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비웃는 특권국회, 또 한 번의 역사적 오점을 남기다
국민 비웃는 특권국회, 또 한 번의 역사적 오점을 남기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의 체포동의안 부결 이후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을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여론 안팎에선 구속 영장에 대한 법원의 판단 시도를 무력화시키는 불체포특권은 현 시점에선 공정과 상식에 맞지 않는 악법이라는 지적이 많다. 사진은 국회 본회의장 전경. [사진=뉴시스]

 

대장동·위례신도시 개발 특혜 의혹, 성남FC 후원금 의혹 등 각종 권력형 비리 혐의를 받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의 체포동의안 부결 이후 한국 사회가 들썩이고 있다. 당초 가결을 강하게 밀어붙였던 여당과 여당 지지자들의 반발은 익히 예상됐었지만 다른 부분에서의 반발도 상당한 모습이다.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 자체에 대한 반감 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여론 안팎에선 구속 영장에 대한 법원의 판단 시도를 무력화시키는 불체포특권은 현 시점에선 공정과 상식에 맞지 않는 악법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미 해외에선 불체포특권을 아예 없애거나 제한적으로 적용하고 있음에도 우리나라만 유일하게 ‘방탄국회’까지 열어 처벌을 피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하는 데 대해 개탄스럽다는 반응도 나온다. 심지어 일각에선 불체포특권에 기대는 행위 자체가 스스로 죄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견해도 적지 않다.

 

169석 민주당 당대표 구속 여부 표결에 138명만 반대, 국민 관심 쏠린 ‘31명의 양심’

 

지난달 27일 국회 본회의장에선 헌정 사상 최초로 현역 제1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이 진행됐다. 이번 표결은 민주당이 전체 국회의석 300석 중 169석을 차지한 상황에서 진행됐기 때문에 일찌감치 부결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었다. 체포동의안은 재적 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과반이 찬성하면 가결되고 과반이 안 되면 부결된다. 무효나 기권은 반대로 본다.

 

그런데 부결을 확신했던 민주당의 예상과 달리 실제 개표 결과는 아슬아슬했다. 결과는 같았지만 내용은 180도 달랐다. 전체 299명 의원(국회의장 제외) 중 297명이 투표에 참여한 결과 찬성 139표, 반대 138표, 기권 9표, 무효 11표 등의 결과나 나왔다. 구속수감 중인 정찬민 국민의힘 의원과 무소속 김홍걸 의원이 불참한 점을 감안하면 민주당에선 무려 31표나 이탈표가 생긴 셈이다.

 

▲ 지난달 27일 국회 본회의장에선 헌정 사상 최초로 현역 제1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이 진행됐다. 개표 결과는 전체 299명 의원(국회의장 제외) 중 297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139표, 반대 138표, 기권 9표, 무효 11표 등이었다. 이에 따라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구속 수사를 피할 수 있게 됐다. 사진은 동료 의원의 격려를 받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 [사진=뉴시스] 

 

일찌감치 체포동의안 반대 입장을 밝힌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야권 성향 무소속 의원(5명) 등이 모두 반대표를 던졌다고 가정할 경우엔 민주당 내 이탈표는 최대 37표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통상적으로 국회 안건 표결에서 기권이나 무효는 당론과 개인의 생각이 배치되거나 끝까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을 경우 제3의 선택지로 활용된다. 결국 최대 37명의 민주당 의원이 이 대표의 체포를 ‘순리’라고 여겼다는 의미로도 해석 가능하다.

 

정치권 안팎에선 민주당 내에서 이탈표가 대거 발생한 배경에 과도한 방탄이미지에 따른 민심 이반 우려가 자리하고 있다는 시각이 많다. 제1야당 대표의 구속 결정은 검찰 입장에서도 엄청난 부담인데 이를 특권으로 무마시키면 국민적 의심이 커질 수밖에 없고 결국엔 민심 이반으로 이어진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정치권 전체에 대한 반감이 민주당 한 곳으로 쏠리는 부분도 우려 요소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견해도 적지 않다.

 

“의원 한 명 지킨다고 임시국회 여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 불체포특권 수술대 올려야”

 

끝까지 당론을 거부한 일부 민주당 의원들의 우려는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부결 이후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에 대한 반감의 목소리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 야당 탄압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법이 민주주의가 완전히 정착한 현 시점에선 국회의원 범죄를 막아주는 방패막이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특히 해외 선진국에선 해당 법안이 완전히 사라졌거나 제한적으로 적용되고 있다는 점은 비판 여론에 기름을 붓고 있다. 실제로 네덜란드,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에선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을 아예 인정하지 않고 있다. 아일랜드에선 불체포특권을 인정하긴 하지만 국회출석 중이거나 출·퇴근 시에만 적용하고 있다. 나머지 시간엔 언제든 체포가 가능한 셈이다.

 

미국은 연방헌법 제1조 6항을 통해 상·하원 의원의 불체포특권을 인정하고 있지만 반영죄, 중죄, 치안방해죄 등은 예외로 두고 있다. 지금은 ‘모든 형사범죄에는 불체포특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불체포특권 자체가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프랑스는 국회의 동의 없이 의원 체포는 물론 형사적 소추 절차까지도 금지하는 불체포특권 규정을 두고 있었지만 1995년 불체포특권을 축소하는 취지로 헌법을 개정했다.

 

▲ 해외 선진국에선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법안이 완전히 사라졌거나 제한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국회의원 체포를 막기 위해 임시국회까지 여는 나라는 사실상 우리나라가 유일한 것으로 파악됐다. 사진은 한동훈 법무부장관. [사진=뉴시스]

 

일본의 불체포특권 규정은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국회 밖에서의 현행범인 경우를 제외하고 회기 중 의원을 체포하려면 중의원이나 참의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회기 전에 체포된 의원은 참의원 또는 중의원의 요구가 있으면 회기 중 석방해야 한다. 그러나 일본에선 우리나라와 같이 불체포특권을 활용하기 위해 임시국회를 열고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키는 이른바 ‘방탄국회’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다수의 시민들은 글로벌 트렌드에 발맞춰 우리나라의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또한 하루빨리 사라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직장인 양형준 씨(35·남)는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로서 상당한 도덕적 자질과 사회적 책임이 요구되는 직업이기 때문에 막강한 권한을 부여받는 것 아니냐”면서 “그럼 잘못을 저질렀을 때도 일반 국민 보다 더욱 강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지금의 구조는 권한은 막강하고 책임은 안지는 불공정한 구조다”고 꼬집었다.

 

가정주부 이연수 씨(42·여)는 “그동안 선거 때만 되면 많은 정치인들이 불체포특권 폐지를 외쳐댔고 그 중에는 이재명 당대표도 포함돼 있었다”며 “정치인들 스스로 불체포특권 폐지를 약속했다는 것은 그것이 얼마나 불합리한 지, 또 국민적 반감이 큰 지도 알고 있다는 의미 아니냐”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래놓고 정작 불리할 땐 불체포특권 뒤에 숨는 것이야 말로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아마 이번 체포동의안 부결은 내년 총선까지도 국민 기억에 남아 있게 될 것이다”고 성토했다.

 

전문가들도 불체포특권에 대한 국민적 반감은 앞으로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범위와 한계를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등의 조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상철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한 언론 기고문을 통해 “불체포특권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각도 점점 불편해지고 있고 특히 공정과 상식, 투명성에 민감한 세대는 그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며 ”불체포특권이 가지는 제도적 취지를 고려해 국회법에 불체포특권의 범위와 한계를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등 합리적 조정을 해야 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불체포특권이 논란이 되는 부분은 인신 구속이 직책과 직위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다는 점이다”며 “말 그대로 엄청난 특권인 셈인데 취지 자체인 ‘3권 분립’이 어느 정도 정착된 현 시점에선 법안에 대한 축소 및 보안이 필요하다고 본다. 동시에 범죄 혐의자를 감싸는 의원과 정당을 국민이 선거를 통해 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환경도 조성돼야 한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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