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마저 돈으로 편 갈라 비하·조롱…“결혼·출산이 무섭다”
애들마저 돈으로 편 갈라 비하·조롱…“결혼·출산이 무섭다”

 

▲ 최근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부모의 경제력으로 편을 갈라 끼리끼리 문화를 형성하고 심지어 상대방을 조롱·비하하는 행태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미혼남녀의 결혼의지에도 찬물을 끼얹는 것으로 파악됐다. 사진은 등교 중인 초등학생들.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뉴시스]

 

부모로부터 시작돼 아이들에게 옮겨간 지나친 황금만능주의 인식이 미혼남녀의 결혼·출산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최근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집, 취미 등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편을 갈라 끼리끼리 문화를 형성하고 심지어 상대방을 조롱·비하하는 행태가 그것이다. 이러한 행태는 점차 어린 연령대로 옮겨가며 나타나 문제의 심각성이 더해지고 있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부모 경제력 따라 끼리끼리 놀고 상대방 비방 일삼는 요즘 아이들

 

몇 년 전 초등학생들 사이에선 휴거, 엘사 등의 신조어가 유행했었다. 휴거는 ‘휴먼시아 거지’의 줄임말로 임대아파트에 거주하는 친구를 조롱·무시할 때 사용된 단어다. 엘사 역시 ‘LH아파트 사는 사람’의 줄임말로 휴거와 비슷한 용도로 사용됐다. 비슷한 의미로 빌거(빌라 사는 거지), 월거지(월세 사는 거지), 전거지(전세 사는 거지) 등의 단어도 있었다.

 

당시 이들 단어의 등장은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다. 돈에 대한 개념조차 없는 어린 아이들이 부모의 경제력으로 편을 가르고 경제력이 다소 약한 가정의 아이를 조롱하고 비하한다는 사실이 개탄스럽다는 목소리가 높게 일었다. 단편적인 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나쁜 습관을 성인이 된 후에도 버리지 못할까 우려하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편 가르기가 습관이 된 사람이 많아질수록 사회 양극화가 심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렀지만 어린 아이들의 행태는 크게 변하지 않는 모습이다. 오히려 예전보다 더 하면 더했지 덜 하진 않다. 단순히 집 하나로 경제력을 판단했던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일상생활이나 취미 등을 두고서도 경제력을 판단해 편을 가르고 있다. 편을 가른 이후 비하나 조롱을 서슴지 않는 것은 예전 모습 그대로다. 단적인 사례로 ‘개근거지’라는 단어의 등장이 꼽힌다.

 

 

▲ 과거엔 성실함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개근이 요즘엔 비난과 조롱의 이유가 된 것으로 나타났다. 초등학생들 사이에선 가정 형편이 여의치 않아 ‘해외여행’을 못 간다는 의미의 ‘개근거지’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사진은 강원도의 한 국민임대아파트 공사 현장. [사진=뉴시스]

 

‘개근거지’는 가족동반 여행 등 교외체험학습을 신청하지 않고 꼬박꼬박 학교에 나오는 아이를 지칭할 때 사용하는 신조어다. 가정 형편이 여의치 않아 ‘해외여행’을 못 간다고 판단하고 ‘거지’라는 단어를 붙인 것이다. 과거엔 성실함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개근이 요즘엔 비난과 조롱의 이유가 된 셈이다. 어린 초등학생들의 이러한 행태는 조롱의 대상이 된 학생과 그 부모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긴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남다른 것으로 평가된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김하윤 양(11·여)은 “요즘 주변 친구들을 보면 방학이나 이럴 때 가족과 함께 해외여행 한 번씩은 다 다녀왔다”며 “사실 별로 재미는 없는데 해외 가족여행을 안 가면 주변 친구들이 거지 취급하다 보니 억지로라도 한 번 가야한다. 2학년 때 한 친구는 교외체험학습을 안 간다는 이유로 놀림을 받다가 결국 전학까지 갔는데 그 일을 엄마에게 말했더니 엄청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6학년 자녀를 둔 이주영 씨(39·여)는 “아이가 3학년 때인가 하루는 시무룩해 있어서 물어보니 친구들이 ‘너는 왜 교외체험학습 신청 안하고 학교에 꼬박꼬박 나오냐. 너희 집은 가족 해외여행 같은 거 못 가느냐’고 물었다고 하더라”라며 “그 일이 있은 후론 바쁜 시간을 쪼개 억지로라도 해외여행을 가고 있다. 아이가 그런 취급을 당했다는 사실이 분하고 억울해 지금도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잠이 안온다”고 성토했다.

 

“부모 경제력 따지는 아이들 행태에 충격, 무서워서 결혼·출산 못 하겠다”

 

주목되는 사실은 부모의 경제력을 가지고 편을 나누는 아이들의 행태가 우리 사회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미혼남녀 사이에선 부모의 경제력을 가지고 아이들이 편을 갈라 서로 조롱·비방하는 모습이 결혼과 출산을 더욱 멀어지게 만든다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가뜩이나 부담이 큰 결혼과 출산이 어린 아이들의 행태로 인해 더욱 무겁게 느껴진다는 반응이다.

 

직장인 한준영 씨(31·남)는 “예전에 휴거·엘사 이야기를 들을 때 내 집 사기 전에 결혼이나 출산은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젠 내 집을 사도 문제다”며 “아기가 초등학생이 되면 40~45살 사이가 될 텐데 그 때까지 내 집도 사야하고 해외여행도 꼬박꼬박 다닐 정도로 돈을 버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모르겠다. 결국 그럴 능력이 안 되면 내 아이가 놀림을 받는 게 현실인데 어떻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겠나”라고 푸념했다.

 

 

▲ 전문가들은 부모의 경제력을 기준으로 어린 아이들 간에 편 가르기 문화가 형성되는 현 상황은 저출산 문제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진단했다. 사진은 단체만남을 진행 중인 미혼남녀의 모습. [사진=뉴시스]

 

대학생 양희진 씨(23·여)는 “불과 10년 전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요즘 같진 않았는데 들리는 이야기론 아이들끼리 단순히 집 소유 여부를 떠나 아파트인지 빌라인지, 심지어 아파트이면 어떤 브랜드인지까지 따진다고 하더라”라며 “아직은 결혼적령기까진 시간이 한참 남았지만 벌써부터 결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된다”고 운을 뗐다.

 

이어 “엄마들도 맞벌이 부부 엄마를 따돌리고 엄마가 양육에만 ‘올인’하는 아이들만 끼리끼리 어울린다는데 도대체 집도 가져야 하고 맞벌이는 안 되고 하는 게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며 “결국 우리 아이가 소외되지 않으려면 고소득자 남편을 만나거나 할아버지·할머니가 부자여야 한다는 이야긴데 관련 그런 사람이 몇이나 있겠나.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결혼·출산이 굉장히 두려워진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부모의 경제력을 기준으로 어린 아이들 간에 편 가르기 문화가 형성되는 현 상황이 저출산 문제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아직까지 돈에 대한 개념이 부족한 어린 아이들이 이렇게 된 이유는 부모의 잘못된 인식과 가정교육이 결정적인 만큼 부모세대의 반성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올바른 가치관과 인성을 가질 수 있도록 제대로 된 가정교육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서진형 공공주택포럼 대표(경인여대 교수)는 “아이들끼리 서로 부모의 경제력을 가지고 편을 나누고 비방하고 하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며 “아이들이 스스로 부모의 경제력을 알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국 부모가 그렇게 알려주고 가르쳤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아이들의 그릇된 행동과 인식, 나아가 사회의 병폐 현상은 일부 어른들의 몰상식한 가정교육 때문인 셈이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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