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쓰면 죄인 되는 사교육비…“아이 한명 당 기본 월 100만원”
안 쓰면 죄인 되는 사교육비…“아이 한명 당 기본 월 100만원”

 

▲ 우리나라 특유의 과도한 교육열에서 생겨난 ‘사교육 공화국’이란 수식어의 입지가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이에 상당수 미혼남녀는 갈수록 늘어나는 사교육비 부담 때문에 결혼과 출산에 대한 두려움이 더욱 커졌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학원가 전경. ⓒ르데스크

 

갈수록 늘어나는 교육비 부담이 청년세대의 결혼·출산 의지를 꺾는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됐다. 과거 부모나 아이의 선택이었던 사교육이 이제는 필수처럼 여겨지면서 교육비 또한 필수지출 항목으로 분류되고 있어서다. 사교육 자체가 강제성은 없지만 교육 목적이 아니더라도 원만한 교유관계 유지, 탈선방지 등을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사교육을 시킬 수밖에 없다는 게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미혼남녀들도 이미 현실을 인지하고 있다.

 

갈수록 커지는 학원의 역할…“퇴근 전까지 믿고 아이 맡기는 곳, 또래 친구 사귀는 곳”

 

우리나라 특유의 과도한 교육열에서 생겨난 ‘사교육 공화국’이란 수식어의 입지가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시기 등교 중단 사태를 거치면서 사교육 의존도가 몰라보게 높아졌다. 연간 사교육비 총액은 2년 연속 ‘사상 최대’ 기록을 갈아치울 정도로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교육부와 통계청이 7일 발표한 ‘2022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사교육비 총액은 전년 보다 10.8% 상승한 26조원을 기록했다. 2007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역대 최고치다. 사교육을 받지 않는 학생을 포함한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도 전년 대비 4.3만원 오른 41만원으로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 사교육 참여율 또한 전년 대비 2.8% 오른 78.3%를 기록했다. 우리나라 학생 10명 중 8명은 사교육을 받는다는 의미다.

 

교육부는 사교육비 급증의 배경엔 여러 가지 복학접인 요인이 자리하고 있다고 봤다. 심민철 교육부 디지털교육기획관(국장)은 “코로나19 일상회복에 따른 학원 거리두기 완화, 온라인 강좌 수강 증가, 교습비 등 물가상승률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언어 부문의 사교육비가 많이 증가했는데 초등학생 등 학력결손에 대한 보충 교육의 필요성이 부각된 영향이 크다”고 진단했다.

 

 

▲ 교육부와 통계청이 7일 발표한 ‘2022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사교육비 총액은 전년 보다 10.8% 상승한 26조원을 기록했다. 2007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역대 최고치다. 사진은 대학 입시설명회에 참석한 학생과 학부모들. [사진=뉴시스]

 

일반 국민이 생각하는 사교육 증가 이유는 더욱 복잡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로나19, 보충교육 등의 영향도 물론 있지만 사교육에 대한 인식, 사교육을 하는 목적 등의 변화가 결정적이라는 반응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이 학원밖에 없다 보니 사교육 자체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는 설명이다.

 

또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원에 머무르다 보니 학원을 가지 않으면 친구를 사귀기 어려워 원만한 교우관계 형성도 어렵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실제로 교육부 조사 결과를 통해 나타난 학교급별 사교육 수강목적을 보면 초등학생의 경우 단순히 교육 목적 외에도 보육, 불안심리 해소, 교유관계 형성 등도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초등학교 2학년 자녀를 키우는 강주은 씨(41·여)는 “맞벌이하는 입장에서 학원이 아니면 애들을 믿고 맡길 곳이 없는 게 현실이다”며 “아이도 방과 후 학원을 가지 않으면 친구들과 어울릴 수가 없으니 ‘어디 학원 보내 달라’고 먼저 이야기를 하곤 한다. 학원을 다니면서 어울리지 않는 아이들이 있긴 한데 그런 아이들은 또래 친구들과 제대로 어울리지 못하고 겉돈다고 들었다”고 설명했다.

 

“초등학생만 되도 기본이 월 100만원, 중·고등학교 땐 등골 휘어도 학원 보내야”

 

실제 지출하는 사교육비에 대해서도 일반 국민이 체감하는 수준은 통계 결과와 큰 괴리를 보였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하나 같이 초등학생 정도만 되면 학원을 최소 두 군데 이상 다니는 게 기본인데 통계상 나타난 월평균 사교육비 40만원으론 한 군데도 보내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 [그래픽=석혜진] ⓒ르데스크

 

초등학생 남매를 키우는 홍정희 씨(38·여)는 “요즘엔 과거 보습학원의 개념이 사라지고 과목 별로 특화된 학원만 남았다”며 “초등학생 정도면 국어와 영어, 수학 중에서 부족한 과목을 가르치고 그 외에 태권도, 웅변, 바둑 등 예·체능 학원도 하나씩 선택해서 보내는데 그러면 아이 한 명당 기본 두 군데 이상은 보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보통 학원 한 곳 보내는데 30~35만원 가량 들어가고 주 2회 수업일 경우엔 가격이 더욱 비싸다”며 “우리집 같은 경우도 두 아이 학원비만 월 200만원은 들어간다.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보내는 학원 개수도 많아지고 그만큼 학원비도 더욱 많이 들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당장 내년이면 큰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해 학원비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중학생 아들을 둔 이지은 씨(40·여)는 “지금 우리 아이가 중2인데 논술, 과학, 수학, 국어 등 학원만 네 곳을 보내고 있다”며 “한 달에 순수 학원비만 150만원 정도고 여기에 용돈 등을 더하면 못해도 200만원은 온전히 아이에게 들어간다.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 거의 평균 수준인데 도대체 사교육비 40만원은 어디서 나온 통계인지 모르겠다”고 성토했다.

 

학부모단체 등에 따르면 서울이나 지방 중·소도시에 위치한 단과 학원의 경우 과목 당 수강료는 30만원 안팎이다. 대치동, 목동 등 유명 학원이 밀집한 지역의 경우엔 과목 당 50만원 하는 곳도 있다. 주 1회, 2~4시간을 기본으로 하며 주 2회로 수업일수를 늘렸을 땐 가격이 더욱 올라간다. 보통 두 곳 이상은 기본으로 보내기 때문에 여기에 교재비, 간식비 등을 더하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월 100만원은 들어간다.

 

 

▲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에 따르면 아이 한 명 당 들어가는 월 사교육비는 약 100만원 가량이다. 중학교, 고등학교로 진학할수록 사교육비는 더욱 늘어난다. 사진은 서울의 한 어린이집. [사진=뉴시스]

 

사교육 자체가 열풍 수준을 넘어 이제는 일상이 되면서 결혼과 출산에 대한 미혼남녀의 두려움은 더욱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의 학습능력 향상과 교우관계 형성, 부모의 경제활동을 위해 사교육을 안 시키는 것이 불가능한 구조다 보니 결혼·출산에 대한 부담을 더욱 크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미혼 직장인 남승호 씨(35·남)는 “주변에 결혼한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이를 낳는 순간부터 곧장 돈 들어갈 곳이 수두룩하다고 하더라”라며 “초등학교 가기 전부터 학습지에 놀이학교까지 최소 월 100만원 가까이 들어가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순간부터는 그 이상 든다고 하는데 어렵게 집을 사도 대출금을 갚으면서 아이까지 키우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싶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크던 시절을 생각해서 사교육 안 시키고 알아서 공부하게끔 할 생각도 있었지만 학원을 안 다니는 순간 곧장 왕따가 된다는 이야기를 듣곤 이내 생각을 바꿨다”며 “지금도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지만 아이만큼은 아무래도 아내와 상의를 해야 할 것 같다. 맞벌이는 말할 필요도 없고 아이를 낳는 순간 정말 돈만 쫓으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답답하다”고 덧붙였다.

 

결혼을 준비 중인 직장인 유지영 씨(33·여)는 “남자친구와 결혼을 준비를 하면서 가끔 출산 이야기를 하는데 거의 결론을 내지 못할 때가 많다”며 “낳은 직후부터 경제적 부담이 만만치 않고 특히 아이 교육비와 관련해서는 안 쓸 수가 없다보니 상당히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괜히 능력이 안 되는데 낳아서 아이한테 죄를 짓느니 차라리 안 낳는 게 낫다는 생각도 한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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