ▲400만원 이상이 38%로 가장 높았고 ▲1500만원 22.4% ▲500만원 15.1% ▲600만원 9.8% ▲800만원 9.2% ▲700만원 5.4% 순으로 나타났다. 200만원과 300만원은 선택사항에도 없었다.
SNS상에선 월급 200만~300만원은 노력이 부족하거나 능력이 없는 사람으로 취급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심지어 월급 300만원 이하 직장인을 ‘300충’이라며 비하하는 이들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SNS상에서 이뤄지는 ‘평균 올려치기’가 청년세대의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현실 동 떨어진 SNS 속 딴나라 세상, 월급 300만원 현실선 평균
통계청 자료를 살펴보면 SNS의 평균 올려치기 함정을 엿볼 수 있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 5000만명 중 주택 소유자는 1508만명으로 약 30.1%다. 주택 소유자 중 30대는 10.9%에 불과하다. 또 30대 전체 인구 중 주택 소유율은 약 25.3%로, 4명 중 3명은 무주택자다. 자가 주택을 보유하지 못한 30대가 74.7%로 더 많다.
임금근로자의 소득수준도 마찬가지다. 2021년 기준 임금근로자의 평균소득은 333만원, 중위소득은 250만원이다. 연령별로는 40대가 414만원으로 가장 높았고 20대의 경우는 240만원 수준으로 나타났다. 온라인 상에서 300충이라고 비하받는 월급 300만원은 20대 기준으로는 평균 이상이고 30대 기준으로는 평범한 수준이다.
갈수록 심해지는 ‘평균 올려치기에 ‘지식한입’이라는 유튜버는 ‘진짜 한국인 평균을 알아보자’는 영상을 게시했다. 유튜버는 영상을 통해 “"소수의 잘난 사람들만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다 보니, 이들이 평범함의 이미지를 독점했다"며 "이게 청년세대 전체의 자존감을 깎아내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월 300만원이 뭐가 어렵냐’는 커뮤니티 글에 달린 댓글 반응은 SNS와는 정반대다. 해당 글을 접한 한 누리꾼은 “평범한 직장인으로 300만원 받는 건 쉽지 않다”며 “세후 300만원을 초봉으로 받으려면 공기업, 5급 공무원, 금융계, 전문직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일반 기업에서 그 정도 받으려면 30대 후반 과장급은 돼야한다”고 지적했다.
직장인 이기운(31) 씨는 “나도 일을 하기 전에는 (월급) 300만원을 쉽게 봤는데 막상 일을 해보니 힘들다”며 “저런 글을 쓰는 사람은 백수거나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사람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현실과 동떨어진 SNS 실태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SNS는 연출된 세상이다. 본래는 가장 좋은 시간과 추억을 기록하고 공유하기 위한 공간이지만 지금은 본질이 달라졌다”며 “최근에는 SNS 연출이 허세로 변질돼 비하 발언까지 나도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SNS는 연출된 가짜세상…신뢰성 떨어지는 만큼 경각심 가져야”
SNS에 만연한 평균 올려치기로 인해 구직이나 결혼, 출산 등을 포기하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누적 수강생 900만명을 자랑하는 정승제 강사는 최근 국내 저출산 문제 원인으로 SNS의 올려치기 및 허세 문화를 지목했다.
정 강사는 “인스타그램 같은 SNS는 남들이 나보다 형편이 좋은 거로 착각하게 만든다"며 ”SNS 안에 있는 이들의 얼굴은 가식과 거짓인데도 보고 나면 자신만 불행하고, 자신만 아이를 못 키울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한다“고 말했다.
외신에서도 국내 SNS 올려치기 문화를 비판적으로 다루고 있다. 일본의 데일리 신초는 지난 3월 “한국의 남성들은 마음에 드는 여성 앞에서는 수입이 많고 센스 있는 남자인 척하기 위해 돈이 없어도 어쩔 수 없이 ‘오마카세’를 찾는다”고 전했다. SNS 올려치기 문화로 연애 시작부터 돈이 없다면 연애하지 못한다는 인식이 한국 청년들 사이에 뿌리 깊게 박혀 있다는 해석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국내 프러포즈 문화에 주목했다. WSJ는 지난 6월 지면 1면에 “한국에서 하루 숙박비가 100만원이 넘는 고급 호텔에서 명품 가방, 주얼리 등을 선물하는 게 일반적인 청혼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며 한국 결혼율이 사상 최저 수준인 배경 중 하나로 이러한 호화 웨딩 트렌드를 지목했다.
문제는 이러한 SNS의 평균 올려치기로 인해 연애나 결혼 등을 포기하는 청년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김가람(32) 씨는 “내 소득으로는 연애를 하면서 오마카세나 골프, 호캉스 등을 할 형편이 못된다”며 “연애 자체를 그냥 안 하기로 마음먹었다. 만약 연애를 하게 된다고 해도 집이 없어 결혼까지 가기는 어렵단 걸 알기에 시간이나 돈을 쓰기도 아깝단 생각이 크다”고 밝혔다.
SNS 올려치기 문화는 해외에도 있지만 국내에서 유독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우리나라는 자기 자신의 내적 만족감이나 과거의 자신과의 비교를 통해 성취감 혹은 행복감을 느끼기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려는 경향이 크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SNS 허세는 과도한 연출이므로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한다. 이 교수는 “SNS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본래 모습을 감추고 모이는 장소인 만큼 신뢰성이 매우 떨어진다”며 “다행히 최근 성인들은 SNS의 올려치기 문화에 경각심을 가지기 시작했지만 청소년들은 아직 이를 분간하기 어렵기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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