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몰래 숨겨온 공공요금 시한폭탄, 결국 터졌다
국민 몰래 숨겨온 공공요금 시한폭탄, 결국 터졌다
▲ 국제 에너지 시세 급등과 전임 정부의 에너지 정책 실패가 맞물리면서 생겨난 가스요금 시한폭탄이 결국 터졌다. 난방수요가 늘어난 12월 가스요금 고지서를 받아든 서민들은 갑자기 오른 가스비로 생활비 부담이 커졌다고 입을 모았다. 사진은 한 건물에 부착된 도시가스 계량기. [사진=뉴스1] 

 

난방비 ‘고지서 쇼크’가 대한민국을 강타했다. 지난해 봄부터 가을까지 꾸준히 오른 도시가스 요금이 난방 수요가 급증한 겨울철이 돼서야 체감되기 시작한 것이다. 국제 에너지 시세 급등과 전임 정부의 에너지 정책 실패가 맞물리면서 생겨난 시한폭탄이 국민에게 전가된 것으로 분석된다. 여론 안팎에선 대선이 치러지기 이전, 즉 겨울이 끝나기 전에만 경고의 시그널을 줬다면 지금처럼 충격이 크진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의 목소리가 나온다.

 

난방비 폭탄에 패닉에 빠진 서민들…“작년에 30만원하던 가스비가 올해는 48만원”

 

지난해 초 발발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이후 국제 에너지 시세가 급등했다. 세계 각 국은 에너지 효율화 정책 기조에 발맞춰 국제 가격 인상 폭을 국내 에너지 요금 체계에 반영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가스공사는 도시가스 회사에 공급하는 도매가를 지난해 4월 메가줄(MJ) 당 0.43원 올린데 이어 5월 1.23원, 7월 1.11원, 10월 2.7원 등 네 차례에 걸쳐 총 5.47원 인상했다. 인상율은 42.3%에 달했다.

 

도시가스 도매가가 오르면서 각 가정에 공급되는 요금도 38.5% 올랐다. 신도시를 비롯한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 적용하는 열(난방·온수) 요금도 지난해 세 차례에 걸쳐 37.8% 상승했다. 인상 횟수는 적었지만 인상율은 거의 비슷한 셈이다. 열 요금은 도시가스 요금과 연동돼 가격이 책정된다.

 

도시가스 요금 인상 효과는 난방 수요가 급증한 겨울철이 되면서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12월 고지서가 날아든 이달 들어 난방비 부담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급격하게 늘었다. 들끓는 민심에 정부와 정치권은 부랴부랴 사태 진화에 나섰다. 여·야는 책임규명과 대책마련을 촉구했고 정부는 긴급처방 성격의 ‘난방비 절감 대책’을 발표했다.

 

▲ 대통령실은 최상목 경제수석(사진) 브리핑을 통해 ‘난방비 절감 대책’을 발표했다. 대책에 따르면 정부는 117만6000 가구에 대해 올겨울 한시적으로 에너지바우처(이용권) 지원 금액을 기존 15만2천원에서 30만4천원으로 2배 인상한다. 이와 별도로 사회적 배려 대상자인 160만 가구에 대한 가스비 할인 폭도 기존보다 2배 늘린다. [사진=뉴스1]

 

국민의힘 당권주자인 김기현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정부 때문에 난방비가 올랐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거짓말이자 적반하장의 극치다”며 “전기요금 인상은 문재인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주요 원인이다”고 주장했다. 송언석 원내수석부대표는 “LNG 도입 단가가 2~3배 이상 급등했는데도 불구하고 문재인정부가 가스비를 13% 정도밖에 인상하지 않아 누적적자가 크게 늘어났다는 점이 결정적 원인이다”고 진단했다.

 

민주당은 현 정부를 겨냥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정부가 전기·가스요금을 대폭 올리는 바람에 취약계층의 고통이 매우 심각하다”면서 “취약계층의 어려움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점을 정부 당국자들이 인식해주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윤석열정권은 민생이 파탄 지경인데도 경제에는 무능하고 안보는 불안하며 외교는 참사의 연속이다”며 “역대급 난방비 폭탄으로 집집마다 비명이 터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통령실은 최상목 경제수석 브리핑을 통해 ‘난방비 절감 대책’을 발표했다. 대책에 따르면 정부는 117만6000 가구에 대해 올겨울 한시적으로 에너지바우처(이용권) 지원 금액을 기존 15만2천원에서 30만4천원으로 2배 인상한다. 이와 별도로 사회적 배려 대상자인 160만 가구에 대한 가스비 할인 폭도 기존보다 2배 늘린다.

 

“난방비 폭탄은 이제 시작…아껴쓰는 습관 생활화 외엔 답 없다”

 

정치권과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여전히 민심은 들끓고 있다. 앞으로 파장이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유독 추운 날이 많았던 이번 달의 경우 작년 12월 보다 난방요금 부담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주를 이룬다. 통상적으로 2월까진 난방 수요가 높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정부의 긴급처방 외에 별도의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아울러 사전에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조치가 이뤄졌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 다수의 시민들은 가스비 인상도 인상이지만 갑자기 급격한 상승폭을 보인 것에 대한 부담을 토로하고 있다. 인상 요인이 발생하자마자 순차적으로 올렸으면 지금보단 충격이 덜 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사진은 한 대형마트에 비치된 보온시트 제품들. [사진=뉴스1]

 

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는 가정주부 이지숙 씨(45·여)는 “이번달 아파트 관리비 청구서를 받아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며 “평소보다 거의 50%는 더 나온 것 같다”고 운을 뗐다. 이어 “도시가스 요금이 작년 1월과 비교해 많이 올랐는데 공공요금마저 이렇게 오르면 수입이 뻔한 서민들의 삶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취약계층뿐 아니라 일반 서민들의 충격도 완화시켜줄 대책을 내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성북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양호열 씨(42·남)는 “여름엔 도시가스 사용량이 적다 보니 인상효과를 체감하지 못했는데 12월 청구서를 받고 나서야 엄청나게 올랐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됐다”며 “주변 이야기를 들어 보니 예전부터 인상 요인이 있었다고는 하는데 그동안은 왜 안올리다가 작년에 한꺼번에 올렸는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미리 조금씩 올렸더라면 충격이 이정도 까진 아니었을 것이다”며 “요금부담 때문이라도 난방기기 사용을 줄이고 했을 텐데 갑자기 인상이 이뤄지다 보니 충격이 더 큰 것 같다. 이번 난방비 쇼크 사태는 문제를 알고도 덮었던 전임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본다”고 꼬집었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성난 민심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당장의 효과만 노린 미봉책이 아닌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에너지 소비 습관을 고치지 않는 상태에서 혈세만 퍼붓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경고했다. 앞으로도 국제 에너지 가격 인상 가능성이 높은 만큼 모든 국민이 자발적으로 에너지를 아끼는 습관을 들이도록 정부가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 다수의 전문가들은 에너지 소비 습관을 고치지 않는 상태에서 혈세만 퍼붓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경고했다. 앞으로도 국제 에너지 가격 인상 가능성이 높은 만큼 모든 국민이 자발적으로 에너지를 아끼는 습관을 들이도록 정부가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사진은 전기장판 제품을 살펴보고 있는 한 시민의 모습. [사진=뉴스1]

 

유승훈 서울과기대 창의융합대학장은 “가스·전기요금 인상은 전 세계적인 에너지 위기 상황 속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면서 “지금 요금을 올리지 않으면 공기업 적자 누적으로 결국은 다시 국민 부담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부터라도 에너지 효율화 정책 등 국민이 자발적으로 부담을 줄여나갈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현재 세계 각 국은 국제 에너지 가격 인상에 발맞춰 자국 내 가스 요금을 인상해 자연스럽게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도록 유도했다”며 “반면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전기·가스요금에 대한 정부의 간섭이 심해 원가가 요금에 적정하게 반영되지 않았고 한계치에 도달해 지금과 같은 사태에 직면했다. 지금부터라도 국민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현재 우리 정부는 각 부처별로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한 대책 마련에 돌입한 상태다. 일례로 산업통상자원부는 국민의 난방비 절감 관련 현장 지원을 위한 ‘난방효율개선지원단’을 긴급 설치했다. 지원단은 기관별 지역사무소를 활용해 전국 17개 광역지자체 단위의 지원팀을 구성하고 난방 효율이 낮은 대상 단지·가구를 발굴해 개선 방안을 컨설팅할 계획이다.

 

공급자별 효율개선지원 안내센터도 운영한다. 특히 지원단은 중앙집중식 난방설비를 보유한 아파트 가운데 오래된 보일러가 설치된 단지를 대상으로 노후 보일러·배관 긴급 점검을 할 예정이다. 개별 가구를 대상으로는 난방 절약 방법, 보일러 점검, 친환경 보일러 교체 지원금 등 효율 개선 사업을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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