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돌이-중동부자 넘나드는 불황형 ‘야누스 소비’ 뜬다
짠돌이-중동부자 넘나드는 불황형 ‘야누스 소비’ 뜬다
▲ 최근 최대한 아끼면서도 고가의 제품엔 선뜻 지갑을 여는 소비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모순된 소비 패턴을 보이는 배경에는 고금리 여파와 코로나19 사태의 진정이라는 두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사진은 인천국제공항 탑승장 전경. [사진=뉴시스]

 

최근 국내 소비시장에선 기존에 없던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최대한 아끼고 싼 걸 찾으면서도 고가의 제품엔 선뜻 지갑을 여는 모순된 모습을 보이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이른바 소비 양극화 현상이다. 급기야 이들 소비자를 일컫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양면성(ambivalent)과 소비자(consumer)의 영어 단어를 합친 ‘앰비슈머(Ambisumer)’라는 신조어가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다.

 

많은 소비자들이 모순된 소비 패턴을 보이는 배경에는 고금리 여파와 코로나19 사태의 진정이라는 두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금리가 오르면서 이자부담이 올라 실질적인 수입이 감소한 반면 코로나19에 눌려 있던 소비심리는 폭발해 절약과 과소비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아끼고 아껴서 모은 돈을 심리적 만족감을 느끼는 소비에 ‘올인(All-In)’하는 식이다.

 

적당한 제품은 외면 받는 시대…생존 방식은 “아주 싸거나 비싸도 아주 고급스럽거나”

 

식품·유통업계 등에 따르면 요즘 시장 분위기를 정리하면 ‘적당한 제품의 위기’로 표현된다. 예전과 달리 가격이나 품질 경쟁력을 갖춘 제품들이 소비자들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다. 대신 아주 싸거나 비싸도 고급스러운 제품들은 연일 상한가를 기록 중이다. 소비의 양극화가 그만큼 뚜렷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장 올해 설 선물 시장만 보더라도 소비 양극화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위메프가 지난 1∼13일 ‘2023 설프라이즈’ 기획전 판매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1만원 이상 5만원 미만의 가성비 제품 판매량이 전체의 69%를 차지했다. 10만원 이상 프리미엄 선물 세트의 판매량도 지난해 설 기획전 대비 29% 증가했다. 반면 중간 가격대인 5만~10만원대 선물은 판매량이 뚝 떨어졌다.

 

▲ 여행업계에 따르면 아주 저렴한 패키지 여행상품 혹은 수천만원이 넘는 고가의 프리미엄 여행상품이 동시에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심리적 만족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업종인 만큼 프리미엄 여행 상품의 인기 상승이 두드러지는 편이다. 사진은 하와이의 한 고급리조트 전경. ⓒ르데스크

 

정보기술(IT)·가전 시장에서도 ‘적당한 제품’의 외면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2019년 출시된 갤럭시 A71의 글로벌 출하량은 1250만대였지만 지난해 나온 A73의 출하량은 300만대 수준에 그쳤다. 해당 제품은 갤럭시S·Z시리즈, 저가 스마트폰인 A1~A5 제품의 중간격 모델이다.

 

애플도 최근 부품사들에 ‘2024년형 아이폰SE의 생산과 출하 계획이 취소됐다’고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이폰SE는 고성능 반도체에 저가형 디스플레이를 넣는 등의 방식으로 가격을 낮춘 중가 모델이다. 궈밍치 TF인터내셔널증권 연구원은 “아이폰SE 4세대 양산이 취소되는 이유는 중저가 제품 출하량이 꾸준히 하향세를 보이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여행업계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주 저렴한 패키지 여행상품 혹은 수천만원이 넘는 고가의 프리미엄 여행상품이 동시에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심리적 만족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업종인 만큼 프리미엄 여행 상품의 인기 상승이 두드러지는 편이다. 여행업계 등에 따르면 하나투어의 프리미엄 여행 시장을 겨냥한 맞춤 여행 브랜드 ‘제우스월드’ 매출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엔 코로나 이전 대비 70% 수준의 매출을 기록했을 정도로 빠른 회복세를 보였다.

 

▲ 전문가들에 따르면 최근에 나타나는 소비 양극화 현상은 고금리 여파로 소비가 줄어든 상황에서 코로나19 사태 진정으로 보복소비 심리가 살아나면서 생긴 현상으로 분석된다. 수입은 줄었는데 소비 욕구는 커지다 보니 아낄 수 있는 부분에서 최대한 아껴 평소 하고 싶었던 소비는 금액에 상관없이 꼭 하고야 마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설명이다. 사진은 편의점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한 청년의 모습. [사진=뉴시스]

 

하나투어를 시작으로 다른 여행사들도 잇따라 프리미엄 여행 상품을 출시하고 있다. 한진관광은 대한항공과 프리미엄 여행 브랜드 칼팍(KALPAK)을 운영 중이다. 상대적으로 비행기값 등이 비싼 서유럽 패키지 상품을 판매하는데 가격은 1000만원~2000만원 사이로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롯데관광개발도 1000만원대의 8박 10일 이집트 전세기 패키지, 800만원대의 6박 8일 스위스 비즈니스 패키지 등 럭셔리 상품을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수입 줄어도 소비욕구는 여전한 요즘 소비자들…“아낄 땐 아끼고 쓸 땐 화끈하게”

 

관련업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최근에 나타나는 소비 양극화 현상은 고금리 여파로 소비가 줄어든 상황에서 코로나19 사태 진정으로 보복소비 심리가 살아나면서 생긴 현상으로 분석된다. 수입은 줄었는데 소비 욕구는 커지다 보니 아낄 수 있는 부분에서 최대한 아껴 평소 하고 싶었던 소비는 금액에 상관없이 꼭 하고야 마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설명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소비심리가 되살아난 와중에 고금리 여파로 수입이 줄어들다 보니 소비의 양극화가 생겨났다”며 “특히 젊은 세대의 경우 자신이 좋아하는 특별한 제품에 대해서는 ‘플렉스(Flex)’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크기 때문에 가성비와 프리미엄을 동시에 추구하는 소비 양극화의 모습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는 편이다”고 설명했다.

 

▲ 산업계와 증권가에선 소비 양극화 현상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심리적 만족감을 얻기 위한 소비가 일상화 된 만큼 소비 가능한 수입이 줄어들더라고 소비성향을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사진은 서울시내 한 백화점 명품매장 입구의 모습. [사진=뉴시스]

 

소비자들의 반응도 전문가들의 분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직장인 홍은진 씨(28·여)는 “지금 사는 집 보증금 대출 이자가 오르다 보니 실질적인 수입이 줄어든 게 사실이다”며 “그래도 평소에 사고 싶었던 옷이나 가방 등을 포기할 순 없어서 점심값이나 교통비 등을 아껴서 모은 돈으로 사곤 한다. 아낄 수 있는 걸 아껴서 만족감을 느끼는 소비를 하는 게 똑똑한 소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가정주부 김수정 씨(35·여)는 “기존에 빌린 주담대 이자가 오르다 보니 아무래도 쓸 수 있는 생활비가 줄어든 게 사실이다”며 “그렇다고 아이들 옷을 저렴한 제품을 입히거나 음식을 싼 것을 먹일 순 없다. 결국 불필요하거나 아껴도 무방한 부분의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외식이나 취미생활은 최대한 자제하는 대신 해외여행이나 호캉스 등 경험적 만족도가 큰 부분에선 아끼지 않는 편이다”고 설명했다.

 

산업계와 증권가에선 소비 양극화 현상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심리적 만족감을 얻기 위한 소비가 일상화 된 만큼 소비 가능한 수입이 줄어들더라고 소비성향을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정소연 교보증권 연구원은 “올해는 작년 보다 소비둔화가 더욱 가속화 될 가능성이 높지만 그렇다고 양극화 현상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고 전망했다.

 

이은희 교수는 “최근 큰 손 고객으로 부상한 20·30세대는 소비에 있어서도 심리나 기분의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다”며 “결국 자신이 만족한 소비에 있어서 만큼은 아끼지 않는다는 의미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타인의 시선이나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많이 신경쓰는 만큼 보여지지 않는 부분은 최대한 아끼면서도 보이는 부분에 있어서는 통 큰 소비를 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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