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없는 혐오조장 그만” 한일관계 실리부터 찾는 20·30세대
“미래 없는 혐오조장 그만”  한일관계 실리부터 찾는 20·30세대

[지금 대한민국<202>]-강제징용 피해배상 논란 “미래 없는 혐오조장 그만” 한일관계 실리부터 찾는 20·30세대

정부發 강제징용 피해배상 해법 두고 野 “매국”

르데스크 | 입력 2023.03.15 13:46


▲ 2019년 7월 서울 여의도 63한화생명빌딩에서 열린 ‘제19회 한화생명 세계 어린이 국수전’ 결승전에 참가한 한일 학생이 대국을 펼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석열정부가 최근 발표한 일제(日帝) 강제징용 피해배상 방안을 두고 정치권에서 찬반 대립이 펼쳐지고 있다. 여당은 미래지향적 한일관계와 극일(克日‧일본을 넘어섬)을 위한 선택이라는 입장인 반면 야당은 “친일 매국정권”이라며 핏대를 세우는 중이다. 일부 시민단체도 야당과 보조를 맞춰 정부를 맹비난하고 있다. 정부 방안은 제3자(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가 배상액을 변제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미래의 한일관계 주역이라는 점에서 정치권이 극일‧반일 필요성 이유로 내세우는 2030세대는 정작 여야 이전투구에 무관심한 태도다. 여당에 대한 야당의 친일 프레임이 무색하게 2030세대는 이전보다 더욱 왕성히 한일관계를 중시하고 있다. 야당에 대한 여당의 한일관계 훼손 책임론 제기도 2030세대에게는 관심 밖이다.

 

때문에 정치권이 각자의 이해득실을 위해 청년세대를 구실로 내세우며 한일관계를 정략적으로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미래의 한일관계 주역이 될 청년층에게 ‘가르치려 드는’ 자세가 아닌 청년층 목소리를 대일(對日)정책에 적극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 일본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 국내 평점. [사진=네이버 캡처]

 

2030세대에겐 먹히지 않는 ‘노(NO) 재팬’

 

‘스즈메의 문단속’ ‘더 퍼스트 슬램덩크’ 9일 영화진흥위원회가 공개한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 결과는 정치권을 당황케 하기에 충분했다. 위원회에 의하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일본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이 개봉 첫 날인 8일 14만3499명의 관객(누적 20만3059명)을 동원해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8일 박스오피스 2위는 또 다른 일본 애니메이션인 더 퍼스트 슬램덩크였다. 해당 작품은 당일 2만4863명이 관람했다. 누적 관객수는 무려 389만5172명에 이르렀다. 정부의 강제징용 피해배상 방안이 발표된 지 불과 이틀째 되는 날의 성적이었다.

 

4일 주류업계에 따르면 일본산 주류도 2030세대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일명 ‘정대만 사케’로 불리는 미이노고토부키 쥰마이긴죠는 애니메이션 슬램덩크 극장판의 인기를 업고 지난 1월 재고 소진으로 판매가 중단됐다. 그러나 여전히 수요가 잦아들지 않자 지자케씨와이코리아는 최근 해당 사케 판매를 재개했다.

 

지난해 일본산 위스키 수입액은 전년 대비 31.4% 증가한 414만8000달러(약 54억8780만원)를 기록했다. 작년 일본산 맥주 수입액은 1448만4000달러(191억6233만원)이었다. 일본 맥주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인 ‘노(NO) 재팬’ 영향으로 한 때 편의점에서 찾아볼 수 없었으나 언제 그랬냐는 듯 근래 취급하는 곳이 다시 늘고 있다.

 

7일 관세청 무역통계에 의하면 올해 1월 일본 맥주 수입액은 200만4000달러(26억5129만원)로 전년 동기 대비 314.9% 급증했다. 이는 일본 기업의 강제징용 피해 배상액 지급을 명령한 우리 법원 판결에 따라 일본이 대한(對韓) 수출규제에 나선 2019년 7월 이후 3년6개월만의 최고치다. 한국주류수입협회 측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일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게 주류 판매량에 긍정적 영향을 준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마찬가지로 노 재팬 운동으로 타격을 입었던 일본 의류메이커 유니클로도 매출‧영업이익이 상승 중이다. 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의하면 유니클로 운영사인 에프알엘코리아의 2021년 9월~지난해 8월 매출액은 7043억원으로 전년 대비 20.9% 늘었다. 영업이익은 1148억원으로 116.8% 폭증했다.

 

청년 71% “경제 고려해 관계 개선 필요”

 

정치적 당리당략에 구애받지 않는 2030세대의 모습은 다수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일본 공익재단법인 신문통신조사회가 지난해 11~12월 한국‧미국‧영국‧프랑스‧중국‧태국 등 6개국의 각각 약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지난달 19일 발표한 대면‧전화‧온라인 형태 ‘대일 미디어’ 조사에서 “일본에 호감을 느낀다”는 한국인 비율은 39.9%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조사 대비 8.7%p 오른 수치다. 일본 관련 언론보도에 관심 있다는 한국인 비율은 9.9%p 오른 74.4%로 6개국 중 1위를 차지했다.

 

조사회 측은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호감도는 2015년 관련 조사가 시작된 이후 가장 높은 수치”라며 “일본을 찾는 한국인이 증가하고 윤석열정부 출범 후의 한일관계 회복 조짐이 반영된 결과”라고 지지통신에 밝혔다.

 

지난 2월16~21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2030세대 남녀 62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 결과도 비슷하다. 응답자의 71%는 “한일관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유는 △경제적 이익 확대(45.4%) △중국 부상 견제(18.2%) △안보협력 강화(13.3%) 등이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일본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MZ세대(2030세대)가 한국 여론지형 주축으로 떠오르는 상황”이라며 “(한일관계 개선 등에 따른) 역풍이 풀던 2015년 한일 위안부합의 때와 지금의 여론지형은 상당히 다르다”고 진단했다.


▲ 지난 1월28일 한 시민단체 회원들이 서울 외교부 청사 앞에서 한일 국장급 협의 개최를 앞두고 ‘굴욕 매국협상’ 중단 촉구 집회를 열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국력 ‘제물’로 한 당리당략 추구에 반기 든 청년들

 

정치권이 2030세대 입장을 대일정책에 적극 반영해야 할 필요성은 다음에서도 입증된다. 경제적 이익 확대를 한일관계 개선 이유로 든 청년층 목소리처럼 실제로 정치권의 반일 정책에 따른 우리 경제 피해는 컸다.

 

한국경제연구원(KERI)에 따르면 일본의 대한 수출규제가 시작된 2019~2021년 3년 간 일본이 한국 제조업에 직접 투자한 금액은 2782억엔(2조6980억원)으로 직전 3년 대비 57.6% 줄었다. KERI는 관세청‧일본은행 등 통계를 인용해 “한일관계 악화 후 3년 동안 대일 수출 감소 13조5200억원, 일본인 직접투자 6조8000억원 등 총 20조원이 줄었다”고 분석했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한국의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는 약 20%를 차지하는데 반도체 생산에 반드시 필요한 불화수소 등 4개 핵심품목에 대해 일본이 수출규제를 함으로써 우리나라 반도체 생산의 불확실성이 커졌다”고 지적했다.

 

한일이 수출규제‧노재팬 등으로 서로 맞불을 놓는 사이 청년 일자리는 타격을 받았다. 2019년 10월 KERI가 전국 4년제 대학 재학생‧졸업생 347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올해 대졸 신규채용 환경이 작년보다 어렵다”는 응답이 46.1%로 나타났다. ‘작년과 비슷하다’는 30.6%였으며 ‘작년보다 좋다’는 2.5%에 그쳤다. 대학생들이 취업을 위해 쓰는 입사지원서는 평균 22.3장이었다.

 

추광호 KERI 일자리전략실장은 “일본 수출규제, 미중 무역분쟁,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대내외 경제상황이 좋지 않아 대학생 취업시장이 작년보다 어렵다고 실제 체감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취업난 원인 중에는 수출규제에 따라 장기화되는 우리 기업들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자체개발 출혈도 있었다. 한국이 소부장 국산화에 성공했다는 문재인정부 주장과 달리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우리 경제의 대일 의존도가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 없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지난 2021년 ‘정세와 정책’ 8월호 기고문에서 한국무역협회 자료를 인용해 “(한국의) 대일 적자 최대 요인은 반도체 제조장치 수입 증가였다. 1~5월 수입액은 29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55% 늘었다. 반도체 재료를 포함한 정밀 화학원료 수입도 12% 늘었다”며 “실제로 국산화는 일부에 그쳤다. 문재인정권은 일부에서 국산화 실현을 강조하지만 대일 무역적자 확대를 보더라도 한국의 구조적 한계는 여전하다”고 진단했다.

 

정 교수도 “소부장은 첨단산업뿐만 아니라 제조업 근간이 되는 분야로서 많은 부분은 기초과학 기술이 바탕이 돼야만 제대로 성과를 낼 수 있다. 아무리 돈을 많이 투자해도 단기간 내 실적을 쌓을 수 없다”며 “일본은 제조업 발전 기간이 100년이 넘고 노벨상 수상자도 여럿 있다. 당장 우리가 국내에서 모든 걸 전부 개발해서 쓰려 하면 100원짜리 부품이 200원‧300원이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 1998년 10월 한일공동선언 당시 김대중 대통령(오른쪽),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가 악수하고 있다. [사진=YTN 캡처]

 

“해방 직후 사고방식 아닌 미래지향적 자세로 극일 이뤄야”

 

2030세대 사이에서는 한국 정치가 과거와는 달리 지나치게 외교를 정략에 이용하려 한다는 개탄의 목소리가 커진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이 ‘죽창가’로 상징되는 운동권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김대중(DJ) 정신’을 이어받아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진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의 강제징용 피해배상 해법을 두고 “사실상 대일 항복문서”라며 “강제동원 배상안은 일본 입장에서는 최대의 승리이고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최악의 굴욕이자 수치다. 친일 매국정권이라 해도 할 말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민주당 측 입장과 달리 민주당계 정당의 정신적 지주라 할 수 있는 DJ는 과거 군사정권에서도 금기시되던 한일 간 문화교류의 문을 활짝 열었다.

 

DJ와 오부치 게이조 전 일본 총리는 1998년 10월 ‘김대중-오부치 선언(한일공동선언)’에서 한국에 대한 일본 정부의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전제로 △한일정산 간 긴밀한 상호 방문‧협의 유지 및 강화‧정례화 △각료급 협의 강화 △의원 간 교류 장려 △양국 간 문화‧인적 교류 확충 등을 합의했다. 이로 인해 일본 애니메이션‧주류 등의 한국 내 수입길이 닦였다.

 

기시다 내각도 이번 윤석열정부의 강제징용 피해배상 해법 관련 입장에서 ‘통렬한 반성’ 등을 명기한 김대중-오부치 선언 계승을 선언하며 사실상의 2차 사죄에 나섰다.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은 6일 “일본 정부는 1998년 10월 한일공동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내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할 것을 확인한다”고 밝혔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대한 수출규제 철회 가능성을 내비치며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환영했다.

 

국제사회도 한국의 강제징용 피해배상 방안을 ‘패배’가 아닌 ‘윈윈(win-win)’으로 높이 평가 중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 최측근인 람 이매뉴얼 주일 미국대사는 8일 도쿄 자택에서의 CNN 인터뷰에서 “두 지도자(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20세기에 얽매이는 대신 21세기로 눈길을 돌리고 이를 중시하기로 했다. 용기‧대담함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6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한일 정부의 민감한 역사문제 논의가 결론에 도달했다”며 환영했다. 주한 미국상공회의소는 8일 피해배상액 상당수를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유럽연합(EU) 외교부 격인 대외관계청(EEAS)도 6일(현지시간) 대변인 명의 성명에서 “양자 관계를 개선하고 미래지향적 관계 구축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발표된 중요한 조처를 환영한다”고 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미국의소리(VOA)에 “한일의 미래지향적 대화를 환영한다”고 했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일본 정부의 김대중-오부치 선언 계승 선언을 두고 “피해자나 국민이 기대한 수준은 아니지만 아베 신조 전 총리 이후 역사적으로 후퇴한 일본 정치지형을 원점으로 되돌린 정도의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의 대학생 박유미(25‧여)씨는 “해방 이후 반세기가 넘게 지났는데 일부 정치인들은 아직 1940~1960년대 사고방식에 갇힌 것 같다”며 “(일본 정부에게서) 사과 받을 건 받되 서로 협력하고 나아가 궁극적으로 우리가 극일을 이루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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