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성장→파산 美은행 비극 반복에 韓은행 뚝심경영 재조명
급성장→파산 美은행 비극 반복에 韓은행 뚝심경영 재조명

[Le view<206>]-금융산업 오해와 진실(下-안정적 경영) 급성장→파산 美은행 비극 반복에 韓은행 뚝심경영 재조명

자산 276조원 美 실리콘밸리은행, 공격적 채권투자 실패로 파산

르데스크 | 입력 2023.03.13 17:07
▲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의 파산 사태로 인해 국내 시중은행의 수익 모델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고 있다. 이번 SVB 사태로 은행의 투자중심의 수익 모델에 대한 위험성이 부각되면서 전통적 수익모델인 예대금리 차익 시현의 안정성이 재조명되고 있다. 덕분에 숱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안정적인 경영방침을 고수해 온 시중은행의 경영 방식에도 후한 평가가 뒤따르고 있다. 사진은 실리콘밸리은행 한 지점의 모습. [사진=AP/뉴시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의 파산 사태로 예대마진에 치중해 온 국내 시중은행 경영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고 있다. SVB 파산의 결정적 원인이 공격적인 자금운용 행보 때문인 것으로 밝혀지면서 비교적 안정적인 수익모델을 고집해 온 국내 은행에 대한 우호적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안정적 수익모델을 외면한 은행의 공격적인 경영행보는 대규모 피해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이번 SBV 파산 사태로 증명됐기 때문이다.

 

美 첨단기술 메카의 자금줄 실리콘밸리은행, 고객예치금 운용 실패로 결국 파산절차

 

지난 10일(현지시간)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금융보호혁신국은 불충분한 유동성과 지급불능을 이유로 SVB를 폐쇄하고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를 파산 관재인으로 임명했다고 밝혔다. 미국 첨단기술 기업의 메카 실리콘밸리의 자금줄 역할을 해 온 SVB가 파산절차를 밟게 된 것이다. SVB 파산은 지난 2008년 워싱턴 뮤추얼 이후 미국 은행 중 가장 큰 규모의 파산이다.

 

1983년 문을 연 SVB의 SVB의 탄생과 성장은 철저하게 실리콘밸리와 닮아있다. 실리콘밸리 내 대부분의 벤처 기업들은 우수한 기술력이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투자를 받는다. 그 중 거액의 투자금이 몰린 기업들은 당장 사용하지 않는 투자금을 따로 은행에 예치시켜 보관한다. 일정 수준의 이자를 지급하고 투자금을 보관해 준 은행이 바로 SVB다. 지난 수십년 간 실리콘밸리에 전 세계의 투자금이 몰리면서 SVB에도 뭉칫돈이 몰렸다.

 

SVB의 자산 규모는 지난해 12월 말 기준 약 2090억 달러에 달했다. 미국 전체에선 16번째, 실리콘밸리 내에선 가장 큰 규모다. SVB는 탄생과 성장 배경만큼이나 수익창출 방식도 타 은행과 큰 차이를 보였다. 예대마진과 투자수익이 혼합돼 있는 타 은행과 달리 수익창출 방식이 투자운용 쪽에 크게 치우쳐져 있었다. 벤처기업들이 직접 자금을 조달한 탓에 대출자체가 원활하지 않았던 탓이다.

 

SVB의 파산은 이러한 수익모델의 특성이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금융권 등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기간 풀린 막대한 유동성이 실리콘밸리에 몰리면서 SVB의 예치금도 크게 늘어났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2021년 SVB의 예금액은 전년 대비 무려 86%나 급증했다. 이자를 지급해야 하는 SVB는 수익을 내기 위해 미 국채와 주택저당증권 등에 투자했다.

 

▲ 금융권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 시중은행의 경우 SVB와 같은 사태를 맞이할 가능성이 현저히 낮게 평가된다. 국내은행의 경우 SVB와 달리 코로나 팬데믹 기간 늘어난 유동성을 대규모PF, 주식, 채권 등 비교적 수익율은 높지만 위험성과 변동성도 덩달아 높은 상품에 투자하기 보다는 기존의 전통적인 영업방식인 대출에 활용했기 때문이다. 사진은 국내 주요 시중은행 본사. [사진=각 사]

 

은행의 전통적 영업방식인 예대마진이 아닌 투자에 치중한 SVB의 방식은 주변 상황이 급변하면서 오히려 독이 됐다. 코로나19 팬데믹 종식과 동시에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 국에서는 유동성 축소 조치가 이뤄졌다. 특히 미 금융당국은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을 잡기 위해 대대적인 기준금리 인상 조치를 단행했는데 그 결과 시중의 유동자금이 은행으로 몰렸다. 반대로 국채나 기업 투자 규모는 크게 줄었다.

 

금리인상 여파는 실리콘밸리 내 기업들도 피해가지 못했다. 투자금이 줄면서 돈줄이 막힌 실리콘밸리 내 기업들은 예금한 돈을 찾기 시작했다. SVB는 예금 인출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대규모 손실에도 불구하고 기존에 보유했던 국채를 매각했다. 통상적으로 금리가 오르면 채권투자 시장의 돈이 빠져나가면서 채권 가격이 감소한다. 이후 SVB가 채권투자로 큰 손실을 입었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예금인출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결국 SVB는 고객의 인출요구에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면서 파산하게 됐다.

 

SVB사태로 주목받는 국내은행의 안전경영, 전통적 예대마진 수익모델에 긍정 평가 확산

 

이번 SVB 사태는 상당한 후폭풍을 불러오고 있다. 당장 과거 리먼브라더스 파산 사태 때처럼 미국의 금융위기가 글로벌 경제 위기로 확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SVB에 투자한 국내 기업이나 개인의 피해 가능성에 대해서도 언급되고 있다. 아울러 우리나라 역시 미국과 마찬가지로 기준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비슷한 사례의 발생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주목되는 점은 기존에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도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바로 예대금리 수익 의존도가 높은 국내 시중은행의 사업구조에 대한 재평가다. 그동안 여론 안팎에선 예대금리 의존도가 높은 국내 시중은행의 수익구조에 대한 비판이 상당했다. ‘이자장사’, ‘돈놀이’ 등의 다소 거친 표현을 써가며 은행의 수익다각화를 주문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SVB 사태로 은행의 투자중심의 수익 모델에 대한 위험성이 부각되면서 전통적 수익모델인 예대금리 차익 시현의 안정성이 재조명되고 있다. 덕분에 숱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안정적인 경영방침을 고수해 온 시중은행의 경영 방식에도 후한 평가가 뒤따르고 있다.

 

금융권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 시중은행의 경우 SVB와 같은 사태를 맞이할 가능성이 현저히 낮게 평가된다. 국내은행의 경우 SVB와 달리 코로나 팬데믹 기간 늘어난 유동성을 대규모PF, 주식, 채권 등 비교적 수익율은 높지만 위험성과 변동성도 덩달아 높은 상품에 투자하기 보다는 기존의 전통적인 영업방식인 대출에 활용했다. 대출이자가 채권수익률 보다 현저히 낮은 제로금리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4대 시중은행(KB·신한·하나·우리)의 자금운용 현황을 보면 대부분의 자금을 대출에 활용하고 있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각 은행의 전체 운용자금에서 대출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KB국민은행 67.68% △신한은행 64.91% △하나은행 60.42% △우리은행 66.49% 등이었다. 반면 유가증권(원화) 비중은 △KB국민은행 14.70% △신한은행 17.89% △하나은행 13.27% △우리은행 15.05% 등에 불과했다.

 

▲ [그래픽=석혜진] ⓒ르데스크

 

코로나19 펜데믹 초기인 지난 2020년 4대은행의 순이자마진율은 1.44%에 불과했다. 같은해 운용자금 중 유가증권 투자 비중이 높은 국민연금의 운용수익률은 9.58%에 달했다. 은행의 예대마진 수익 비중이 높은 것을 두고 수익성에만 몰두한 결과라는 것은 결론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인 셈이다. 오히려 시중은행은 과거 더욱 높은 수익을 낼 수 있었음에도 과감하게 안전성을 택했다는 주장이 사실과 가까운 것으로 평가된다.

 

금융권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은 하나 같이 SVB 사태로 인한 국내 피해는 제한적일 것이며 특히 국내 시중은행에서 비슷한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인 현저히 낮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이번 SVB 사태를 계기로 은행의 예대마진 수익에 대한 인식이 바뀔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시중은행이 갖춰야 할 최우선 덕목인 안전성을 고수하기 위해서라도 전통적 영업방식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국내 은행 중에 SVB나 실리콘밸리에 익스포져가 있는 곳도 없어 시장 전반의 영향은 없다”면서 “하지만 각국도 이번 사태와 관련해 점검할 것으로 보여 우리도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고 전했다. 이승헌 한국은행 부총재도 “SVB 사태가 금융권의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평가했다. 박혜진 대신증권 연구원은 “SVB의 수익모델은 국내 은행과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에 국내 은행에서 비슷한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진단했다.

 

시중은행 한 고위 관계자도 “그동안 국내 은행들은 주식이나 채권시장 호황에도 외부요인에 의한 변동성이 큰 투자수익 보다는 은행의 전통적 영업방식을 고수해왔다”며 “단순히 수익만 놓고 보면 반대의 행보를 걸어왔다고 보면 되는데 어디까지나 안정성 때문이었다. 우리나라는 경제구조가 취약하기 때문에 은행의 위기는 엄청난 후폭풍을 불러올 수 있다. 이러한 구조에선 더욱 큰 재앙을 막으려면 수익성이 낮더라도 예대마진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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