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부활 꿈꾸는 ‘잃어버린 5년’의 망령들
[데스크칼럼]부활 꿈꾸는 ‘잃어버린 5년’의 망령들
▲ 오주한 정치부장

만주족(여진족)은 지금의 동북3성 지역 및 압록강‧두만강 유역을 터전 삼아 살아온 민족이다. 고대에는 숙신‧물길(勿吉)‧읍루‧말갈 등으로 불리었으며 거란족에게 복속된 뒤에는 여진이라는 호칭이 붙었다.

 

만주족은 우리 한민족과도 연관이 깊다. 일부 말갈 부족은 고구려를 섬긴 바 있으며 발해가 건국된 뒤에는 피지배층으로 복속됐다. 원나라의 학자 토크토아가 집필한 금사(金史), 남송 사람 묘요가 기록한 신록기(神麓記) 등에 의하면 만주족이 세운 금나라의 시조는 ‘신라’에서 왔다는 완안함보라는 인물이다.

 

일설에는 훗날 청태조 누르하치가 조선 조정에게 임진왜란 파병을 제안하면서 ‘조선은 부모의 나라’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비록 지난 2016년 12월 발간된 학술지 네이처에 청황실 후손 및 한민족의 유전자 형태가 다르다는 연구결과가 실리는 등 반론도 있다. 하지만 한반도 북부에서 오랜 기간 섞여 살았다는 점에서 한민족‧만주족의 연관성을 완전히 부인할 순 없다는 게 중론이다.

 

여러 주변 민족의 지배를 받으며 2등 시민의 설움을 겪어야만 했던 만주족은 무려 두 차례나 대륙을 정복한 근성의 민족이기도 하다. 내분을 겪던 여러 여진 부족들을 규합한 완안아골타는 거란의 요나라를 무너뜨리고 서기 1115년 금나라를 건국했다.

 

이 때 활약한 금나라 중갑기병은 마치 유럽의 그것을 연상시킬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요동에서 생산되는 질 좋고 풍부한 철기를 바탕으로 온 몸을 갑옷으로 감싼 기병들은 말(馬)에게도 두세 겹의 철갑을 입힌 채 3인1조로 돌격했다고 한다. 지금도 동북3성에서는 안산제철소 등이 활발히 가동되고 있다.

 

당초 부강했던 금나라는 점차 부정부패가 만연해지는 등 공직사회 기강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결국 건국 약 100년만에 파르티안 사법(Parthian shot‧달리는 말 등에 앉아 상체를 뒤로 돌려 활을 쏘는 궁술)을 앞세운 몽골제국에 의해 무기력하게 멸망했다. 만주족은 과거 여진족 시절의 행태를 교훈삼아 수백 년 뒤 태조 누르하치를 중심으로 발흥해 명나라를 제압하고 1616년 또다시 그들의 나라인 청나라를 세웠다.

 

만주족은 유목 중심인 몽골족 등과 달리 반농반목(半農半牧) 성향이 강했기에 농경사회의 생산력‧행정력과 유목사회의 전투력을 모두 갖출 수 있었다. 때문에 주변 문명사회 사람들은 “만주족 군대가 1만명을 넘으면 대적할 수 없다”고 두려워하면서 만주족이 강성해지면 강성해질수록 철저히 탄압했다고 한다.

 

이렇듯 영욕(榮辱)의 세월을 보냈던 만주족은 금나라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청나라 건국 초기에 철저한 부정부패 척결에 나서고 공직사회 기강을 다잡았다. 대표적 인물이 5대 황제인 옹정제다.

 

옹정제는 밤낮으로 정사(政事)를 돌보고 재상 황희의 노동력을 착취했던 세종대왕 못지않은 ‘워커홀릭’이자 ‘악덕고용주’였다. 그는 국고를 횡령하거나 백성의 재산을 착취한 이는 비록 자식이라 할지라도 용서하지 않고 모조리 처벌했다. 권력자가 일반백성에게 대납을 강요하지 못하도록 삭탈관직한 뒤 갈취한 돈은 한 푼 남김없이 모두 사재(私財)로 채워 넣도록 했다. 처형‧유배 등 중벌은 덤이었다.

 

실례로 향촌의 실질적 지배자로서 부정부패가 심각했던 각지 향신(鄕紳‧과거 합격자 또는 퇴직 벼슬아치)들은 “납세하면 대장부가 아니다”고 선언하면서 대놓고 탈세를 저질렀다. 향신의 자식들도 단체로 과거시험 응시를 거부하는 등 집단시위에 나섰다. 이에 옹정제는 아예 향신들의 임용자격을 모조리 말소하는 한편 그 자식들의 출사길을 영구히 박탈했다. 특히 죄질이 심한 향신들은 전부 체포해 관아에 압송했다. 결국 꿀 먹은 벙어리가 된 향신들은 백기 들고 항복했다.

 

옹정제는 나아가 자신이 직접 전국 각지의 보고서를 읽고 결재함으로써 공직자들이 무사안일에 빠지지 않도록 엄중 경계했다. 그는 감사(監査)에도 직접 팔을 걷어붙였다. 하루는 형부(刑部)의 한 관리가 알현하러 오자 “네 사무실 현판 잘 걸려 있냐”라고 물었다. 관리가 “잘 있습니다”라고 얼버무리자 옹정제는 “짐이 어제 떼 왔는데”라고 화를 버럭 내면서 관리 면상에 해당 현판을 투척(!)했다고 한다.

 

다른 관리는 어느 날 업무시간에 신나게 마작을 즐긴 뒤 복귀했다가 마작패 하나가 사라진 걸 깨달았다. 이튿날 옹정제가 “너 어제 일 빼먹고 뭐하고 놀았니”라고 묻자 얼어붙은 관리는 “마작하고 놀았습니다”라고 이실직고했다. 그러자 옹정제는 실종됐던 마작패를 주섬주섬 꺼내 관리 면상에 던진 뒤 “솔직히 실토했으니 이번만은 봐 준다”고 말했다. 이러한 옹정제의 노력으로 만주족의 청나라는 무려 약 300년 동안이나 이어질 수 있었다.

 

지난 정부 5년 동안 물밑에서 응축됐던 각종 오물들이 마치 하수구 터진 듯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입시비리‧감찰무마 등 혐의가 드러난 조국 장관은 최근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됐다. 그런데 그 딸은 마치 성난 민심을 조롱이라도 하듯 대놓고 유튜브방송에 출연해 웃으면서 “나는 죄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매국(賣國) 논란의 대북송금 등 십수가지 혐의를 입증할 증거‧증언들이 속출하는데도 “나는 정치탄압 피해자”라는 주장만 녹음기처럼 되뇌고 있다. 이 대표는 최근 위안부 피해자 갈취 의혹의 한 야권 정치인을 응원하기도 했다. 그의 강성지지자들은 온라인에서 떼 지어 몰려다니며 협박을 일삼는 등 도 넘은 팬덤정치를 과시하고 있다. 나라에서 돈을 보태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려견을 사실상 내다버렸던 전직 대통령은 유기견을 사랑한다며 달력팔이에 나서서 국민을 아연실색케 했다.

 

어렵사리 정부가 바뀌었지만 여당은 지난 세월의 고난들을 모조리 잊어버린 듯 국민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정상화 의지는 보이지 않고 국정사령탑 및 당 원로에 대한 원색적 비방, 차기 대권을 위한 당권 차지 욕심 등 정쟁(政爭)만이 난무한다. 검찰은 미적지근한 수사로 인해 부정부패 근절 의지가 있기는 한지 의구심을 사고 있다. 그 사이 지난 정부의 잔재들은 여론을 호도하면서 재기를 도모하고 있다.

 

만주족이 청나라를 세우고 300년이나 집권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금나라 실패에 대한 타산지석(他山之石)의 자세다. 유권자들은 응축된 적폐들에게 철퇴를 가하라고 지금의 여당 손을 들어줬다. 여권은 ‘잃어버린 5년’을 교훈 삼아 내부 적폐를 청산함과 동시에 국가정상화 의지를 국민에게 보여주고 국민 기대에 걸맞은 결과를 내놓음으로써 민심을 취해야 한다. 또 다시 국민을 실망에 빠뜨리는 우를 범해선 안된다. 내년 총선, 나아가 차기 대선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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