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안 샀고 저건 싸게 샀고…오늘 하루도 잘 살았네”
“이건 안 샀고 저건 싸게 샀고…오늘 하루도 잘 살았네”
▲ 최근 불필요한 소비는 최대한 자제하고 똑같은 물건이면 되도록 싸게, 어차피 사야 할 땐 필요한 만큼만 사는 불황형 소비트렌드가 확산하고 있다. 사진은 홍대입구 상권. ⓒ르데스크

 

소비자들의 의식 변화에 발맞춰 불황형 소비트렌드도 변화하고 있다. 무조건 ‘안’ 쓰는 것에 몰두했던 과거와 달리 ‘잘’ 또는 ‘덜’ 쓰자 쪽으로 바뀌었다. 불필요한 소비는 최대한 자제하고 똑같은 물건이면 되도록 싸게, 어차피 사야할 땐 필요한 만큼만 사는 식이다. 트렌드의 변화에 발맞춰 다양한 신조어도 등장하고 있다. 짠테크, 염전족, 체리슈머, 노머니족 등이 대표적이다.

 

안 쓰는 대신 덜 써서 불황 견디는 20·30세대, “남들보다 잘 썼다고 생각되면 왠지 뿌듯”

 

‘체리슈머’는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유통업계 등에서 자주 언급되는 신조어 중 하나다. 체리피커(cherry picker)와 컨슈머(consumer)의 합성어인 이 단어는 케이크 위에 놓인 맛있는 체리만 쏙 빼먹는 것처럼 최적의 효율을 갖기 위해 전략적인 소비를 하는 이들을 지칭할 때 사용된다. 불황에 고금리 여파까지 겹쳐 쓸 돈이 적어지다 보니 소비 방식도 바뀌고 있는 것이다.

 

‘체리슈머’의 대표적인 소비 패턴으론 소량구매, 공동구매 등을 꼽을 수 있다. 소량구매는 말 그대로 필요한 만큼만 구매하는 것을 말한다. 마트에서 채소류를 팔 때 1회 요리분만 따로 포장해 판매하는 식이다. 공동구매 역시 단어 의미 그대로 소량구매가 불가능한 제품을 여러 사람이 함께 구매해 나누는 방식을 말한다. 여러 개를 사면 가격이 할인되는 제품을 구매할 때고 공동구매 방식이 사용된다.

 

효율적 소비가 목표인 ‘체리슈머’ 열풍은 또 다른 신조어도 낳고 있다. 런치노마드족, 금리노마드족, 핫딜노마드족, 로케팅족 등이 대표적이다. 런치노마드 족은 점심을 뜻하는 영어단어 ‘런치(lunch)’와 철학에서의 유목민적 사유를 뜻하는 ‘노마드(nomad)’의 합성어다. 각각의 단어 뜻 그대로 저렴한 맛집을 찾아다니며 점심을 해결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금리노마드족, 핫딜노마드족 등은 높은 금리의 예금을 찾아 가입과 해지를 반복하는 사람들, 특정시간에 대폭 할인하는 ‘핫딜’ 관련 정보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을 각각 지칭한다. 어려워진 주머니 사정을 감안해 약간의 수고로움을 감수하더라도 최대한 지출을 아낀다는 점에서 ‘체리슈머’ 열풍의 파생효과로 분류된다.

 

▲ 2030세대는 효율과 합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세대답게 무조건 참고 아끼기 보단 효율적 소비로 삶의 질 향상과 경제적 이익을 동시에 누리려는 의지가 강하다. 사진은 편집샵 내부.ⓒ르데스크

 

로케팅족은 생활비, 식비 등 반복적인 소비에선 최대한 지출을 아끼지만 아껴서 모은 돈으로 여행, 명품 등 자신이 관심 있는 특정 분야에 대해서는 선뜻 목돈을 쓰는 이들을 지칭하는 신조어다. 소비 자체를 줄이는 것과는 거리가 있지만 ‘아낄 땐 아끼고 쓸 땐 쓰는’ 효율적인 소비를 지향한다는 점에서는 체리슈머의 개념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스스로를 ‘체리슈머’라 일컫는 이들 중 상당수는 20·30세대다. 효율과 합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세대답게 무조건 참고 아끼기 보단 효율적 소비로 삶의 질 향상과 경제적 이익을 동시에 누리려는 의지가 강한 편이다. 무엇보다 체리슈머를 자처한 이들은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도 만족도도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남들 보다 똑똑한 소비를 했다는 부분에서 만족감이 극대화 된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직장인 홍수연 씨(31·여)는 “요즘 같이 경제가 어렵고 물가가 비쌀 때는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예전 같았으면 아예 안 쓰고 살았겠지만 요즘 세대는 아끼는 것만큼이나 삶의 질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결국 쓰긴 쓰되 최대한 절약해서 효과적으로 쓰는 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나도 그렇고 주변 친구들 대부분 여러 사이트를 둘러보며 가격비교를 하거나 핫딜 물건을 찾아다니는 건 기본이고 같은 물건을 찾는 사람들과 공동구매를 하기도 한다”며 “이런 식으로 돈을 잘 쓰고 나면 왠지 모를 뿌듯함과 함께 남들 보다 현명한 소비를 했다는 우월감을 느낄 때가 많다. 이러한 감정은 나름 중독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현대판 자린고비 염전족·짠테크족, 최대한 안 쓰는 것 넘어 아낀 돈으로 부수입 벌기도

 

‘잘’ 쓰는 게 목표인 체리슈머와 달리 ‘덜’ 쓰는 것을 목표로 삼는 소비자들도 적지 않다. 이른바 염전족, 짠테크족 등으로 불리는 이들이다. 두 단어 모두 소비에 있어 인색한 사람을 나타낼 때 흔히 사용하는 ‘짜다’라는 표현에서 파생된 신조어다. 이들은 특히 소비를 줄이는 것을 넘어 절약한 돈을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는 데 사용하는 치밀함까지 보인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지난해 구인·구직 플랫폼 알바천국이 전국 알바생 1228명을 대상으로 ‘나는 욜로족일까 염전족일까’라는 주제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자신을 염전족이라 답한 응답자의 비율이 19.5%에 달했다. 염전족과 반대 개념인 욜로족의 비율은 46%였다. 지난 2017년 비슷한 주제의 설문조사에서 욜로족의 비율이 59.6%에 달했던 것과 비교하면 최근 들어 소비트렌드가 크게 변화한 것으로 분석된다.

 

▲ 소비를 줄이기 위한 이들의 방식은 각양각색이다. 생활비 달력을 만들어 하루의 소비를 매일 점검하고 신용카드 대신 체크카드만 사용하는 등 다양하다. 사진은 자금관리 앱들 [사진=각 사 갈무리]

 

소비를 줄이기 위한 이들의 방식은 각양각색이다. 생활비 달력을 만들어 하루의 소비를 매일 점검하고 신용카드 대신 체크카드만 사용하는가 하면 각종 앱을 활용해 소액을 모으거나 쿠폰을 얻기도 한다. 유튜브, 넷플릭스 등 고정비가 들어가는 구독을 최대한 자제하는 한편, 요금제가 저렴한 알뜰폰으로 바꾸기도 한다. 한 알뜰폰 업체의 경우 가입자의 60%가 20·30세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염전족·짠테크족은 단순히 돈을 아끼는 것을 넘어 절약한 돈으로 새로운 수익을 올리는데도 적극적인 편이다. 돈을 버는 방식도 다양하다. 풍차돌리기 적금, 작심삼일 예금, 자투리 예금, 리워드앱 활용 등이 대표적이다. 풍차돌리기 적금은 은행이나 저축은행에서 매 달 1년 만기 적금 통장을 개설하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1년이 지나면 매 월 만기된 적금을 이자와 함께 받을 수 있다.

 

작심삼일 예금은 매주 월·화·수요일에 각각 1만원, 2만원, 3만원을 저축하고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진 저금을 하지 않는 방법이다. 매 주 같은 식으로 반복하면 1년 기준 약 300만원을 모을 수 있다. 자투리 예금은 매달 1일엔 1000원, 2일엔 2000원 등 하루가 지날 때 마다 1000원씩 액수를 늘려 저축하는 방법이다. 1년 기준 총 52주 간 137만8000원을 모을 수 있다. 이들 세 가지 방식은 반강제로 통장에 돈을 넣음으로써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이자수익까지 챙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리워드앱 활용은 일명 앱테크로도 불린다. 어플리케이션의 앞글자인 ‘앱(APP)’와 ‘재테크’의 합성어인 앱테크는 말 그대로 스마트폰 앱을 활용해 돈을 버는 것을 말한다. 최근 들어 리워드 시스템을 활용한 앱들이 우후죽순 등장하고 있는데 이를 잘 활용하면 쏠쏠한 부수입을 챙길 수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요즘 20·30세대는 과거 기성세대와 달리 경기가 안 좋거나 소득이 줄어도 소비 욕구를 억제하기 보단 한정된 자원(돈)을 효율적으로 사용해 욕구를 채우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며 “그들의 방식은 상당히 고차원적이며 지능적이다. 개인의 삶을 질 향상을 위해 약간의 수고스러움도 마다하지 않는 그들의 성향이 소비패턴에도 반영돼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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