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범죄 수준인 학폭, 지금도 잔혹 수위는 높아지고 있다
이미 범죄 수준인 학폭, 지금도 잔혹 수위는 높아지고 있다
▲ 최근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가해자들의 방식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악랄해지면서 피해자가 받는 고통 또한 커지고 있어서다. 사진은 학교폭력 근절 캠페인에 나선 시민단체 회원들. [사진=뉴시스]

 

최근 학교폭력(이하 학폭)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과거 어느 때 보다 뜨겁다. 학폭을 주제로 담은 드라마 ‘더 글로리’의 선풍적인 인기와 아들의 학폭 전력으로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다 낙마한 이른바 ‘정순신 사태’ 등의 여파로 분석된다. 특히 드라마의 높은 인기와 고위 공직자의 낙마 사태 등에서 촉발된 학폭에 대한 관심은 그 심각성까지 재조명되면서 더욱 고조되는 모습이다.

 

최근 벌어지는 학폭은 학생들이 저지른 일이라곤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교묘하고 악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범죄라 부를 만한 수준은 한참 넘어섰고 일부는 잔혹 무도함이 성인들마저 허를 내두를 정도의 수준에 달하고 있다. 심지어 향후 적발을 염두하고 책임을 피할 요량으로 증거를 남기지 않는 등의 교묘함까지 보이고 있다. 안타까운 사실은 학폭의 방식이 잔혹하고 교묘해질수록 피해자가 받는 고통 또한 더욱 커진다는 점이다.

 

인터넷, 스마트폰에 익숙한 요즘 청소년들, 상상 이상의 비대면 괴롭힘 방식 만들어 내

 

교육부가 지난해 9월 발표한 ‘2022년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전수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폭 피해를 경험한 학생은 전체 응답자의 1.7%였다. 비율만 놓고 보면 한 자릿수로 적은 것처럼 보이지만 피해 학생 수로 따지면 5만4000명에 달했다. 직전 해 조사에 비해 비율은 0.6%p, 학생수는 1만8000명 각각 증가했다. 전국 초·중·고교 숫자가 1만여 곳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단순 계산으론 각 학교 당 최소 5명의 학폭 피해자가 존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피해유형별 응답 비중은 언어폭력(41.8%), 신체폭력(14.6%), 집단따돌림(13.3%) 등의 순으로 조사됐다. 기성세대가 흔히 알고 있는 ‘왕따’ 등의 집단 따돌림이나 ‘이지메’로 불리는 집단 폭행은 감소하고 새로운 형태의 언어폭력 비중이 급격하게 늘어난 점이 주목된다. 그 배경에는 SNS, 온라인 메신저 등의 일상화가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SNS와 비대면 문화에 익숙한 세대답게 괴롭힘 또한 익숙한 방식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다.

 

▲ 교육부가 지난해 9월 발표한 ‘2022년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전수조사)’ 결과에 따르면 피해 학생 수는 5만4000명에 달했다. 전국 초·중·고교 숫자가 1만여 곳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단순 계산으론 각 학교 당 최소 5명의 학폭 피해자가 존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사진은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다 낙마한 정순진 전 변호사 아들의 학교폭력 논란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대자보. [사진=뉴시스]

 

비대면 언어폭력의 심각성은 경찰 조사에서 더욱 극명하게 나타났다. 서울경찰청이 ‘서울 청소년 범죄 통계’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학폭 신고 건수는 2020년 5555건에서 2021년 6823건으로 1년 새 22.8% 가량 증가했다. 신고 내역 중 19.8%는 온라인상에서 벌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온라인상에서 벌어진 행위인 만큼 피해 유형으로는 언어폭력이 가장 많았다. 대부분 카카오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의 메시지 전송 서비스에서 발생했다.

 

디지털 기기의 발달로 생겨난 새로운 형태의 괴롭힘인 만큼 그 수법은 기성세대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기상천외했다.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 피해자를 초대해 퇴장하지 못 하도록 겁박한 후 보란 듯이 비방을 하거나 욕설을 퍼붓는 행위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 초대한 후 나머지는 전부 나가 상대방에게 굴욕감을 주는 행위 △단체 대화방에 초대한 후 투명인간 취급하는 행위 등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례다.

 

이 밖에 △피해자 개인 SNS 등에 굴욕적인 사진을 강제로 올리게 하는 행위 △피해자 휴대폰을 이용해 현금결제를 하는 행위 △피해자 한 명에게 단체로 욕설과 비방 메시지를 보내는 행위 △피해자의 휴대폰 요금제를 무제한으로 바꾸도록 강요한 후 데이터를 공유받아 사용하는 이른바 ‘데이터 셔틀’ 행위 등 새로운 사례도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악랄하고 교묘한 정신적 괴롭힘, 고통 받던 피해자 결국 극단적 선택까지

 

▲ [그래픽=석혜진] ⓒ르데스크

 

문제는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괴롭힘의 심각성 또한 과거의 괴롭힘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최근의 괴롭힘 방식은 피해자에게 정신적 고통을 입히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욱 악랄한 수법으로 평가된다. 폭행, 갈취 등은 피해자의 신체에 상흔이 남거나 금전적 피해액을 산출할 수 있지만 정신적인 괴롭힘은 피해 여부조차 확인이 불가능해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어렵기 때문이다.

 

피해자 입장에서도 피해를 입증하거나 고통을 호소하기조차 어려워 부작용은 더욱 큰 편이다. 어디 가서 하소연하기도 어려운 탓에 스스로 고통을 감내하다 결국 극단적인 선택 시도로까지 이어진 사례가 적지 않다. 심지어 극단적인 선택으로 인해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사례도 존재한다.

 

경찰청 등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광주광역시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2학년생 A양이 자신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가족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현장에서 외부인 침입 흔적 등 강력범죄혐의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A양이 ‘학교생활이 힘들었다’는 취지의 편지를 가족에게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경찰은 사실 확인을 거쳐 교내 폭력 사건과 A양 사망의 인과성 여부를 확인한 뒤 공식 수사로 전환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앞서 2018년에도 인천시 연수구 한 주택에서 중학생 B(13)양이 숨져있는 것을 고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B양의 몸에 외상이 없고 외부 침입 흔적이 없는 점으로 미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됐다. 그러나 당시 유가족은 학폭 때문에 B양이 목숨을 끊었다고 주장했고 경찰은 곧장 조사에 착수했다.

 

▲ 정신적 고통을 입히는 학교폭력으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등 정신적인 폭력은 피해 입증이 어렵다는 이유로 조치가 지연되다 보니 그 부작용이 더욱 크다고 입을 모았다. 사진은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현장간담회를 개최한 이주호 교육부장관. [사진=뉴시스]

 

학폭 피해자들이 쉽게 자살 충동을 느낀다는 사실은 통계로도 입증됐다. 청소년 NGO(비정부기구) 푸른나무재단에 따르면 학폭 피해자 53.6%가 ‘고통스러웠다’고 답했는데 그 중 자살·자해 충동을 경험했다는 응답은 25.8%에 달했다. 당시 조사에서 피해자가 겪은 학폭 유형 중 31.6%는 사이버폭력이었다. 학교폭력 유형들 중 가장 높은 비중이었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등 정신적인 폭력은 피해 입증이 어렵다는 이유로 조치가 지연되다 보니 그 부작용이 더욱 크다고 입을 모았다. 이종익 푸른나무재단 사무총장은 “SNS, 메신저 앱 등 청소년이 이용하는 대다수 디지털 플랫폼에서 사이버폭력이 발생하고 있다”며 “사이버폭력의 경우 피해 증거가 모호하거나 가해자를 특정하기 어려워 피해자 보호 조치가 지연되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어 “자연스레 보호 조치가 지연되다 보니 피해자의 고통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며 “사이버폭력도 명백한 폭력이고 피해자가 입는 정신적 피해는 물리적 피해만큼이나 크다. 가정이나 학교에서도 그 사실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밝히는데로 서둘러 조치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문호세법률사무소 문호세 변호사는 한 언론 기고문을 통해 “언어폭력은 상대방의 명예를 훼손하는 구체적인 말이나, 모욕적인 표현을 하는 것, 신체 등에 해를 끼칠 듯한 언행 혹은 문자메시지 등으로 겁을 주는 행위(협박)를 말한다”며 “현행법 상 언어폭력은 일어난 장소를 가리지 않기 때문에 피해를 당했다면 곧장 처벌이 가능하다. 만약 피해를 입었다면 이 부분을 염두하고 학교나 부모에게 즉각 알려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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