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방·욕설에 협박까지…‘다양성의 조화’ 정치본질 흐리는 팬덤
비방·욕설에 협박까지…‘다양성의 조화’ 정치본질 흐리는 팬덤

[지금 대한민국<197>]-팬덤정치 논란(上-팬덤의 빛과 그림자) 비방·욕설에 협박까지…‘다양성의 조화’ 정치본질 흐리는 팬덤

문민정부 이후 사라졌다가 21세기 재등장한 정치테러

르데스크 | 입력 2023.03.06 12:57


▲ 성남FC 후원금 의혹 등을 받고 있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검찰출석을 앞둔 지난 1월10일 경기 성남시 수원지검 성남지청 앞에서 이 대표 지지자들이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강성지지층인 ‘개딸’발(發) 팬덤정치 논란이 뜨겁다. 특정 정치인에 대한 지지를 넘어 반대세력에 대한 욕설 문자테러 등으로 악명을 떨치면서 심지어 야권 내에서도 비판 목소리가 거세진다. 중국 마오쩌둥 시대의 홍위병을 연상케 하는 ‘패거리정치’ 앞에 민주주의가 위협받는다는 우려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과거 우리 정치사에서 팬덤정치가 순기능을 발휘할 때도 있었다는 점에서 시대에 역행하는 팬덤정치는 지양돼야 한다는 요구가 쏟아진다. 포퓰리즘성 공약을 남발하는 추종인물을 우상화하고 ‘묻지마 지지’를 하면서 온라인상에서 무더기로 몰려다니고 반대편에 린치를 가하는 적색테러가 아닌, 지지 정치인의 자신감을 높여주는 한편 때로는 역량제고의 발판을 마련해주는 건전한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는 것이다.


▲ 1989년 12월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귀빈식당에서 김종필‧김대중‧김영삼(왼쪽부터) 야3당 총재 회담에 앞서 김대중 총재가 김영삼 총재와 악수하며 손을 잡아당겨 가운데 자리를 권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표심결집‧싱크탱크 등 역할 한 팬덤

 

팬덤정치란 용어 자체는 2000년대 이후 나온 신조어이지만 존재 자체는 대한민국 건국과 함께 시작됐다. 건국 대통령인 이승만 전 대통령, 백범 김구 등도 저마다의 ‘팬클럽’을 가진 채 정치적 체급을 불려나갔다. 이러한 팬덤정치는 후대에도 이어졌으며 특히 노태우 전 대통령의 ‘월계수회’가 많은 주목을 받았다.

 

1987년의 13대 대선은 이른바 3김(金)과 노 전 대통령의 대결 구도였다. ‘40대 기수론’ 돌풍을 주도했던 통일민주당의 김영삼(YS), 평화민주당의 김대중(DJ) 후보와 신민주공화당의 김종필(JP) 후보는 야권 후보단일화에 실패했다.

 

자연히 표심 분산은 자명했음에도 여전히 YS‧DJ의 지지율은 노 전 대통령에게 위협적이었다. 한국갤럽의 1987년 조사에서 각 후보별 지지율은 노태우 34.4%, YS 28.7%, DJ 28.0%, JP 8.4%였다. 실제 개표 결과에서도 득표율은 노태우 36.64%, YS 28.03%, DJ 27.04%, JP 8.06%로 박빙의 승부였다.

 

이에 훗날 노태우정부에서 ‘6공 황태자’로 불리게 되는 박철언 전 장관은 13대 대선을 약 4개월 앞둔 1987년 8월께 서울 세종문화회관 뒤편의 로열빌딩 520호에서 여권 내 최대 조직인 월계수회를 창립했다. 해당 단체는 야권이 일으킨 민주화 열풍에 주눅 든 ‘샤이보수층’의 표심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끝내 보수층 단일대오를 이끌어낸 월계수회는 노태우정부 출범의 일등공신이 됐다.

 

뿐만아니라 월계수회는 노 전 대통령의 역량제고를 위한 싱크탱크 역할을 하기도 했다. 1991년 4월 이름을 밝히지 않은 민정계의 한 중진의원은 당시 언론에 “민자당 내 어떤 계파도 박철언 장관과 월계수회를 견제하는데 역부족이었다”고 토로했다. 해당 인사에 의하면 월계수회는 조직 내의 수많은 ‘브레인’들을 총동원해 어떤 경우에는 비서실보다도 더 빨리 적절한 정책을 내놓기도 했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망한 2009년 5월23일 저녁 빈소가 마련된 경남 김해 봉하마을회관을 찾은 노사모 회원들이 촛불을 들고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노사모 이후 음지에서 양지로 나온 팬덤정치

 

YS‧DJ도 팬덤정치의 수혜를 받았다. YS의 민주산악회(민산)는 YS가 정치적 규제에 묶였던 1981년 6월 여러 야권인사들과 함께 만든 모임이다. YS를 고문으로 한 민산은 주요 정치사안에 대해서 YS를 대신해 성명을 내놓거나 지방조직을 확대하는 등의 역할을 했다. YS가 매주 목요일 민산 회원들과 함께 정기산행에 나섰던 건 유명하다.

 

14대 대선에 이르러 회원수가 150만명에 이르렀던 민산은 YS 당선에 큰 기여를 했다. 절치부심한 YS는 1992년의 14대 대선에서 41.96%의 득표율을 올리며 33.82%의 민주당 김대중, 16.31%의 통일국민당 정주영 후보를 꺾고 청와대에 입성해 문민정부 출범을 선언했다. YS는 호남‧제주와 수도권 일부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우세를 보였다.

 

YS의 바통을 이어받아 1997년의 15대 대선에서 당선된 DJ도 팬클럽을 보유했다. DJ의 장남인 김홍일 전 의원에 의해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결성된 민주연합청년동지회(연청)는 DJ 청와대 입성의 레드카펫을 깔았다. 연청은 DJ의 친위부대 역할을 하면서 평민당 등의 외곽조직으로서 기능했다.

 

15대 대선에서 DJ는 40.27%의 득표율을 올리며 38.74%의 한나라당 이회창, 19.20%의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에게 승리했다. DJ는 1999년 6월 연청 정기대회에 보낸 메시지에서 “민주화에 헌신한 공로는 길이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치하하거나 이듬해 11월 연청 간부 560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격려했다. 연청 회장 출신인 주요 정계인사로는 문희상 전 국회의장, 정세균 전 국무총리 등이 있다.

 

때로는 사조직이라는 오명 아래 음지에서 활동해야 했던 정계 팬덤은 2000년대 이후 양지로 나오기 시작했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아무래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다.

 

노 전 대통령은 2000년 4월의 16대 총선에서 민주당계 정당에게 무덤이나 다름없었던 부산 북구‧강서을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이후 386세대를 중심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노사모는 인터넷 시대를 맞아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면서 마치 연예인의 팬덤을 연상케 하듯 노 전 대통령을 열성적으로 지지했다.

 

2004년 새천년민주당‧한나라당이 초당적으로 합심해 발의했던 노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된 배경에도 노사모 주도로 형성된 여론이 있었다.

 

거리로 몰려나와 대규모 반대시위를 벌인 노사모 앞에 헌재는 “대통령의 법 위반행위(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호소 등 공직선거법 위반)가 헌법수호 관점에서 중대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없고 파면결정을 정당화하는 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노사모 이후 우후죽순으로 쏟아진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문파(문재인 팬클럽) 등도 지지후보 당선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게 중론이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성남FC 후원금 의혹 관련 검찰조사에 출석한 지난 1월10일 오전 경기 수원지검 성남지청 앞에서 지지자들이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

 

표심저해‧우상숭배만 남은 21세기 팬덤정치

 

이처럼 팬덤은 추종인물의 지지율 상승, 역량제고라는 순기능도 했지만 역기능도 했다. 문민정부 이전의 팬덤에서는 반대 측에 대한 노골적인 테러가 횡행했다.

 

제주 출신으로서 남조선노동당(남로당) 제주도당 위원장이었던 김달삼은 1947년 3월 제주 4.3사건을 일으켜 무고한 양민은 물론 서북청년회도 습격해 학살했다. 이북 출신 실향민 출신들이 주축인 서북청년회는 이승만 전 대통령 지지세력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정재 등에 의한 백색테러도 종종 발생했다.

 

문민정부 출범 이래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했던 팬덤정치의 역기능은 2000년대 이후 시대에 역행해 다시 벌어지기 시작했다. 2006년 5월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4회 지방선거에 출마한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지원유세에 나섰다가 서울 신촌 현대백화점 앞에서 ‘커터칼 피습’을 당했다.

 

사건 당일 범인은 청중으로 위장하고 숨어 있다가 박 전 대통령에게 다가가 10㎝ 가량의 커터칼을 박 전 대통령 우측 뺨에 대고 그어서 길이 11㎝, 깊이 최대 3㎝의 자창을 입혔다. 체포된 범인은 국선변호인 접견에서 “박근혜는 독재자의 딸이고 나는 5공 시절 억울하게 옥살이를 해 범행했다”고 주장하며 자신이 민주당계 정당 지지자임을 시사했다. 이뿐만 아니라 온라인상에서 한나라당‧열린우리당 지지자 간 이전투구가 벌어지거나 전국 각지 선거유세장에서 폭력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구시대적 정치테러가 극에 달한 건 문재인 전 대통령 팬덤인 ‘문파’ 때였다는 게 중론이다. 이들은 온라인상에서 떼 지어 몰려다니며 보수당계 인사들에게 욕설 댓글‧문자 폭탄을 쏟아 붓거나 사무실에 욕설전화를 해 업무를 마비시켰다. 이러한 팬덤정치의 폐해는 오늘날 “이재명이 민주당이다” 등의 구호를 외치는 ‘개딸’ 등에 의해 계승되고 나아가 발전하고 있다.

 

장점은 상당부분 상실되고 반대파에 대한 테러, 묻지마식 지지만이 난무하는 오늘 날의 팬덤정치를 두고 개탄의 목소리가 드세진다.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과거의 ‘린치의 정치’로 퇴행하는 대신 때로는 비판적 지지도 마다하지 않는 선진화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 영등포구의 직장인 서준(37‧남)씨는 “역사책에서나 볼 법한 테러정치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이라는 우리나라에서 21세기에 벌어지고 있어 통탄할 따름”이라고 지적했다. 대학생 남보라(21‧여)씨는 “내 주변에서도 ‘광신도’들을 쉽게 본다”며 “팬덤이라는 게 지지인사 성공을 위하는 것인 만큼 묻지마 지지 대신 원래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그래야 지지인사 얼굴에 먹칠하지 않고 그만큼 성공을 뒷받침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릇된 팬덤정치 수혜자들이 민주산악회 해산에 나섰던 YS와 같은 결단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외교학 교수는 “정치인들이 당원확보 중요성으로 인해 이들을 키워주면서 악순환을 자초했다”고 분석했다.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도 유튜버(등 강성지지층)에 의존한 끝에 세 차례 선거에서 패했다”며 “민주당은 외부조직에 기대는 대신 본연의 중심을 잡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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