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악성종기로 더럽혀진 대한민국
[데스크칼럼]악성종기로 더럽혀진 대한민국
▲ 오주한 정치부장

필자는 요 며칠 사이 큰 곤욕을 치렀다. 매주 화요일 마감시간까지 올리던 칼럼이 부득이 늦어진 것도 그 때문이다. 이렇게 주말에 타이핑을 하게 된 이유는 엉덩이‧손가락‧두뇌‧의자의 물아일체 아래 집중해야 하는 글쟁이에게 있어서 생명과도 같은 둔부에 난 피부질환 때문이었다.

 

때는 설 당일이었던 음력 1월1일(양력 1월22일).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필자도 성묘를 위해 일가족과 함께 경북의 선산(先山)을 찾았다. 새벽 일찍 출발할 때는 의외로 도로가 막히지 않아 쾌적한 마음으로 일찍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오후 늦게 서울로 돌아올 때 생각지 못한 복병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늦은 식사를 위해 휴게소 식당에 앉는 순간 둔부 한 켠에서 느껴졌던 그 오묘한 느낌. 처음에는 장시간 차량 안 좁은 공간에 갇힌 탓이라 생각했지만 그건 오만의 발로였다.

 

둔부에 재앙이 닥친 건 자택에 도착하고 꿀잠을 잔 뒤 이튿날이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앉는 순간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 허리 아래쪽 신경을 습격했다. 마치 칼로 생살을 찢는 듯, 불로 생살을 지지는 듯한 통증이 엄습했다. 아침공기 마시기 위해 집밖에서 올려다 본 하늘이 분명 파란색이어야 했음에도 노란색이었을 정도의 진통이었다.

 

이후로는 앉든 서든 조금이라도 둔부 피부가 꿈틀거리기만 하면 번뇌의 연속이었다. 설상가상 몸이 으슬으슬해지고 삭신이 쑤시는 등 오한‧근육통마저 온 몸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입맛도 이상하게 변해 식사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혼미해진 정신을 부여잡고 휴대전화로 인터넷을 검색한 결과 필자의 둔부를 공격한 건 ‘종기’라는 녀석이었다. 세상에 종기라니.

 

놀란 가슴 추스른 필자는 아마추어 역사광답게 치료법도 찾을 겸 종기와 얽힌 옛 이야기들도 찾아봤다. 후백제 견훤, 조선 문종‧효종‧정조 등 역사상 수많은 영웅호걸들이 종기 앞에 백기 들고 요단강을 건넜다는 얘기들이 줄줄이 나왔다.

 

종기는 스트레스‧수면부족 등에 따른 면역력 약화가 주 발병요인 중 하나라고 한다. 직장인 누구나 스트레스가 일상인 오늘날에는 국민질환이 됐고 항생제 덕택에 치료가 쉽다곤 하지만, 드물게는 패혈증(敗血症)으로 발전해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다고 한다. 특히 오한 등의 증상이 겹칠 경우 병원 방문 후 시술이 권장된다고 한다. 집밖 하늘뿐만 아니라 안방 천장마저도 노래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절망의 문턱에 매달려 있을 무렵 눈에 띈 한 이름. 구세주 같은 그 이름은 바로 ‘이명래’였다. 이명래 선생(1890~1952)이 한의학‧중의학을 결합해 개발한 모 고약은 엉덩이 부여잡고 다 쓰러진 곰도 벌떡 일으켜 세울 정도로 종기에 탁월한 효능이 있었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이명래 선생이 일제(日帝)치하에서의 면허취득을 거부할 정도로 대쪽 같은 인물이었음에도 일본군 장교들까지 찾아와 엎드려 절 했다고 한다.

 

실례로 종기 때문에 생사가 오갔던 일본군 대좌(대령) 사사키는 이명래 선생 덕분에 두 번째 인생을 살게 되자 일제 측 입장에선 불법인 줄 알면서도 편법을 통한 면허취득을, 물론 이명래 선생은 거부했지만, 주선했다고 한다. 조선총독부 기관지 경성일보 기고문에서 “이명래 고약집에서 난 세 번 놀랐다”고 한 사사키는 인종차별주의자들 시선을 의식한 듯 “첫째는 가게가 너무 더러웠다”고 주장하면서도 “둘째는 치료비가 무척 쌌고, 셋째는 기가 막히게 잘 치료됐다”고 끝내 극찬했다고 한다.

 

한 줄기 광명이 내린다는 게 그런 의미일까. 필자는 인근 약국으로 필사적으로 달려가 이명래 선생이 개발했다는 모 고약 판매여부를 물었다. 다행히 해당 고약은 공장에서 대량생산 돼 시중에서 팔리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에도 몇 번을 고약을 붙였다 뗐다 반복하기를 수 일. 한 때 단테의 연옥(煉獄)에서 허우적거리며 ‘서서 쏴(일어서서 타이핑)’ 자세여야 했던 필자는 이 칼럼을 쓰는 지금 아주 편안한 자세와 마음으로 손가락을 놀리고 있다.

 

종기 치료 과정에서 얻은 건 건강뿐만 아니라 깨달음도 있었다. 오늘날 대한민국도 지옥과 천계(天界)의 경계에 서 있다. 가스비‧간첩단‧경제난 등 지난 정부‧여당에서 응축됐던 각종 오물들이 마치 악성종기가 웅크리고 있다가 면역력이 약해진 틈을 타 신체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듯이 지금에 와서 국가와 민생을 파탄으로 몰아넣고 있다.

 

많은 국민이 그렇겠지만 필자도 지난 정부 언론탄압 희생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지옥에서 천국으로 갓 넘어온 한 사람으로서, 이 땅의 수많은 종기환자들을 구원했던 이명래 고약 같은 특효약이 오늘날의 대한민국에 신속히 처방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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