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대북송금 매국깡패와 모래시계 검사
[데스크칼럼]대북송금 매국깡패와 모래시계 검사
▲ 오주한 정치부장

권력과 결탁하고서 금품향응을 제공하고 나라를 어지럽힌 정치깡패의 역사는 유구하다. 그 중에는 심지어 상전과의 이해득실이 들어맞아 적국과 내통하면서 이윤을 추구한 사례도 있었다. 대표적 인물이 명나라 시기 후기왜구(또는 가정왜구‧嘉靖倭寇)였던 해적 왕직(?~1559)이다.

 

후기왜구의 특징은 그 구성원에 있어서 약탈국인 일본인 해적들보다 피(被)약탈국 출신 해적들이 더 많았다는 점이다. 명사(明史) 일본전(日本傳)에 의하면 후기왜구 중 일본인은 약 30%에 불과했다. 휘주 흡현 사람인 왕직도 피약탈국인 명나라 출신으로서 일본인 흉내내기를 즐겨했던 가왜(假倭) 중 하나였다.

 

일본도‧조총 등으로 무장한 왜구는 조선은 물론 명나라까지도 수시로 침략하면서 학살과 약탈을 일삼고 있었다. 가정제(嘉靖帝) 재임 시기(1521~1566)에만 침략횟수가 601차례에 이르렀다. 일부 왜구는 아예 몇 년이고 명나라 영토에 눌러앉은 채 비단공장 등을 점거하고서 기술자들을 협박해 값비싼 재화를 뽑아냈다고 한다. 자연히 왜구의 조총 아래 가족과 재산을 잃은 백성들의 눈물은 마를 날이 없었다.

 

그런데 왕직은 왜구의 동족학살에서 ‘일등공신’임을 자처했다. 1540년 부하들과 함께 초석‧유황‧명주‧목면 등을 일본에 팔아넘기면서 폭리를 취한 것이었다. 이 중 초석 등은 다름 아닌 흑색화약 제조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핵심재료였다.

 

당시 일본이 제대로 된 초석 산지(産地)가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던 차에 왕직이 제 손으로 그 귀한 화약재료를 갖다 바친 것이었다. 초석은 일본에게 있어서 그 어떤 재물보다도 중요한 전략물자였다. 왕직은 왜구들 사이에서 밀무역계의 ‘VIP’로 통했으며 명나라에서는 만인(萬人)이 증오하는 공공의 적이 됐다.

 

두고 볼 수 없었던 명나라 조정은 대군을 급파해 왕직 세력의 거점을 초토화했다. 하지만 왕직은 동족학살 일등공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서 잔당을 모아 세력을 한 층 불려나갔다. 그가 왜구들과 함께 건조한 거함(巨艦)은 2000명이 승선할 수 있었으며 선상에서 말(馬)이 내달릴 수 있었다고 한다.

 

왕직은 원활한 밀무역을 위해 정계에 로비하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전국다이묘(戰國大名)였던 마쓰라 다카노부와 손잡고 규슈 히젠국의 히라도섬을 거점으로 할양받았다. 기록에는 명나라 조정에도 줄을 대 관부(官府)와 결탁했다고 나온다.

 

왕직의 뒷배였던 명나라 관리가 누구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왕직과 이해득실을 함께 하면서 나라를 팔아먹으려 했음은 분명하다. 이 배후의 파워가 얼마나 든든했는지 왕직은 급기야 송(宋)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휘왕(徽王) 또는 정해왕(淨海王)을 자처하기까지 했다. 조정의 재가 없이 칭왕(稱王)하고서 백성을 핍박하는 건 구족(九族)을 멸할 중죄였음에도 거칠 게 없을 정도로 왕직과 그의 ‘오야붕’은 매국에 혼을 쏟아 부었다.

 

결국 왕직의 악행은 호종헌이라는 대쪽 같은 인물에 의해 종결을 맞았다. 절강순안감찰어사(浙江巡按監察御史)로 파견된 호종헌은 해적무리의 뇌물‧협박에 굴복하지 않은 채 우선 버젓이 호화생활을 누리던 왕직의 가족 신변을 확보했다.

 

가족의 무사는 물론 자신에게 해상무역권을 정식 부여한다는 거짓정보를 접한 왕직은 귀국해 “나는 난을 일으키려 한 적 없다”고 변명했다. 그러나 화약재벌‧정치깡패 왕직에 의해 가족과 재산을 잃어야만 했던 민심은 분노로 들끓었다.

 

왕직은 목이 떨어질 때까지도 “나는 국가를 위해 도적을 내쫓았지 도적이 아니다”는 어이없는 주장을 하거나 “이 땅에서 죽을 줄은 몰랐다”며 끝까지 제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왕직을 구하기 위해 명나라를 침공한 왜구 세력은 훗날 임진왜란에서도 큰 효과를 보인 원앙진(鴛鴦陣)의 창시자 척계광에 의해 축출됐다. 기록에는 없지만 왕직의 배후도 천참만륙(千斬萬戮)의 대가를 피해가지 못했을 것임은 분명하다.

 

이 땅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정치깡패의 존재 정황이 다시 확인됨에 따라 여론이 들끓고 있다. 속옷재벌인 이 인물이 정계거물에게 변호사비를 대납하거나, 해당 거물과 결탁하고서 ‘주적’ 북한에 속옷 팔아 번 돈을 전달했다는 대북송금 혐의가 드러나면서 국민들 충격은 커지고 있다. 북한에게 있어서 달러는 마치 그 옛날 왜구의 초석과도 같은 위상을 가진다.

 

호종헌과 같은 기개는 물론 과거 정치깡패가 개입한 슬롯머신 사건을 수사해 6공 황태자를 전격 구속했던 ‘모래시계 검사’의 결기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진다. 수사당국은 추상같은 국민의 명령을 받들어 정치깡패‧매국깡패와 그 배후를 끝까지 발본색원(拔本塞源)함으로써 이 땅에 정의가 살아있음을 입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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