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화석연료를 대체할 신재생에너지 활용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으로 관측돼 석유산업의 미래는 더욱 어둡다는 게 관련업계의 중론이다. 국내 정유사들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발 빠르게 대처에 나서고 있다. 신재생에너지인 ‘수소’를 생존 돌파구로 삼고 사업 구조 재편에 공을 들이고 있다.
글로벌 대세로 자리매김 한 친환경…국내 정유사들 체질개선 안간힘
정유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정유사들은 액화수소, 수소연료전지 등 수소 관련 사업 역량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일례로 SK이노베이션은 미래에너지 관련 유망기술을 보유한 기업 ‘아모지’(암모니아 기반 수소 연료전지)에 대대적인 투자에 나선 상태다. 또 최근 공개한 ESG리포트에서 오는 2026년까지 1조790억원을 미래 에너지 기술과 사업에 투자한다는 중기 전략도 발표했다.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은 “탄소를 없애는 에너지를 고려할 때 전 세계적으로 수소는 반드시 필요한 에너지원이지만 현재 수요에 비해 국내 인프라가 상당히 열악한 수준이다”며 “특히 국내에선 수소 충전소가 많이 필요한데 일정 수준도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선제적인 지원에 나서 수소 충전소 등을 더 확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연간 약 20만톤(t)의 수소 생산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HD현대뱅크오일은 수소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회수·활용해 ‘블루수소’를 생산하고 있다. 블루수소는 화석연료인 석탄·갈탄이나 천연가스(CH4)를 통해 생산하는 일반 수소와 달리 이산화탄소를 포집·압축·수송해 지하에 저장하는 CCS(Carbon Capture & Storage) 기술을 적용해 생산하는 수소를 말한다. 일반 수소보다 생산단가는 높지만 탄소배출이 적다는 장점을 지녔다.
에쓰오일은 새 성장 전략인 ‘비전2030’의 일환으로 수소 부문을 미래 성장 동력원으로 잡고 관련 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현재 수소의 생산·유통·판매에 이르는 수소산업 전반의 사업진출을 계획한 상태다. 또 에스오일 모회사인 아람코는 한국·사우디 합작 기업인 ‘에프씨아이’와 연구·개발 협력체계 구축 업무협약도 맺었다. 수소연료전지 전문기업인 에프씨아이와의 업무협약을 통해 수소 사업의 역량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GS칼텍스는 타 정유사에 비해 비교적 늦게 수소 사업에 진출했지만 사업진행 만큼은 여느 기업 못지 않다. GS칼텍스는 한국동서발전과 함께 1000억원을 투자해 여수시 소재의 한국동서발전 호남화력발전소 내 유휴부지에 15㎿ 규모의 수소 연료전지 발전소를 건설한다. 해당 발전소는 GS칼텍스 여수공장에서 생산되는 부생수소를 공급받아 산소와의 화학반응을 통해 전기를 생산하게 된다. 생산되는 전기는 약 5만 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국내 정유사들의 수소사업 진출과 관련, 안상연 중앙대학교 화학신소재공학부 교수는 “수소는 탄소제로 시대를 위한 차세대 신재생에너지의 핵심으로, 2019년 유럽연합에서 수소 로드맵을 발표한 이후 주요 선진국들이 수소 경제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우리도 이에 발맞춰 정부 차원에서 기업들의 수소사업을 적극 장려해야하고 관련 인프라 구축에 자본금을 확실히 투자해야할 것이다”고 밝혔다.
업황 악화에 국내 정유사들 실적·주가 줄줄이 내리막…“정유사의 외도는 생존 몸부림”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국내 정유사들이 수소 사업에 집중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생존’ 때문이다. 전 세계적인 화석연료 감축 움직임에 따라 석유 수요가 감소하면서 정유사 수익과 직결된 국제유가와 정제마진이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당장 국내만 해도 한국석유관리원에 따르면 전국 주유소는 2018년 말 1만1750개에서 지난 5월 1만1100개로 감소하며 600개 넘게 사라졌다.
또 국제 유가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등 주유 산유국의 감산에도 불구하고 미국 제조업 부진과 원유 수요 둔화 우려 등이 지속되면서 내림세가 계속됐다.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 따르면 지난해 7월 배럴당 100달러를 넘겼던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28일(현지시간) 기준 79.84달러에 그쳤다.
정유사의 수익성 지표인 정제 마진 역시 올해 2분기 내내 손익분기점인 4~5달러대를 횡보하고 있다. 핀란드 석유·가스 국영 회사인 Neste에 따르면 월평균 정제 마진은 지난해 6월 24.5달러까지 치솟은 뒤 점차 내려와 올해 4월 3.5달러까지 추락했다. 5월과 6월 평균 정제 마진은 각각 4달러, 4.6달러로 소폭 반등했으나 업계는 여전히 실적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전망이다. 일반적으로 정제마진 4~5달러는 손익분기점으로 여겨진다. 최근의 수치는 사실상 제품을 만들수록 손해를 보는 수준인 셈이다.
최근 발표된 국내 정유사의 2분기 실적은 석유업계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올해 2분기 연결기준 실적으로 매출 18조7272억원, 영업손실 1068억원을 기록했다고 28일 공시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9%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적자 전환했다. 특히 석유사업은 경기둔화 우려에 따른 정제마진 하락 영향으로 전 분기 대비 6860억원 하락한 4112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HD현대 역시 정유 부문인 HD현대오일뱅크가 올해 2분기 매출 6조9725억원, 영업이익 361억원을 기록했다고 공시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20.8%, 97.4% 감소한 수치다. 에쓰오일 역시 정유부문에서 적자전환하며 전년 동기 대비 영업이익이 97.9% 감소했다. 비상장사인 GS칼텍스는 아직 2분기 성적을 공시하지 않았지만 저조한 실적을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 다수다.
증권가에선 정유업계에 대해 친환경 신사업 발굴 이슈가 발생하지 않으면 주가 하락은 필수불가결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석유수요 감소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인 만큼 새로운 수익원 발굴 없인 실적을 장담할 수 없는 탓이다. 국내 정유사들이 수소 관련 사업에 적극 나서곤 있지만 아직까지 초기 단계라 주가에 주는 영향을 미비한 편이다.
SK이노베이션의 현재 주가(31일 종가 기준)는 21만6000원으로 지난해 24만2000원을 기록한 이후 11% 가량 하락했다. 다만 최근 들어 2차전지 자회사 SK온의 호실적 덕에 일부 회복세를 보였다. 18일 17만500원까지 떨어졌던 주가는 단기간에 26% 가까이 급등했다.
에쓰오일 주가 역시 지난해 12만3000원을 기록한 이후 지속적인 하락세를 겪으며 고점대비 40% 가량 내렸다. 31일 기준 에쓰오일의 종가는 7만4900원이다. HD현대뱅크오일과 GS칼텍스는 현재 국내 주식에 상장되지 않았다.
정경희 키움증권 연구원은 “아시아의 정유산업은 대체로 원유 수입에 따른 재고평가손익 및 환차익손익 노출이라는 구조적 아킬레스건을 가지고 있다”며 “세계적 친환경 흐름에 따르지 않게 되면 장기 성장 둔화를 겪으며 업황 자체에 투자 매력도가 급격하게 떨어질 것이다”고 강조했다.
조현렬 삼성증권 연구원은 “SK이노베이션의 경우 SK온이 2분기 역대 최대 분기 매출을 달성하며 주가 상승을 견인하고 있지만 에쓰오일은 원유사업의 의존도가 굉장히 높기 때문에 주가 상승 여력이 그렇게 크지 않다”며 “신재생에너지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가운데 정유산업은 그 업황 자체만으로 보면 하향산업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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