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은 OK 회장은 NO”…성차별 없는 경영승계 딱 절반 왔다
“사장은 OK 회장은 NO”…성차별 없는 경영승계 딱 절반 왔다
▲ 우리나라 경제계는 과거에 비해 여성 임원의 비중이 크게 늘고 고위 임원에 선임되는 사례가 늘긴 했지만 오너 일가의 경영 승계는 여전히 아들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사진은 차세대 여성리더 컨퍼런스에 참석한 여성 기업인들. [사진=뉴시스]

 

여성에 대한 인식 변화와 사회적 요구 등에 의해 생겨난 경제계 여풍(女風)은 아직까지 미풍(微風, 약하게 부는 바람) 수준에 그치고 있다. 과거에 비해 여성 임원의 비중이 크게 늘고 고위 임원에 선임되는 사례가 늘긴 했지만 오너 일가의 경영 승계는 여전히 아들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그룹의 전체에 대한 지배력과 주력 계열사의 경영권, 그룹 전체를 대표하는 ‘회장’ 또는 ‘총수’ 타이틀은 여전히 아들의 몫이다. 일부 기업의 경우 딸들이 경영 일선에 등장하긴 했지만 사업 일부와 약간의 지분을 물려받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여성에 갈수록 관대해지는 기업들이지만 유독 경영승계에서 만큼은 여전히 남성 선호가 뚜렷하다.

 

여성 임원 늘긴 했지만 고위직은 여전히 남성 차지, 여성 대표 중 상당수는 오너일가

 

지난 2021년 우리나라 주요 기업의 여성 임원 수가 300명을 돌파했다. 관련 조사를 처음 실시한 2004년 이후 17년 만이다. 글로벌 헤드헌팅 전문기업 유니코써치가 매출액 순위 100대 기업의 여성인원 현황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021년 기준 100대 기업 내 여성 임원은 322명으로 전년(286명) 대비 12.6%(36명) 늘었다. 여성 임원을 한 명이라도 보유한 기업도 2004년 10곳에서 2021년 65곳으로 크게 늘었다

 

그러나 여성 시민단체와 관련 전문가들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전체 임원 중 여성 임원의 비중은 여전히 5% 미만에 머무는데다 몇몇 대기업을 제외한 나머지 기업까지 조사 대상에 포함할 경우엔 비중이 미비한 수준에 그치기 때문이다. 유니코서치 조사에서 100대 기업 전체 임원 중 여성 비율은 4.8%에 불과했다. 임원 100명 중 여성은 5명이 채 되지 않는 셈이다.

 

▲ 유니코서치 조사에서 100대 기업 전체 임원 중 여성 비율은 4.8%에 불과했다. 임원 100명 중 여성은 5명이 채 되지 않는 셈이다. 사진은 상장법인 성별 임원 현황 조사 결과를 중인 김경선 전 여성가족부 차관. [사진=뉴시스]

 

고위직으로 올라갈수록 남성 선호 현상은 더욱 뚜렷해졌다. 기업분석전문 한국CXO연구소가 2022년 발표한 ‘2022년 1000대 기업 여성 대표이사 현황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액 상위 1000곳의 상장사 대표이사 1350명 중 여성은 32명에 불과했다. 비중으로 따지면 2.4%에 불과했다. 그나마 32명 중에서도 오너 일가를 제외한 순수 실력만으로 대표이사까지 오른 여성은 7명에 불과했다.

 

여성 대표이사 7명은 △네이버 최수연 △한세실업 조희선 △스튜디오드래곤 김제현 △와이지엔터테인먼트 황보경 △에이블씨엔씨 김유진 △부광약품 유희원 △동남합성 박미령 대표이사 등이었다. 이 중 매출액 상위 100대 기업을 이끄는 전문경영인은 최수연 네이버 대표이사가 유일했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 소장은 “전 세계적으로 다양성이 강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수한 여성 리더들이 경영 전면에서 다양하게 활동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돼야 기업과 국가 경쟁력이 지금보다 더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유교적 가풍 지운 삼성·현대도 경영승계는 아들 우선, LG는 여전히 철저한 장자승계

 

오너 일가라 할지라도 여성에 대한 대우가 후한 것은 아니다. 물론 평범한 여성보다는 상황이 유리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같은 오너 일가끼리만 놓고 봤을 때는 상대적으로 여성이 남성에 비해 낮은 평가를 받았다. 그룹의 전체에 대한 지배력과 주력 계열사의 경영권, 그룹 전체를 대표하는 회장, 총수 등의 타이틀은 대부분 아들의 몫이다. 반면 딸에겐 지분 일부와 계열사 경영권에 머물렀다.

 

일례로 재계 서열 1위인 삼성그룹의 경우 고 이건희 회장 사망 이후 최대주주 자리는 이재용 회장에게 승계됐다.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실질적인 경영권도 마찬가지였다. 그룹 총수 타이틀 역시 이 회장이 거머쥐었다. 반면 장녀인 이부진 신라호텔 사장은 그룹 내 호텔과 면세점 사업을 맡고 있다. 차녀인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은 공익재단과 리움미술관 운영 등을 책임지고 있다.

 

▲ ⓒ르데스크 [그래픽=석혜진]

 

지분율에서도 세 사람은 큰 차이를 보였다. 삼성그룹은 현재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 등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갖추고 있다. 사실상 삼성물산을 지배하면 삼성그룹 전체를 지배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지난해 말 기준 삼성물산의 최대주주는 이재용 회장으로 지분율은 17.97%에 달했다.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이사장의 지분율은 각각 6.24%였다. 두 사람 지분율을 전부 합쳐도 이재용 회장 지분율에는 못 미쳤다.

 

범현대가의 맏형 격인 현대차그룹도 상황은 비슷하다. 기업경영에서 여성을 철저하게 배제했던 정주영 창업주 시기에 비해 유교적 가풍이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기업경영과 승계만큼은 아들 쪽으로 크게 기울었다. 정몽구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이후 장남인 정의선 회장 ‘총수’ 타이틀을 물려받았다. 딸인 정성이·명이·윤이 자매는 주력 사업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광고, 금융, 호텔 등의 계열사를 맡고 있다.

 

LG그룹은 타 재벌기업과 달리 여전히 유교적 가풍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 그룹 경영에 있어 여성의 참여를 배제하는 것도 모자라 장사승계 원칙까지 고수하고 있다. 앞서 고 구본무 회장의 장남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 경영권 승계를 위해 조카인 구광모 회장을 호적에 올린 일화는 익히 유명하다. 이러한 결정이 가족회의를 통해 결정된 점을 감안했을 때 LG가의 가풍 중시 분위기가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파악 가능하다.

 

지난해 말 기준 그룹 지주사인 LG의 최대주주는 15.95%의 지분을 가진 구광모 회장이다. 구 회장은 지난 2018년 고 구본무 회장의 LG 주식 11.3% 가운데 8.8%를 상속받았다. 친자녀인 장녀 구연경 씨와 차녀 구연수 씨에게 상속된 지분은 각각 2.0%(346만4000주), 0.5%(87만2000주) 등에 불과했다.

 

▲ ⓒ르데스크 [그래픽=석혜진]

 

총수가 여성인 재벌기업도 경영승계 만큼은 아들 쪽으로 좀 더 무게중심이 쏠려 있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막내딸인 이미경 신세계그룹 회장은 과거 백화점 사업만 가지고 독립해 신세계그룹이라는 유통재벌을 일군 장본인이다. 삼성그룹 오너 일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신세계그룹 만큼은 당당히 본인 손으로 일궜다. 재계에서 여성 오너가 기업을 손수 재벌 반열에 올린 사례는 이 회장이 거의 유일하다.

 

이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현재 신세계그룹은 오너 남매가 각 사업부문을 책임지는 남매경영 체제가 갖춰져 있다. 장남 정용진 부회장은 마트·유통 사업을, 장녀 정유경 사장은 백화점·면세점 사업을 각각 책임지고 있다. 지배구조 역시 정용진 부회장이 최대주주인 이마트 계열과 정유경 부회장이 최대주주인 신세계백화점 계열로 각각 양분돼 있다. 경영승계 부분에서도 여성 창업주가 일군 기업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는 평가다.

 

그러나 일각에선 신세계그룹 역시 100% 공평한 승계가 이뤄졌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상징적인 부분에 있어 아들인 정용진 부회장 쪽으로 좀 더 무게가 쏠려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용진 부회장은 직함은 신세계그룹 부회장이다. 반면 동생인 정유경 사장의 직함은 신세계 백화점부문 총괄사장이다. 정 부회장이 그룹을 대표하는 직함을 지닌 데 반해 딸인 정 사장은 특정 계열사를 총괄하는 직함만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서진형 경인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다양성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면서 지역이나 성별, 출신 등에 차별을 두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며 “그 일환으로 우리나라 재계에도 유리천장 타파 등의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고 운을 뗐다. 이어 “다만 아직까지 재벌가문의 경영권 승계만큼은 유교적 가풍에서 비롯된 남성 선호 현상이 뚜렷한 게 사실이다”며 “사회적 분위기가 변하고 사회가 기업에 요구하는 모습도 달라지고 있는 만큼 앞으로 이러한 풍토도 서서히 바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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