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신현영 의원이 보여준 ‘위선의 정치’ 결말
[데스크칼럼]신현영 의원이 보여준 ‘위선의 정치’ 결말
▲ 오주한 정치부장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이태원 닥터카 탑승’ 논란이 거세다. 분초를 다투며 사고현장으로 달려가야 할 닥터카를 자택 앞까지 불러 남편과 탑승함으로써 도착시간을 수십분 지연시킨 뒤 정작 현장에서는 인증샷만 찍고 15분만에 자리를 떴다는 의혹이다.

 

이를 두고 신 의원이 사망자들 목숨을 담보로 자신의 인지도를 올리려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진다. 수백년 전 닥터카 탑승 논란과는 정반대의 내용인 한 청백리(淸白吏)의 이야기는 신 의원의 행태가 얼마나 심각한 잘못인지 새삼 깨닫게 한다. 

 

청파(靑坡) 기건(?~1460)은 조선 초기의 문신이다. 어려서부터 책읽기를 즐겨했던 그는 입신양명에는 뜻을 두지 않은 채 유유자적한 삶을 살았다. 이러한 기건의 문망(文望)과 덕행은 입소문을 타고 한양에까지 퍼졌다. 세종은 그를 포의발탁(布衣拔擢‧과거시험을 거치지 않는 특별 관리임용)한 뒤 제주목사(牧使)직을 제수했다.

 

한양에서 한참 떨어진 것은 물론 풍랑을 뚫고 목숨 걸고 부임해야 하는 제주도는 당시 변방 중의 변방이었다. 조선시대 공직자에게 제주 벼슬살이는 곧 유배나 다름없었다. 따라서 이곳을 임지로 받은 관리로서는 일할 의욕은커녕 백성을 위하는 척하면서 조정에 얼굴도장 찍고 인지도를 올릴 필요성조차 없었다.

 

하지만 기건은 달랐다. 1443년 제주목사 기건이 부임하자 아전들은 앞 다퉈 귀한 전복요리를 진상했다. 기건이 이를 물리치자 아전들은 그저 ‘입맛에 맞지 않나보다’ 생각하고는 더는 권하지 않았다. 그러나 입 대지 않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전복을 먹으면 먹을수록 고된 물질에 나선 해녀들의 고생도 배가 될 것이 뻔하기에 일부러 고개를 흔든 것이었다.

 

조정의 가시거리 밖인 제주였건만 기건은 참사현장에서 발 벗고 뛰었다. 1445년 제주에선 한센병(나병)이 크게 번졌지만 제대로 된 치료시설‧의료인력이 없었다. 때문에 전염을 두려워한 현지인들은 환자가 생기면 부모‧처자식이라 할지라도 내쫓아 스스로 죽도록 했다.

 

집에서 내쫓긴 뒤 삶을 비관해 절벽에서 투신한 어느 청년의 사연을 접한 기건은 즉각 행동에 나섰다. 그는 용두암 해변에 격리치료소인 구질막(救疾幕)을 설치하고 가족에게서 버림받은 100여명을 수용했다. 또 피부병 치료제인 고삼원(苦蔘元)을 달여 마시게 하고 끓인 바닷물로 온 몸을 소독토록 했다. 이로 인해 상당수 환자들이 완치될 수 있었다.

 

기록에는 없지만 기건의 인품을 볼 때 그가 수시로 현장에 나아가 치료를 독려했을 것임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기건은 목사 임기가 끝나고 육지로 돌아갈 때 환자들이 울면서 전송하자 불결하다고 피하는 대신 이들의 손을 맞잡았다고 한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 오로지 애민(愛民)정신에 입각한 산간오지에서의 물밑선행이었지만 도리어 기건의 명성은 크게 퍼졌다. 조선왕조는 그에게 호조참판‧대사헌 등의 벼슬을 내려 중용하고 사후 정무(貞武‧청렴결백하고 절개를 지키며 백성에게 모범이 돼 복종시킨다)라는 시호를 내렸다. 조선왕조실록은 기건에 대해 “성품이 맑고 검소‧정고(貞固)하다”고 평가했다.

 

기건의 이야기에서 보듯 결국은 위선보단 진심이 통하게 돼 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분명 시간이 흐르고 나선 진실은 밝혀지게 돼있다. 위선엔 온갖 잡음이 따라 붙지만 진심엔 묵직한 칭찬만 남는 탓이다. 신 의원의 행보에서 각종 의혹과 논란이 따라붙는 이유는 아마 전자 쪽에 가깝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기세도명(欺世盜名, 세상 사람을 속이고 헛된 명예를 탐한다)’이라는 사자성어가 다시금 주목받는 것도 같은 이유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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