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평안한 노후를 보낼 때 우린 농기구를 듭니다”
“남들은 평안한 노후를 보낼 때 우린 농기구를 듭니다”

[Le view<254>]-고령화 사회, 노인들이 위험하다(下-인력부족) “남들은 평안한 노후를 보낼 때 우린 농기구를 듭니다”

마을의 절반 이상 70세 이상 노인, 고되고 힘들어도 대부분 직접 농사일

르데스크 | 입력 2023.05.26 15:55

 

▲ 최근 농촌에선 반강제 노역에 시달리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 일손 부족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외국인 근로자들이 대거 출국하면서 농촌의 일손 부족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사진은 한창 모내기가 한창인 한 농가의 모습. [사진=뉴시스]

 

농촌의 노인들이 불가피한 반강제 노역에 시달리고 있다. 고령의 몸을 이끌고 새벽부터 직접 농기구를 들고 논과 밭으로 나가는 게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아예 농사를 포기하자니 병원비, 세금 등 경제적 부담이 만만치 않고 수입이 조금 줄어도 사람을 쓰자니 일할 사람이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다. 마지막 대안인 외국인 근로자들도 코로나19 이후로 크게 줄어들어 더 이상 기댈 곳도 없다. 고령의 농민들은 “외국인 이민을 허용하는 등 무언가 특단의 대책이 등장하지 않으면 농촌 사회가 붕괴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몸은 아픈데 일할 사람은 없고”…고령의 몸 이끌고 논·밭으로 나가는 농촌 노인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농·어촌에서 농사를 짓거나 어업에 종사하는 농·어민의 평균 연령은 68세였다. 70세 이상 농·어민은 전체의 45.5%에 달했다. 전년 대비 2.8%p 증가했다. 농·어촌의 고령화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음을 방증하는 수치다. 특히 농가의 경우 1년 동안 인구는 5만명 감소했으나 65세 이상 인구는 4만1000명 증가했다. 고령 인구의 비중이 갈수록 높아진다는 의미다.

 

르데스크가 직접 찾은 농촌의 실상은 통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논·밭에서 한창 일하는 농민 중 상당수가 70세 이상의 노인이었다. 80세 이상의 노인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엔 그들의 고단함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밭에 거름을 뿌리는 와중에도 수시로 허리를 굽혔다 폈다를 반복했고 아예 밭고랑에 털썩 주저앉아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일하는 시간과 휴식 시간 비율이 거의 1:1에 가까워 보였다. 그만큼 체력적인 부담이 크다는 의미로 비춰졌다.

 

경기도 연천군에서 밭농사를 짓고 있는 김성철 씨(74·남)는 “우리 동네만 해도 사실 농사를 짓는 사람 대부분 70세 이상이다”며 “80세가 넘어서도 직접 농사일을 하는 사람도 여럿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젊은 사람들은 죄다 도시로 가버려 일할 사람이 없는 데 별 수 있겠나”라며 “허리고 팔이고 안 아픈 곳이 없지만 그럼에도 새벽 5시만 되면 농기구를 챙겨서 밭으로 나온다”고 부연했다.

 

 

▲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농·어촌에서 농사를 짓거나 어업에 종사하는 농·어민의 평균 연령은 68세였다. 70세 이상 농·어민은 전체의 45.5%에 달했다. 전년 대비 2.8%p 증가했다. 농·어촌의 고령화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음을 방증하는 수치다. 사진은 모내기가 한창인 한 농가의 모습. [사진=뉴시스]

 

김 씨는 ‘농사를 아예 안 짓거나 사람을 쓰는 것은 어떠냐’는 물음에 “땅을 가졌으니 세금도 내야하고 꼬박꼬박 병원도 다니고 하는데 도시에 나가 열심히 일하는 자식들에게 계속 손을 벌릴 수 없으니 내 몸 건사할 돈은 벌어야 하지 않겠나”라며 “그렇지 않아도 예전에는 사람을 썼었는데 그 때는 지금보다 수입은 좀 줄었어도 몸은 편했다. 하지만 요즘엔 도무지 사람을 구하려고 해도 일 한다는 사람이 없다”고 토로했다.

 

같은 마을에서 논농사를 짓고 있는 황영식 씨(69·남)는 “3년 전 까지만 해도 막내 아들과 함께 농사를 지었는데 지금은 혼자 하고 있다”며 “수입도 변변찮고 일은 고되고 하니 차라리 도시에 나가 공장일이라도 한다하는데 차마 말릴 수가 없었다”고 운을 뗐다. 이어 “요즘엔 허리도 아프고 목도 아파 땅을 내놨는데 그 마저도 산다는 사람이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농사를 짓고 있다”며 “일 할 사람이 없어 농사짓는 규모를 줄였더니 세금내고 병원비하고 나면 남는 것도 없다”고 성토했다.

 

그러면서 “일할 사람이라도 있으면 놀리는 땅에 농사를 짓고 하면 그나마 상황이 조금이라도 나아질텐데 도무지 일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며 “수확철에 사람을 구하려고 하면 하루 일당을 최소 20만원은 줘야 한다. 한창 외국인들이 많이 일할 때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자기들 나라로 돌아가서 그런지 요즘엔 외국인 인부 구하기도 쉽지 않으니 인건비가 너무 올랐다”고 토로했다.

 

유명무실 제도 전락한 외국인 근로자 합법 채용…“국가 주도의 농촌 인력 보급책 마련돼야”

 

국회 국민의힘 최춘식 의원(경기 포천시·가평군)이 조사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외국인 계절근로자 제도의 도입률은 △2017년 70% △2018년 76% △2019년 81% △2020년 0% △2021년 8.7% △2022년 45% 등이었다. 코로나19 펜데믹 당시 외국인 봉쇄 조치로 뚝 떨어진 도입률은 여전히 예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외국인 계절근로자 도입률은 정부에서 배정된 인원 중 실제 국내에 도입된 인원의 비율이다. 비율이 낮다는 의미는 그만큼 국내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 국회 국민의힘 최춘식 의원(경기 포천시·가평군)이 조사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외국인 계절근로자 제도의 도입률은 △2017년 70% △2018년 76% △2019년 81% △2020년 0% △2021년 8.7% △2022년 45% 등이었다. 코로나19 펜데믹 당시 외국인 봉쇄 조치로 뚝 떨어진 도입률은 여전히 예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고 있는 한 외국인 근로자의 모습.(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뉴시스]

 

우리나라는 농촌의 외국인 근로자를 합법적으로 채용할 수 있는 절차가 마련돼 있다. 우선 각 농촌의 부족 인력을 지자체가 파악해 법무부에 도입신청을 하면 ‘계절근로자 배정심사협의회’가 각 지자체별로 도입 인원수를 정해준다. 이후 각 지자체는 사전에 MOU를 맺은 해외 지자체를 통해 인력을 모집해 선발한 후 입국시켜 부족한 일손을 채운다. 그러나 농촌 지자체 역량만으론 해외 지자체와 소통하기 쉽지 않고 제도 자체를 인지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 사실상 불법 체류 외국인들을 채용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최 의원은 “기초 단위 지자체의 상황을 보면 직접 해외 국가나 지자체와 소통해서 제대로 협의할 수 없는 힘든 여건들도 있고 제도 자체를 잘 알지 못하는 지자체도 존재한다”며 “당장 포천·가평만 보더라도 지난해 외국인 계절근로자 도입률은 0%였다. 각 농가들은 외국인 근로자를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고 진단했다.

 

이어 “농림부가 조속히 이 문제에 대해 직접 주관이 돼서 부처 내 TF를 만들고 비자 담당 법무부, 외교 채널 담당 외교부 등 담당 공무원들을 파견 지원 받은 후 정부 차원에서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또 현재 외국인 계절근로자 비자가 E-8인데 체류기간이 고작 5개월이고 연장도 불가능한데 이 부분에 대해서도 개선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농민들도 최 의원에 주장에 일정 부분 호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경기도 광주시에서 논농사를 짓고 있는 이영석 씨(75·남)는 “지금 농촌엔 사실상 노인들만 남았다고 보면 된다”며 “일손이 부족해 사람을 불러도 최소 60세는 넘은 사람이 오다 보니 노무지 기한 내에 일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젊은 사람들은 아무리 돈을 많이 줘도 농촌에 와서 농사일을 하려 하지 않는데 도대체 어떻게 농사를 지어야 할 지 막막하다”며 “차라리 외국인들이라도 맘 놓고 쓸 수 있도록 정부가 직접 나서서 일손부족 문제를 해결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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