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위원‧사법’ 리스크를 각각 떠안게 된 국민의힘 김기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전격 회동해 협치를 다짐했다. 검찰에 기소돼 최악의 경우 실형까지 각오해야 하는 이 대표는 전 비서실장 사망에 사과 메시지를 내고 강성지지층에 자제를 요구하는 등 특히 여권 안색을 살폈다.

김 대표는 15일 취임 후 처음으로 제1야당 대표인 이 대표를 예방했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 민주당 대표회의실을 찾은 김 대표는 “(양당이) 추구하는 가치가 좀 다르고 방향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지만 궁극적 목적은 민생을 잘 챙기고 나라가 부강하게 하는 것이라는 차원에서 같은 목적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정치는 누가 국민 삶을 개선하는데 더 잘하는가를 경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여야 입장을 떠나서 저는 정부‧여당에서 제시하는 안건들이나 정책에 대해 퇴행적이거나 잘못된 게 아니라면, 더 나은 국민 삶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면 언제든 적극 협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화답했다.

두 사람은 협치를 다짐했다. 김 대표는 “여야가 치열하게 대립된 게 아니냐는 국민적 우려를 이번에 불식시킬 수 있도록 대화와 타협의 원칙을 지켜나가겠다”며 “지금 쟁점 있는 법안도 있고 정무적 판단이 필요한 법안도 있지만 그런 것들을 뒤로 미루더라도 쟁점이 덜한 부분부터 법안 처리를 해나갔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이 대표도 “최근에 경제상황에 따라 국민 삶도 매우 어려워지고 있는데 여야가 입장을 떠나 국민 삶을 대선하는데 어떤 것이 시급한지 진지하게 수시로 머리를 맞대고 개선방안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만 협치 실행 방안에 대해선 의견이 다소 엇갈렸다. 김 대표는 여야 대표 정례회동을 제안한 반면 이 대표는 여야 공동 공약 추진단 구성, 범국가비상경제회의 개최 등을 거론했다.

김 대표는 회동 후 기자들과 만나 “민생문제를 최우선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여야가 협조를 잘 하자고 했다”며 “당대표끼리는 수시로 만나기로 했고 정책위의장 차원에서도 자주 만날 것”이라고 했다. 정례회동 시기 등 구체적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유상범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양당 대표가 근로시간 제도 개편, 기업 규제개혁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며 “김 대표께서 업종 고용성격에 따라 (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적용해야 하지 않느냐는 입장을 밝혔고 이 부분에 대해 양당이 같이 논의하기로 서로 얘기가 정리됐다”고 전했다. 또 “김 대표께서 기업투자 여건을 개선할 필요가 있기에 과감한 규제개혁을 말씀하셨다. 이 대표께서도 불필요한 규제에 대해선 과감히 해제하는 게 본인 입장이라는 말로 호응해주셨다”고 덧붙였다.

대장동, 변호사비 대납, 대북송금 등 각종 의혹으로 검찰수사를 받고 있는 이 대표는 여당 대표와의 회동에 앞서 전 비서실장 사망과 관련해 첫 사과하고 강성지지층 자제를 당부하는 등 만전을 기했다.

지난 대선에서의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된 이 대표는 오는 1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부장판사 강규태) 심리로 열리는 두 번째 재판에 출석할 예정이다. 이 대표는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2021년 12월22일 방송 인터뷰에서 고(故)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을 몰랐다고 주장했다. 이후 김 처장과 이 대표가 해외출장에서 함께 골프를 치고 사진을 찍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대표는 14일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당원들과 함께 유튜브 생방송을 진행하면서 “이번에 유명을 달리하신 그분은 제가 만난 공직자 중 가장 성실하고 가장 청렴하고 공직자 표상 같은 분이었다”며 “어쨌든 제 곁에 있었다는 이유로 당한 일이어서 저로서야 어떤 방식이든 간에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고 전형수 전 경기도지사 비서실장은 지난 9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전 전 실장은 유서에서 ‘이 대표는 이제 정치를 내려놔야 한다’ ‘이 대표는 측근들의 인간성을 길러 달라’는 취지의 심경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는 앞서 네 명의 주변 인사들 사망과 관련해서는 해당 인사를 모른다는 식의 태도를 취해왔다.

이 대표는 방송에서 집단 욕설 문자테러 등으로 물의를 빚는 ‘개딸’ 등 강성지지층 자제도 요구했다. 그는 최근 지지자들이 이정미 정의당 대표에게 폭언을 쏟아낸 것을 두고 “‘내가 시켰나? 아니지 않나’라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역시 책임의 문제”라며 “제 뜻대로 할 필요 없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지지하되 숭배하지 말라”고 했다.

다만 일부 지지자들은 “정의당은 정리해야 한다” “왜 표현을 못 하게 하나” 등 불복하는 듯한 발언을 내놨다. “숭배하지 말라”는 이 대표 당부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이재명”을 연호하는 등 마치 아이돌그룹 팬클럽 행사를 방불케하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한 당원이 “피눈물이 난다. 우리도 (박지현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등을) 봐줄 만큼 봐줬다. 얼마나 참았는지 아나”라고 하자 이 대표는 “그러면 어떡할 것이냐. 확 엎어버릴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은 14일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서 “이낙연 대표 때 당대표‧최고위원 임기를 분리토록 당헌‧당규를 개정했었다. 당대표가 그만두더라도 최고위원 임기는 계속 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가 사법리스크를 겪는 가운데 김 대표는 최근 ‘최고위원 리스크’라는 부담을 안고 있다. 정치권 등에 의하면 서울 종로경찰서는 도로교통법 위반, 공직선거법 위반, 명예훼손 등 혐의로 장예찬 국민의힘 청년최고위원을 최근 입건했다.

장 최고위원은 과거 드래그 레이싱(400m 단거리 고속경주) 모임을 만들고 관리자로 활동한 혐의를 받는다. 현행 도로교통법에 의하면 공동위험 행위를 하거나 주도한 사람은 2년 이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형법은 일반교통방해죄에 대해 10년 이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서민민생대책위원회는 지난 6일 “장 후보가 2013년부터 최근까지 사회규범을 묵살하고 생명을 위협하는 폭주족 모임을 이어왔다. 몰지각한 행동을 하고도 무분별한 변명, 무책임한 핑계, 거짓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장 최고위원을 고발했다. 장 최고위원은 14일 BBS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에서 “불법적인 부분은 전혀 없었다”고 반박했다.

장 최고위원은 ‘묘재’라는 필명으로 쓴 웹소설 ‘강남화타’에서 여성연예인을 성적대상화했다는 비판도 사고 있다. 2015년 4월~2016년 12월 연재된 ‘강남화타’에는 주인공이 불치병에 걸린 여성배우를 성관계로 치료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12일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관한 ‘광화문 전국 주일 연합예배’에 참석해 “(5‧18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통령실 핵심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의 5‧18정신 계승 입장은 확고하다”며 선을 그었다. 김 대표도 “적절한 건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김 최고위원은 14일 페이스북에서 “5‧18정신의 헌법 전문 게재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며 고개 숙였다.

이 대표는 1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5‧18정신을 왜곡‧조롱하는 건 대한민국 근본가치를 부정하는 것이고 반국가적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귀령 민주당 상근부대변인은 14일 논평에서 “국민의힘은 장 최고위원의 불법 폭주 레이싱 모임 운영, 성적대상화 웹소설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묻기 바란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