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팬덤에 취한 글로벌 강대국 1인자들, 결국엔 역풍 맞았다
정치팬덤에 취한 글로벌 강대국 1인자들, 결국엔 역풍 맞았다

[지금 대한민국<199>]-팬덤정치 논란(下-해외사례) 정치팬덤에 취한 글로벌 강대국 1인자들, 결국엔 역풍 맞았다

‘의사당 점거’ 세력 2년째 추적해 법정 세우는 美

르데스크 | 입력 2023.03.07 13:57


▲ 2021년 1월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국회의사당 앞 집회에 참석한 한 여성이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의 얼굴을 크게 확대한 사진 간판을 들고 있다. 당시 트럼프 지지자들은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을 인정하는 선거인단 인증을 앞두고 이에 반대하는 정치집회에 나섰다. [사진=AP/뉴시스]

 

집단 욕설 문자테러 등 정치인 강성지지층의 폐해는 비단 대한민국의 문제만은 아니다. 미국‧중국 등 세계 주요국들도 그릇된 팬덤에 의해 체제가 위협받으면서 추종대상자가 도리어 궁지에 몰리고 있다. 전자의 대표적 사건은 2021년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 후자의 대표적 사건은 2022년 제로 코로나 반대시위인 백지(白紙)시위다.

 

특히 미국 같은 경우 우리나라와 같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라는 점에서 오염된 팬덤정치 폐해 척결 공감대는 한 층 크게 형성된다. 이른바 ‘떼법’이 헌법 위에 군림하면서 팬덤정치 앞에 옴짝달싹 못하는 한국이 폭동 주동자들 엄벌 등으로 기강을 확립 중인 미국처럼 원칙대로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시민‧전문가들 사이에서 높아진다.

 

공화당마저 경악한 국회의사당 습격 사건

 

2021년 1월6일(현지시간) 오후 1시경 미국 워싱턴 DC.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을 추종하는 수천명의 군중이 국회의사당을 습격하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졌다.

 

큐어넌(QAnon‧음모론 집단) 소속인 이들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선출된 2020년의 46대 대선 결과를 부인하고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면서 의사당을 무법지대로 만들었다. 그 결과 행정부‧의회 요인들이 긴급대피하는가 하면 5명이 사망하고 100여명이 부상을 입는 아비규환이 벌어졌다.

 

폭동 조짐은 이미 며칠 전부터 엿보이기 시작했다. 바이든 당선인(득표율 51.3%)에게 간발의 차로 패한 트럼프 대통령(46.8%)은 대선 부정선거 음모론을 펼치면서 불복 메시지를 남발했다.

 

그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 겸 상원의장에게 선거인단 투표 결과를 공개해 바이든 승리 결과에 불복하라는 요구를 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펜스 부통령은 대선 결과를 최종 확정하는 상‧하원 합동회의 주관자였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강성지지자들에게 1월6일 시위에 적극 동참할 것을 요구했다.

 

수천명의 트럼피스트(Trumpist)들은 1월5일부터 워싱턴에 집결하기 시작했다. 당국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의사당 인근에 경찰은 물론 주방위군까지 동원했다. 폭동 발발 몇 분 전에 트럼프 대통령 아들의 연인 킴벌리 길포일은 유튜브 영상에서 “올바른 일을 하기 위해 용기를 내고 싸워라”고 선동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만약 죽도록 싸우지 않는다면 당신의 나라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 등의 연설은 폭도들에게 의회 장악 명분을 제공했다. 폭도들은 상‧하원 합동회의 시작 시간인 오후 1시에 맞춰 인해전술(人海戰術)로 순식간에 폴리스라인을 뚫고 의사당에 난입하기 시작했다. 의사당은 미영전쟁 당시 영국군이 점령해 불을 지른 1814년 이후 206년만에 적대심 가득한 공격 앞에 무방비 노출됐다.


▲ 2021년 1월6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워싱턴 국회의사당 앞에서 경찰의 저지 울타리를 무너뜨리며 경찰과 충돌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이 과정에서 의정은 사실상 마비됐다. 펜스 부통령,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당선인과 민주당 의원들은 물론 여당 공화당 의원들까지 폭도들을 피해 긴급피신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집무실 등이 점거됐으며 선거인단 투표용지함은 폭도들에 의해 불 탈 뻔했다.

 

곳곳에서 총격전이 벌어졌으며 의회에 난입하려던 미 공군 출신의 여성 애슐리 배빗 등 폭도 4명이 사망했다. 연방의원들 대피 시간을 벌었던 경찰관 유진 굿맨은 폭도들에게 목숨을 잃을 뻔했으며 그의 동료 경찰 1명은 실제로 유명을 달리했다. 폭도 5명, 의사당 경찰관 60명, 워싱턴 광역경찰청 소속 경찰관 50여명 등 부상자도 속출했다.

 

미 여론은 좌우를 막론하고 큰 충격과 함께 분노에 휩싸였다.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은 “시위가 아닌 반란”이라고 못 박았다. 공화당 1인자였던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는 “의회는 폭도들에게 겁먹지 않았다. 시위대의 민주주의 파괴 시도는 실패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뉴욕타임스(NYT) 보도에 의하면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 부인인 멜라니아 트럼프마저 “부끄럽다”고 일갈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백악관 재입성은커녕 소송폭탄에 휘말릴 위기에 처했다. 2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 보도에 따르면 미 법무부는 “일촉즉발의 사적폭력 선동 등 연설은 대통령의 전통적 역할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연방 하원의원 11명, 의회 경찰관 2명 등은 의사당 점거 폭동 사태와 관련해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법적책임을 묻는 소송을 준비 중이다. 천문학적 규모의 금액이 언급되는 미국에서의 소송은 패소 시 파산으로 가는 지름길로 일컬어진다.

 

‘마오쩌둥 시대’로 역행하는 中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자신에 대한 무조건적 충성을 외치면서 신(新) 홍위병으로 불리는 이른바 ‘N세대’에 의해 도리어 역풍을 맞고 있다. ‘N세대’는 주링허우(九零後·1990년대생)와 링링허우(零零後·2000년대생)가 주축으로 이들은 1989년 민주화시위인 천안문사태를 겪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N’은 내셔널리즘(민족주의)을 뜻한다.

 

지난 2021년 9월12일 중국 현지 매체들 보도에 의하면 여대생 펑린(당시 22세)은 베이징 촨메이대학 개학식에서 재학생 대표로 연단에 올라 축사에 나섰다. 그는 향후 의지를 다지거나 재학생들을 독려하는 대신 뜬금없이 “나는 천안문광장 근거리에서 시 주석 연설을 배우고 들을 수 있어 무한한 영광을 느꼈다”고 주장했다.

 

펑린은 아예 “나는 중국 인민의 아나운서, 중국공산당의 아나운서다” “나는 어려움과 장애물을 극복하고 승리를 향해 행진하는 중국 인민의 목소리, 중국공산당의 정정당당한 진리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며 자신이 어용(御用) 인사로서 연단에 섰음을 자랑스럽게 고백하기도 했다.

 

‘N세대’의 그릇된 팬덤 과시 사례는 이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2021년 7월1일에는 이른바 ‘천안문의 맹세’가 시 주석 앞에서 낭독됐다.

 

당시 시 주석은 천안문광장에서의 중국공산당 100주년 기념행사에서 과거 1인 독재자였던 마오쩌둥 대형초상화 바로 위 연단에 섰다. 또 “(중국의) 미래는 청년의 것이고 희망은 청년에 달려 있다”며 자신에 대한 2030세대의 사실상의 충성을 요구했다. 이에 3454명의 지원자 중 발탁된 뒤 3개월에 걸쳐 특수훈련을 받은 펑린 등 여대생 대표 4명은 시 주석에게 “당이여 안심하라, 강국에게 내가 있다”고 외쳤다.


▲ 지난해 11월27일 중국 베이징에서 코로나19 봉쇄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백지’를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시진핑 정부의 제로코로나에 맞서 2030세대 주도로 전국 각지에서 열린 시위는 여론통제 등과 맞물려 규모가 급증했다. [사진=AP/뉴시스]

 

그러나 이러한 행보는 오히려 중국공산당 최대 지지층인 2030세대의 반발을 불러왔다. 시 주석은 ‘N세대’의 광적 응원을 등에 업고 고강도 ‘제로코로나’ 정책을 추진하던 터라 우상화에 대한 반감은 더욱 컸다. 외출 전면금지 등이 골자인 제로코로나의 궁극적 목적은 시 주석의 최대 정치적 오점(코로나사태) 해결이라는 게 중론이다.

 

제로코로나 등으로 인해 중국 경제는 침체돼 청년층의 도시 실업률은 지난해 5월 기준 18.3%를 기록했다. 이는 역대 최악의 수치였다. 중국의 반체제 예술가인 아이웨이웨이는 지난해 11월 영국 BBC 인터뷰에서 “경제가 무너지면서 학생들은 미래가 없고 졸업생들은 직업을 찾을 수 없기에 (백지시위) 규모가 커졌다”고 진단했다.

 

주간지 삼련생활주간의 여기자 쑹스팅은 웨이보에서 “(펑린 등) 저 여자아이들이 대오를 맞춰 자부심 넘치게 앞 다퉈 (시진핑의) 제물이 되겠다는 표정은 정말로 한 편의 공포영화 같았다”고 꼬집었다.

 

정부 통제도 불 난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시 주석 1인 독재를 위한 제로코로나 과정에서 봉쇄로 출입이 통제된 허베이성 스좌장시 미디어대에 격리됐던 한 학생이 병원이송 중 숨지는 사건이 지난해 11월 벌어졌다. 신장위구르자치구 우루무치 아파트 화재사고 추모식은 당국에 의해 불허됐다.

 

실제로 1976년 1차 천안문사태, 1989년 2차 천안문사태를 잇는 ‘3차 천안문사태’로까지 일각에서 평가받는 백지혁명 주축은 2030세대였다. 지난해 11월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약 150개 중국 대학생들이 백지행동에 참여했다”고 보도했다. 동월 트위터에는 청두 시위에서 공안(경찰) 추정 인물들에게 끌려가던 한 학생이 “자유로울 수 없으면 죽음을 택하겠다”고 외치는 영상이 올랐다. 미국 CNN은 “고강도 봉쇄조치에 저항하는 백지행동은 자유를 갈망하는 청년세대 움직임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범법자들에게 ‘사회적 사형선고’ 내리는 美

 

미국은 우리나라와 같은 자유민주 체제라는 점에서 팬덤정치의 해악성 근절 공감대가 더욱 형성된다. 한국도 헌정질서 유린 세력에 대한 미국 대응책을 벤치마킹해 그릇된 팬덤정치 종결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지난해 11월 미 워싱턴 DC 연방지법은 국회의사당 점거 사태 당시 특이한 복장으로 눈길을 끌었던 별칭 ‘큐어넌 샤먼(주술사)’ 제이컵 챈슬리(34)에게 징역 41월을 선고하고 범법자 명단에 올렸다.

 

챈슬리는 사태 당시 상의를 탈의한 상태로 얼굴에 페인트칠을 하고 뿔 달린 털모자를 쓴 채 성조기가 달린 긴 창을 들어 ‘샤먼’이라는 조롱 섞인 별명을 얻었다. 지난해 11월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보도에 의하면 로이스 램버트 판사는 “정부 기능을 방해하는 건 정당화할 수 없는 심각한 행위”라고 양형 배경을 밝혔다.

 

미국에서 전과자, 특히 ‘테러리스트’는 취업 등 사회생활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법원의 실형 선고는 챈슬리에게 사실상의 ‘사회적 사형선고’인 셈이다. 녹색 죄수복을 입고 법정에 출석한 챈슬리는 “나는 범죄자가 아니고 테러리스트도 아니다”고 주장했지만 비웃음만 샀다. 챈슬리 측 변호인은 챈슬리가 과거 학대를 받았고 인격장애 등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외의 폭동 가담자들도 공소시효 없이 속속 체포되고 있다. 27일(현지시간) 미 법무부에 따르면 연방수사국(FBI)은 폭동 때 ‘판다 마스크’를 쓴 채 동참해 경찰관 폭행,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를 받았던 제시 제임스 럼슨(37)을 최근 플로리다주(州) 리칸토에서 검거했다. 의사당 폭동 사태 이후 무려 2년만이다.

 

럼슨은 폭동 당일 오후 2시40분께 판다 마스크 차림을 한 채 의사당 문을 부수고 내부로 침입한 후 “양을 잡아라”고 외치는 등 폭력을 부추긴 것으로 조사됐다. 또 앞을 막는 경찰관 안면 보호장비를 잡고 경찰관 머리를 앞뒤로 흔든 것으로 파악됐다.

 

당국에 의하면 의사당 폭동으로 올해 3월까지 체포된 이는 985명에 달한다. FBI는 난입에 가담한 260여명의 신원도 지속적으로 추적 중이다.


▲ 지난 1월10일 성남 수원지검 성남지청 앞 인도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검찰 출석을 앞두고 지지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공동취재]

 

우리 정부도 지난해 10월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 산하에 ‘팬덤과 민주주의 특별위원회(팬덤특위)’를 설치하고 대응방안 마련에 나선 상태다. 국민통합위는 보도자료에서 “팬덤정치가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서 차지하는 역할과 중요성을 고려해 정치분열‧갈등 해소를 통한 민주주의 발전, 국민통합 관점에서 팬덤정치 이슈를 연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 송파구의 대학생 주경환(27‧남)씨는 “법치주의가 권위를 잃으면 사람들은 법을 우습게 알게 된다. 트럼프를 포함한 폭동 세력에게 강경대응하는 미국과 같은 확고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영등포구의 대학생 태하영(22‧여)씨는 “어느 순간부터 ‘정서법’이 우리 사회를 지배 중이다. 결국에는 ‘인민재판’이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문가는 더 이상의 혼란 방지를 위해 정치인들이 결단에 나서야 한다고 종용했다.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인 이현출 팬덤특위 위원장은 “(정치인들은) ‘좌표’가 찍혀 조리돌림 당할까봐 두려워한다. 일부를 제외하고 신념‧가치를 찾아보기 어려운 게 정치 현주소”라며 “과거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은 지지자 반대에도 욕먹을 각오를 하고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사면, 김대중‧오부치 선언(일본문화 개방), 이라크 파병 등을 결단했다. 팬덤정치 혜택을 보는 정치인이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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