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태영호 국민의힘 최고위원에게 내년 총선 공천을 언급하면서 정부의 일제 강제동원 피해 배상안 옹호 발언을 종용했다는 음석녹취록이 나와 파문이 일고 있다. 태 최고위원 등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지만 야당‧반윤(반 윤석열)계는 ‘배후 색출’을 촉구했다.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 브리핑에서 “이 수석이 태 최고위원에게 총선 공천을 볼모로 정부 외교정책을 옹호하도록 압박을 가한 녹취록이 공개됐다. 이는 대통령실이 국민의힘 총선 공천에 분명한 개입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며 “대통령실이 공천을 미끼로 당무에 개입했다면 민주주의 근간인 삼권분립을 훼손하는 폭거이자 불법행위”라고 주장했다.

전날(1일) MBC가 녹취록을 토대로 보도한 내용에 의하면 태 최고위원은 지난 3월9일 저녁 국회의원회관 사무실에서 보좌진들을 소집했다. 이 자리에서 태 최고위원은 “오늘 나 들어가자마자 정무수석이 나한테 ‘오늘 발언을 왜 그렇게 하냐. 민주당이 한일관계 가지고 대통령 공격하는 거 최고위원회 쪽에서 한마디 말하는 사람이 없냐. 그런 식으로 최고위원 하면 안 돼’ (라고) 바로 이 수석이 얘기했다”고 말했다.

또 이 수석이 ‘당신이 공천 문제 때문에 신경 쓴다고 하는데 당신이 최고위원 있는 기간 마이크 쥐었을 때 마이크를 잘 활용해서 매번 (내가) 대통령한테 보고할 때 오늘 (태 최고위원이) 이렇게 했습니다라고 정상적으로 들어가면 공천 문제 그거 신경 쓸 필요도 없어’라고 말했다고 했다.

태 최고위원은 이 수석이 ‘아니, 오늘 한일관계 얼마냐 좋냐(라고) 첫 상견례 자리에서 당신이 그거 탁 치고 들어왔으면 대통령한테 가서 이거 오늘 한일관계 태영호가 한마디 했습니다 이러면 얼마나 좋을 뻔했느냐’고 말했다며 이 말을 듣고선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 했다.

보좌진 회의에서의 태 최고위원 음성이 녹음된 날은 김기현 대표, 태 최고위원 등 국민의힘 새 지도부가 선출된 3‧8전당대회 이튿날이다. 3월9일 오전 새 지도부는 첫 최고위원회의를 열었다. 당시 태 최고위원은 한일관계와 관련된 별다른 발언을 하지 않았다.

태 최고위원은 이후 3월13일 최고위에서 “일제 강제징용 해법과 한일관계 문제와 관련해 민주당이 국익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정치공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에는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일본 외교청서가 공개되자 태 최고위원은 “미래지향적 한일관계에 대한 일본의 화답 징표”라고 주장했다.

권칠승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브리핑에서 “태 최고위원이 쏟아냈던 야당을 향한 무리한 비난과 노골적인 정권 옹호는 대통령실의 공천압박에서 기인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공천은 대통령실이 침범할 수 없는 정당의 고유사무로 이번 사안은 정부의 정치중립 훼손,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며 배후의 정점에 누가 있는지 반드시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태 최고위원은 MBC 보도 후 낸 입장문에서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그는 “본 의원실의 내부 보좌진 회의 녹취록이 유출돼 보도된 것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며 “이 수석은 본 의원과 만난 자리에서 한일관계 문제나 공천 문제에 대해 언급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했다. 또 “녹취에서 나온 제 발언은 전당대회가 끝나고 공천에 대해 걱정하는 보좌진을 안심시키고 정책 중심 의정활동에 전념하도록 독려하는 차원에서 나온 과장 섞인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이진복 수석은 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오픈라운지에서 기자들과 만나 “제게 의견 물으면 답할 수 있겠지만 제가 공천해 줄 위치에 있지도 않고 그런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며 “태영호가 어제 두어 통 통화(를 했다). (태 최고위원이) ‘직원들에게 설명하다 보니 과장되게 얘기한 거 같다. 죄송하다’고 했다”고 밝혔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2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윤석열정부 1년 : 한미정상회담 성과와 과제’ 토론회 후 기자들과 만나 “아니 그러니까 자기(태 최고위원)가 부풀렸다고 그러지 않나. 그런 말한 적 없다는데, 왜 자꾸 안 했다는데 했다고 묻느냐”고 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의혹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태 최고위원과 보좌진 간 회의 녹취록 유출 경위를 추측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조응천 의원은 2일 BBS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에서 “의원실 내부에서 보좌진과 회의한 내용이 지금 고스란히 나갔다? 이는 의원실에 큰 문제가 있었던 걸로 보인다”며 “결국은 태 최고위원으 의원실 운영 과정에서 (보좌진들을) 좀 너무 몰아친 것에 대한 그런 반감 같은 것도 좀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태 최고위원은 지난달 17일 ‘돈봉투 전당대회’ 의혹에 휩싸인 민주당을 겨냥해 “쓰레기(Junk) 돈(Money) 성(Sex) 민주당. 역시 JMS 민주당”이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논란이 발생하자 즉시 삭제하고서 “보좌진 실수였다”고 해명했다. 또 “저와 당사자(SNS 담당 보좌진)를 당 윤리위원회에서 심사토록 요청하겠다”고 했다. 태 최고위원은 같은 달 18일 9급 행정비서관, 27일 9급 홍보비서관 및 8급 수행비서관 공개채용에 나섰다.

정치권에서는 내년 총선에서의 태 최고위원 공천에 비상등이 켜진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그는 ‘JMS’ 및 “제주 4‧3 북한 김일성 지시로 촉발” 등 발언으로 징계절차를 밟는 중이다. 이 와중에 대통령실 공천 개입 의혹까지 촉발된 것이다.

국민의힘 윤리위는 오는 8일 2차 회의에서 태 최고위원 소명을 듣고 징계수위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윤재옥 원내대표는 “본인이 사실이 아니라고 하기 때문에 일단 입장을 존중하고 상황을 지켜볼 것”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실 수사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유승민 전 의원은 1일 SNS에서 “만약 사실이라면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여당 최고위원인 현역 국회의원에게 ‘용산 하수인’ 역할을 하도록 공천으로 협박한 것”이라며 “도저히 믿기 어려운 충격적인 뉴스다. 공직선거법이 금지하는 대통령실의 불법 공천 개입이 아닌지 검찰‧경찰은 신속‧공정하게 수사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