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대로 죽어줄게”…반복되는 학폭, 피해자 보호 ‘없었다’
“소원대로 죽어줄게”…반복되는 학폭, 피해자 보호 ‘없었다’

▲ 해맑음센터는 폐교를 했지만 피해 학생들을 위한 활동을 계속할 예정이다. 센터측은 수도권 진출을 위해 자체적인 방안을 모색중이다. 사진은 수료식에서 끌어 안은 조정실 해맑음센터장(왼쪽)과 학부모. [사진=해맑음센터]

  

“학교폭력을 당해보니 왜 아무한테도 얘기할 수 없는지 알 것 같다. 내 꿈,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이 부정당하니 온 세상이 나보고 그냥 죽으라고 소리치는 것 같다.”

 

최근 충남 천안에서 학교폭력으로 세상을 떠난 김 모(18)군의 수첩에서 발견된 내용이다. ‘학교폭력’을 향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정작 피해자에 대한 지원 조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학교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과 정책이 대부분 가해자 처벌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정작 피해자에 대한 지원과 대책은 전무하다는 지적이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인 김 군은 지난 25일 천안 동남구 자택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병원으로 긴급 이송했지만 결국 숨졌다. 김 군의 유서가 적힌 수첩에는 3년간 당한 학교폭력 내용이 적나라하게 적혀있었다.

 

학교폭력 가해자들은 김 군의 출신 지역과 외모를 비하하거나 수치스러운 모습을 SNS 올리는 등 학교폭력을 3년간이나 지속됐다. 그런데 정작 3년 동안 이어진 학폭에서 김 군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홀로 견뎌온 것으로 나타났다. 담임교사에게 말해 봤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 학교폭력이 또 다시 사회적 문제로 조명받고 있다. 문제는 매년 관련 대책을 내놓지만 학교폭력은 줄어들지 않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매년 반복되는 보여주기식 학교폭력 정책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김 군의 수첩적힌 학교폭력 기록. [사진=유족 제공]

 

김 군의 수첩에는 “(학교폭력 처분) 1~3호는 생활기록부에 기재조차 안된다. 안타깝지만 나는 일을 크게 만들 자신도 없고 능력도 없다”며 “내가 신고한들 달라질까?”라는 고통스러운 심경이 적혀 있었다.

 

또 “담임선생님과 상담 중 학교 폭력 이야기가 나왔지만, 선생님은 다시 나를 부르지 않았다”며 “선생님이 부모님께 신고하지 못하게 겁을 준 것 같다”고 그간 학교폭력을 방치한 학교에 대한 원망이 섞인 글도 함께 있었다.

 

전문가들은 매년 학교폭력 이슈가 터질 때마다 정부가 대책을 내놓고는 있지만 실상은 달라지는 것이 하나 없다고 꼬집었다. 문제가 발생할 때만 반짝 대책이 나오지만 잠깐뿐이다. 관리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학교폭력 방지 대책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 버린다. 결국 피해자들은 혼자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지적이다.

 

여미정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원주강원센터장은 "학교폭력 조치에 대한 불복 절차가 진행될 경우 기간이 길어져 2차 가해까지 발생한다"며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이 분리되고, 2차 가해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도록 법적 보완과 교육 현장의 노력이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방 빼세요, 또 외면받는 피해자들…국내 유일 학폭 치유기관 해맑음센터 폐쇄

  

▲ 국내 학교폭력 피해자 치유 관련 시설과 지원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끊임 없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까지 진전이 없다. 해맑음센터의 경우 지난해 안전문제가 터졌지만 끊임없는 개선 문의에도 아무런 조치나 지원을 받지못하고 결국 21일 폐교했다. 사진은 국내 유일 피해자 전문 치유 기관 '해맑음센터' 전경. ⓒ르데스크

  

학교폭력이 전국적으로 이슈화되며 다양한 피해자 방지·지원 대책들이 나왔지만 학폭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은 퇴보하고 있다. 지난 21일에는 전국 유일 학교폭력 피해자 전문 치유시설인 ‘해맑음센터’가 개교 10년 만에 폐쇄됐다. 건물 안전상 문제로 교육부가 16일 퇴거 명령을 내렸다. 재학생 7명은 19일 갑작스러운 수료식을 끝으로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갑작스럽게 이별한 해맑음센터 학생들은 교육부가 안내한 ‘Wee센터’와 ‘Wee스쿨’로 등교하게 된다. 해당 기관들은 가해 성향 학생들도 함께지내는 시설이다. 피해자들은 학폭 트라우마로 불안함을 호소했다. 그럼에도 교육부는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조치로 피해자들을 대하고 있다.

 

해맑음센터는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해서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었다. 대전역에서도 1시간 버스를 타고 달려야 도착하는 외각, 열악하기 짝이 없는 시설, 안전이 우려되는 낡은 건물 등이 국내 유일 학폭 피해자 치유시설의 현주소다. 해맑음센터 측에 따르면 지속적으로 교육부에 개선을 요구했지만 구체적인 방안 없이 ‘노력 중’이라는 답변만 받았다.

 

조정실 해맑음센터 센터장은 “모든 게 부족한 상황이다”며 “피해자 보호, 심의위 문제, 치유기관 안내 부족, 열악한 지원 등 어느 것 하나 피해자를 지원해 준다는 뚜렷한 대책이 없다”고 호소했다.

 

교육부는 해맑음센터의 새로운 부지로 경북 구미, 경기 양평, 충남 서산 등 대전 해맑음센터와 별반 다를 곳 없는 열악한 후보지들을 내세웠다. 해맑음센터는 수도권으로 이전 추진을 포기하지 않았다. 좀 더 좋은 시설에서 더 많은 아이들을 치유하기 위해서다.

 

김서영 해맑음센터 교사는 “임대가 가능한 시설을 해맑음센터 교사들이 직접 알아보고 방문해서 구체적인 협의를 해나가는 과정이다”며 “빠른시일 내에 임시 거주지 임대 및 교육 환경 마련을 통해 학교폭력 피해 학생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학폭 이슈 터지만 그때만 반짝…피해자가 아닌 여론 눈치보기

 

▲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해맑음센터가 폐쇄하고서야 센터를 찾아 지원을 약속했다. 해맑음센터는 오래전 부터 낡고 열악한 시설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 왔다. 사진은 해맑음센터를 방문한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오른쪽 두 번째). [사진=교육부]

 

해맑음센터 폐쇄와 김 군의 극단적 선택으로 학교폭력 피해자에 대한 지원이 시급하다는 비판이 일자 뒤늦게 정부가 움직이고 있지만 보여주기식 행보만 일삼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26일 해맑음센터를 방문해 안전실태를 점검하고 학교폭력 예방·치유 지원 강화를 약속하고 나섰다. 이 부총리는 해맑음센터를 찾아 “교육부가 학교폭력 대책을 내놨고 그 대책을 하나씩 실천하는 단계에 있다”며 “학교폭력 피해자와 치유에 대한 국가 차원의 책임을 반드시 확립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그동안 방치만 하던 교육부가 학폭문제가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르고서야 움직였다는 점에서 보여주기식 행보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해맑음센터의 문제는 이미 10년이 넘어가는 고질병이다. 이전부터 구체적인 문제점과 개선안을 요구했음에도 ‘노력 중’이라는 말로 일갈했던 정부의 태도가 급격하게 바뀐 것이다.

 

또한 각 지역 교육청들은 일시에 학교폭력 방지와 세미나, 캠페인 등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경기도 교육청은 ‘학교폭력 멈춰! 학부모 온라인 릴레이 공감 토크’를 4회 진행할 것이라 밝혔다. 공감 토크로 학교폭력 이해를 돕고 화해와 회복 중심의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시간을 가지겠단 취지다. 당진교육청은 학교폭력 예방 문화공연 및 소통강연회를, 경남교육청은 학교폭력 예방 지원 방안을 점검한다 밝혔다.

 

모두 사건이 발생하고 학폭 논란이 불거지자 시작된 조치들이다. 전문가들은 학교폭력이 터져야만 움직이는 정부와 교육청의 행보를 지적한다. 이전부터 계속되는 학폭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법은 찾지 못하고 사건이 터졌을 당시에만 잠시 보여주기용 정책을 펼친다는 것이다.

 

조정실 해맑음센터장은 “매년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을 발표하고, 최근에도 여러 대책들이 발표되었다”며 “다만 피해자 보호 및 치유 지원 등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있다”고 평가했다. 또 “해맑음센터만 해도 지난해 기숙동이 D 등급으로 폐쇄되고 9개월간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 매년 전담기관, 피해자 지원기관과 정책을 늘린다고 하지만 관리와 점검조차 안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상담전화 ☎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 129, 생명의 전화 ☎ 1588-9191, 청소년 전화 ☎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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