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생은 ‘교차접수’·대학생은 ‘전과’…도 넘은 인문계 기피
수험생은 ‘교차접수’·대학생은 ‘전과’…도 넘은 인문계 기피
▲ 통계청의 ‘전공 계열별 경제 활동 인구’ 자료에 따르면 12개 주요 전공 분야 가운데 지난해 1분기 취업자 수가 2019년 1분기 보다 줄어든 분야는 인문학뿐이었다. ⓒ르데스크

 

정부의 디지털 사업 진흥 정책과 인공지능‧빅데이터 등 디지털 관련 업종의 수요 증가에 따라 문과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고등학생의 문과 진학률, 문과 대학생의 취업률 등이 모두 감소하는 등 이공계 쏠림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통계청의 ‘전공 계열별 경제 활동 인구’ 자료에 따르면 12개 주요 전공 분야 가운데 지난해 1분기 취업자 수가 2019년 1분기 보다 줄어든 분야는 인문학뿐이었다. 정보통신기술(ICT)의 취업자 수가 12만9000명 늘어난 사이 인문학 취업자 수는 1만4000명 감소했다. 취업률 역시 인문학과가 꼴찌다. 공학·제조·건설 관련 학과의 취업률은 85.9%, ICT계열의 취업률은 82.8%, 보건관련 학과 취업률은 79.6%였지만 인문학과의 취업률은 69.2%를 기록했다. 

 

문이과 격차 최근 5년 사이 최대치…SKY 휴학생 중 인문계 54.5%


서강대학교에 재학중인 최종수(26‧남)씨는 “인문학과의 취업률 저조현상을 정말 몸소 느끼고 있다”며 “취업이 되지 않아 본의 아니게 대학원을 가거나, 특정 시험 준비를 하는 학생들이 정말 많다”고 밝혔다. 


이에 더해 모든 업종에 ‘기술’이 더해지면서 전통적으로 문과생이 강세를 보였던 금융·경제·광고 업종 내 기업들조차 IT 역량을 갖춘 인력을 더 선호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수의 문과생들이 현재 취업을 위해 프로그래밍 동아리에 참여하거나 이공계열을 복수 전공한다. 

 

성균관대학교에서는 이미 모든 입학생들이 졸업 조건으로 코딩과목을 필수로 이수해야 한다. 코딩관련 대외활동이나 교육 프로그램 역시 각 종 게시판에서 흔히 볼 수 있게 됐다. 현재 대학입시 제도의 변화로 고등학교 때 문과를 선택한 학생도 대학을 지원할 때 이공계열 학과 지망이 가능하다. 반대로, 이과를 선택한 학생도 대학을 지원할 때 문과 계열 지망이 가능하다. 

 

하지만 컴퓨터공학과와 같은 이공계학과에서는 수능에서 수학 미적분과 과학탐구영역을 응시한 수험생들에게만 원서 접수를 허용한다는 제한이 있다. 


이에 문과학생들이 이과 학생들의 과목을 응시할 경우 경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높은 경쟁을 거쳐야한다. 반면 문과 계열 학과는 별도로 응시과목 제한을 두고 있지 않아 이과생들의 교차지원이 자유롭다. 이렇다보니 입시제도에서 문과생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 컴퓨터공학과와 같은 이공계학과에서는 수능에서 수학 미적분과 과학탐구영역을 응시한 수험생들에게만 원서 접수를 허용한다는 제한이 있다. ⓒ르데스크

 

동성고등학교에 재학중인 이민수(19‧남)씨는 “중학교 때부터 문과에 진학하게 되면 취업이 안 된다는 인식이 정말 강하게 퍼져있다”며 “부모님들도 변호사나 회계사와 같은 전문직이 목표가 아니라면 문과에 가지 말라고 극구 반대하신다”고 말했다. 


이어 “요즘 이과생들이 학과를 고려하지 않고 더 높은 대학에 가기위해 교차지원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학교별 레벨 단계로 봤을 때 이과가 문과로 교차지원을 하게 되면 일반적으로 한 단계 또는 두 단계까지 대학 네임벨류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인 김남권(19‧남)씨는 "저는 현재 이과생인데 학교에서 대학 진학 상담을 할 때 제가 이공계로 갈 수 있는 학교보다 더 높은 레벨의 문과대로 진학하려고하자 선생님들이 단호하게 말리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교 선생님들도 어차피 문과가봐야 취업이 힘든데 특정 목적이 있는게 아니면 이공계로 진학해 바로 취업 준비를 하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라고 설득하셨다"고 말했다. 


종로학원이 서울대‧연세대‧고려대 휴학 현황을 계열별로 분석한 결과, 서울대‧연세대‧고려대의 2022학년 전체 휴학생 3만3181명 중 54.4%인 1만8065명이 인문계, 45.6%인 1만5116명이 자연계로 집계됐다. 2022년 문이과 계열 휴학 격차는 8.9%p로 최근 5년 사이 최대치다. 


인문계의 휴학률이 높은 이유는 취업 한파가 자연계보다 더 심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통합수능 아래 이과생의 문과 교차지원에서부터 시작해 정부의 이공계 집중 육성정책, 의대 정원 확대 등으로 인해 문과생들의 고민이 더 커지고 있다는 우려 역시 제기되고 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이과 중심의 대책에서 문과에 관련된 전반적인 정책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고려대학교에 재학중인 이민주(23.여)씨는 “저는 인문대학 학생인데 고시와 같은 전문직 시험을 응시하는 것이 아닌 일반적인 취업에 있어서 복수전공을 하지 않은 학생을 오히려 보기 힘들 정도다”며 “취업을 위해서 복수전공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고 밝혔다. 


이어 “요즘은 마케팅, 언론, 금융 등 일반적인 문과대의 취업시장에서 프로그래밍 관련 경험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며 “고등학교로 다시 돌아간다면 그냥 처음부터 이과를 갔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인문‧사회계열 채용 1순위, ‘직무 경험’…기준 학점 이상이면 무의미


▲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9.1%는 경영·경제학과를 제외한 인문·사회계열 전공자를 채용할 때 가장 중점적으로 보는 사항으로 직무 경험을 언급했다. ⓒ르데스크

 

문과가 이과에 비해 취업률이 저조한 것은 사실이나 그래도 문과를 위한 취업시장은 열려있다. 고용노동부와 여론조사 전문기관 글로벌알앤씨는 지난해 11월18일부터 12월23일까지 매출액 500대 기업 및 중견기업의 채용 담당자 758명을 설문조사한 결과를 지난 2일 발표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9.1%는 경영·경제학과를 제외한 인문·사회계열 전공자를 채용할 때 가장 중점적으로 보는 사항으로 직무 경험을 언급했다. 그 뒤를 이어 ▲직무능력 향상을 위한 교육훈련(59.8%) ▲회사 관심도·기업분석(18.3%) ▲직무 관련 복수·부전공 이수(13.9%)등이 뒤따랐다.


응답자의 89.1%는 직무와 연관성이 높은 아르바이트‧대외활동‧인턴 경험이 채용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답했다. 직무 관련 자격증이 도움이 된다는 답변 역시 82.6%를 기록했다. 반면에 학점의 중요성은 직무 경험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파악됐다. 응답자의 47.6%는 지원자의 학점이 기준 학점 이상이면 채용 결과에 영향이 크지 않다고 답했다.


박철성 교수(한양대 경제금융학부)는 “이번 채용인식 조사는 채용 과정에서 직무경험의 중요성이 확대되고 있는 최근의 추세를 잘 반영한 결과로 보인다”며 “문과생 청년들이 취업에 대한 막연한 걱정에서 벗어나 직무경험 쌓기에 초점을 두고 취업 준비를 하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고 밝혔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인문학적 가치 중요"

 

▲ 전문가들은 기술발달에 따른 인문사회에 대한 윤리의식과 인문학적 가치를 폄하하는 기조는 옳지 않다는 주장이 다수다. ⓒ르데스크

 

로봇과 인공지능 산업과 기술발전에 따른 이공계 쏠림 현상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기술발달에 따른 인문사회에 대한 윤리의식과 인문학적 가치를 폄하하는 기조는 옳지 않다는 주장이 대주를 이루고 있다. 


카이스트는 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 설립을 통해 디지털 시대에 걸맞는 인문융합공학자 양성을 본격화 하겠다고 지난해 4월 밝혔다. 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는 데이터사이언스와 인공지능(AI)등의 과학기술에 인문·사회과학을 융합한 교육과 연구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학부는 인문·사회과학과 과학·공학 간의 융합연구와 양방향 교육의 필요성을 바탕으로 출범했다.


전봉관 교수(카이스트 인문사회과학부)는 “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와 대학원을 출범시켜 위기에 빠져 있는 한국의 인문학, 사회과학 분야의 혁신을 선도적으로 이끌겠다”고 밝혔다. 


이찬규 교수는(중앙대 국어국문학과) “우리나라는 기술개발과 산업화를 통해 압축 성장 하였지만, 세계 1위의 자살률, 출생률 저조, 가계부채 최고 수준 등의 오명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이를 심층적으로 보면 기술위주의 사회와 관련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 교수는 “창조력과 창의력은 문화의 유연성으로부터 나오는데 우리나라 엔지니어들이 문화에 대한 인식이 다소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며 “유연한 사고를 위해서는 반드시 문화에 대한 이해가 이루어져야하고, 문화에 대한 이해는 인문학을 토대로 함양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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