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기로 놓인 K-반도체…“민·관·정 합동 전략적 대응 필수”
생사기로 놓인 K-반도체…“민·관·정 합동 전략적 대응 필수”
▲ 지난달 28일 미국에서 총 527억달러(약 68조9052억원) 규모의 반도체지원법을 발표했다. 그러나 우리 기업에서 받아들이기엔 독소 조항이 많아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초과 이익 환수, 10년간 중국 투자 제한, 생산 시설 접근 등의 조항 속에서 기술 유출 등의 문제가 우려돼서다. 전문가들은 반도체지원법 독소 조항은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사진은 삼성전자 중국 시안 메모리 반도체공장 전경. [사진=삼성전자]

   

미국이 발표한 반도체지원법이 국내 반도체 산업에 부정적 영향을 초래할 거라는 우려가 높다. 반도체가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만큼 개별 기업의 대응에서 그칠 게 아니라 국가적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과 정부, 정치권 등이 합심해서 국내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고심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초과이익 공유 조항 문제…기업 경영상황 제공 등 불리한 조항


지난달 28일 미국에서 총 527억달러(약 68조9052억원) 규모의 반도체지원법을 발표했다. 그러나 우리 기업에서 받아들이기엔 독소 조항이 많아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초과 이익 환수, 10년간 중국 투자 제한, 생산 시설 접근 등의 조항 속에서 기술 유출 등의 문제가 우려돼서다. 전문가들은 반도체지원법 독소 조항은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특히 가장 논란이 되는 조항은 ‘초과이익 공유’다. 초과이익 공유는 지원금을 받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초과 이익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국내 반도체업체에 독이 된다는 평가다. 기업이 초과이익을 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기업은 재무제표, 현금흐름 전망치 등 기업 내부 정보를 미국에 제출해야 한다. 기업의 핵심 기술이 담긴 첨단 반도체 제조 설비에 대한 접근권도 제공해야 한다. 이러한 점이 기업 입장에서는 내부 정보를 제공해야 하니 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1억5000만달러(약 1962억원) 이상의 보조금을 받은 경우, 상당한 정도의 초과이익을 얻으면 지원받은 금액을 일부 반환하라는 조항 자체는 큰 무리가 없다”며 “보조금을 받고 돈을 많이 벌었다는 가정하에서 일부 지원금을 돌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이어 “문제는 그 과정에서 재무제표, 투자계획, 현금 흐름, 수익구조 등 우리 기업들의 경영상황 등을 다 제공해야 하고 심지어 공장 접근권까지 허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기업 기밀을 미국 정부에 제공하라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기업에 불리한 조항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러한 독소 조항은 미국이 정한 조항이기 때문에 우리가 마련할 방안은 독소 조항을 완화하는 방법밖에 없다”며 “최근에 미국에서 발표했듯이 자국 내 기업들도 같은 조항은 적용한다고 말해 조항을 바꾸긴 어려울 것으로 보이지만, 정부가 협상을 통해 조항을 완화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반도체 업계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이번 반도체지원법 가이드라인이 독소조항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가장 논란이 되는 조항은 ‘초과이익 공유’다. 초과이익 공유는 지원금을 받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초과 이익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국내 반도체업체에 독이 된다는 평가다. 사진은 반도체 후공정 장비 생산 현장. [사진=뉴시스]


미국에선 반도체지원법에 관한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15일 라민 툴루이 국무부 경제기업담당 차관보는 한국, 대만, 유럽연합에서 미국 정부가 반도체법 보조금을 신청하는 기업에 너무 과도한 조건을 요구한다는 비판에 대해 "미국 반도체법의 보조금 지원과 관련된 지침들은 미국 기업들과 외국 기업들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다"고 말했다.


중국 투자 제한 가드레일…“D램‧낸드 공장 등 애물단지 될 것”


미국의 반도체지원 법안에는 중국에 추가 투자를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돼있다. 업계에서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난감한 상황에 부닥쳤다는 우려가 나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각각 중국에서 공장을 운영 중이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생산시설, SK하이닉스는 D램 메모리 반도체 제조시설 등이다. 두 기업 모두 중국 생산이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투자 제한이 곤란한 상황이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가드레일 조항에 따라 보조금을 받은 기업은 중국에 대한 투자에 제한을 받는다. 중국에 반도체 생산 설비를 가동 중인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며 “반도체는 미국 기술 안보 정책의 핵심이고 우리나라와의 협력 없이는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 우리나라와 입장을 같이할 수 있는 EU·일본·대만 등 국가들이 공조해 독소 조항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주완 포스코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 공장에 추가 투자를 할 수 없다면 중국 내 D램, 낸드 공장은 애물단지가 될 수밖에 없다”며 “중국 내 투자가 불가하다면 결국 중국 공장의 용도를 바꾸는 방법밖에 없다. 미국에서 통제하는 기준보다 훨씬 낮은 수준의 기술을 사용하는 곳으로다. 예를 들어 파운드리 공장으로 바꾸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용도변경을 위해서는 대대적인 시설 리모델링도 필요해 설비 투자는 필수적이다. 다만, 이러한 용도변경이 투자이니 신‧증설이 아니라 할 수 있지만, 미국에 통할지는 미지수다”고 설명했다.


▲ 더불어민주당에서도 미국의 반도체지원법에 대응하기 위해 긴급 간담회를 개최했다. 우리 첨단기술을 외국에 공개하지 않도록 하는 법안의 입법을 추진했다. 사진은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미 반도체지원법 대응 긴급간담회. [사진=뉴시스]


더불어민주당에서도 미국의 반도체지원법에 대응하기 위해 긴급 간담회를 개최했다. 우리 첨단기술을 외국에 공개하지 않도록 하는 법안의 입법을 추진했다. 김태년 민주당 의원은 간담회에서 "미국의 반도체지원법 시행 세부 지침에 의하면 우리 핵심기술을 미국이 다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 있다"며 "첨단기술의 외국 공개금지법 등 미국 반도체지원법의 독소 조항에 대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 기업의 생존에 관한 문제로 정부가 경각심을 가지고 전방위적으로 외교적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중국 내 우리 공장의 생산이 위축되면 그 생산을 우리나라에서 해야 한다"라며 "중국에 있는 우리 공장이 최대한 오래갈 수 있도록 접근해야 하고 우리나라에 그만큼 투자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조세특례제한법 등 대책 강구


정부는 대미 협상과 함께 국내 반도체 산업 지원에도 힘을 쏟겠다는 방침이다. K칩스법으로 불리는 조세특례제한법은 반도체를 포함해 배터리, 백신, 디스플레이 등의 연간 시설투자 세액공제율을 대기업 기준 8%에서 15%로, 중소기업은 16%에서 25%로 올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에 더해 대규모 민간 투자를 바탕으로 수도권에 세계 최대 규모의 신규 첨단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국토교통부는 '국가첨단산업 육성전략'으로 2042년까지 경기도 용인시에 첨단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고 15일 발표했다. 16일에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에서 여야 의견 합의로 K-칩스법이 통과하면서 반도체업계의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제14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하면서 “300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민간 투자를 바탕으로 수도권에 세계 최대 규모의 신규 첨단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하겠다”며 “첨단산업 생태계 구축을 위해 국가첨단산업단지 조성 계획을 확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반도체 업계에서는 K칩스법의 통과가 반도체지원법의 명확한 해법은 아니라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K칩스법 논의는 미국을 비롯한 유럽, 일본 등이 반도체지원법을 제정했으니 우리도 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에서 출발했다”며 “막상 반도체지원법을 보니 기업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조항이 있었다. 반도체지원법은 해외 투자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K칩스법이 해법이 될 수 없다. 다만 기업들이 국내로 유턴하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도체지원법 거부 현실적 어려움…“미 정부와 유리한 협상 이끌어내야”


▲ 정부는 대미 협상과 함께 국내 반도체 산업 지원에도 힘을 쏟겠다는 방침이다. K칩스법으로 불리는 조세특례제한법은 반도체를 포함해 배터리, 백신, 디스플레이 등의 연간 시설투자 세액공제율을 대기업 기준 8%에서 15%로, 중소기업은 16%에서 25%로 올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에 더해 대규모 민간 투자를 바탕으로 수도권에 세계 최대 규모의 신규 첨단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 예정지인 경기도 용인시 남사읍. [사진=뉴시스]


한국 기업들은 보조금을 거부하기도 어려운 처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 현지에 공장을 추진 중인데, 이를 거부하게 되면 세금이나 인·허가 등 다른 문제로 트집이 잡힐 수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업계는 남아있는 본 접수까지 미국 정부와 협상에서 최대한 유리한 협상을 이끌어 내는 것이 현실적 대처 방안이라고 본다. 주요 기업들은 미국 워싱턴 D.C.에 소통채널을 마련하고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미국의 반도체 패권 확보를 위한 움직임이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정부와 기업이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단순히 손익계산 차원을 벗어나 미국이 재편하는 공급망에서 이탈하지 않으면서도 손실을 최소화하는 대응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조하현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개별 기업들의 대응도 중요하지만 국가적인 차원에서 반도체 산업을 살리기 위한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며 “특히 정부와 여당뿐만 아니라 큰 틀에서 야당까지 합심하여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 반도체지원법의 일부가 공개된 것이나 다름없는 만큼 속도감 있게 국내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입법 작업에 착수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으로부터 대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에 대해서 1년 유예조치를 받고 있는 것을 향후에도 최대한 연장하기 위한 방안도 강구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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