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긋지긋한 공장맞춤형 근로제도 드디어 바뀌네요”
“지긋지긋한 공장맞춤형 근로제도 드디어 바뀌네요”

 

▲ 노동개혁 과제 발굴을 위해 지난 7월 구성된 ‘미래노동시장연구회’는 근로시간과 임금체제 개편을 골자로 하는 정부 권고안을 발표했다. 권고안 발표 후 일부 반발의 목소리가 나오곤 있지만 긍정적 여론이 대다수라 정부의 권고안 수용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사진은 미래노동시장연구회 회의장 모습. [사진=뉴스1] 

 

일찌감치 노동시장의 대수술을 예고했던 윤석열 대통령이 마침내 메스를 꺼내 들었다. 노동시장 개혁의 싱크탱크 임무를 부여 받은 연구기관의 정부 권고안이 발표됨에 따라 머지않아 정책 적용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권고안 자체가 기존 제도를 송두리째 뒤흔들만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는 점에서 야당과 노동계 반발에 의한 시행 차질 가능성을 예측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권고안의 제도 적용 가능성은 여전히 높게 점쳐진다. 노동개혁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확고한데다 미래 노동시장의 주축 세력인 청년세대의 반응이 대체로 긍정적인 탓이다. 르데스크 취재 결과, 대다수의 청년 직장인들은 기존의 노동정책이 과거 제조업 공장 중심의 근로형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새롭게 등장한 내용들은 현재 산업 생태계의 현실을 적절히 반영하고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尹정부 노동개혁 싱크탱크, 근로자·사업주 모두 불만인 근로시간·임금체계 개편안 발표

 

노동개혁 과제 발굴을 위해 지난 7월 구성된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이하 미래연)는 12일 노동시장 개혁 관련 정부 권고안을 발표했다. 전문가 12인으로 구성된 연구회는 출범 후 약 5개월 간 정부에 제안할 노동개혁 과제를 논의해왔다. 이번에 발표한 권고안의 핵심 내용은 크게 2가지로 나뉜다. 근로시간과 임금체계 개편이다.

 

우선 근로시간 개편은 연장근로시간의 산정단위를 현행 주(週)단위에서 월·분기·반기·연 단위로 확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단위를 다원화해 업종별, 사업장별 특성에 맞게 노사가 자율적으로 협의해 적용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산정단위를 확대할 경우 주당 12시간을 넘지 못하도록 주 단위로 묶여 있어 업종·산업·사업장별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기 어려운 현행 제도의 허점을 보완할 수 있다는 게 미래연의 설명이다.

 

실제로 계절별 편차가 뚜렷한 업종일 경우 일감이 몰리는 시기와 그렇지 않은 시기가 확연히 차이가 나는데도 산정단위가 정해져 있어 근로시간을 임의로 조절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았다. 직원은 추가수당을 받기 위해 일을 더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고 사업장은 업무 숙련도가 낮은 계약직을 추가로 채용해야 했다. 그러나 산정단위가 확대되면 분기 단위로 연장근로시간을 산정해 일감이 많을 때 근로시간을 늘리고 적을 때 쉬는 게 가능해진다. 직원은 직원대로 수입을 늘릴 수 있고 사업장은 추가채용의 수고로움을 덜 수 있게 된다.

 

미래연은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 확대에 따른 근로자의 건강권을 확보를 위한 방안도 동시에 내놨다. 관리 단위를 확대할 경우 연장근로시간의 총량을 비례해서 줄이는 한편 근로일 간 11시간의 연속 휴식 부여를 의무화하는 방안이다. 현행법상 분기(3개월)로 따지면 156시간의 연장근로가 가능한데 분기 단위로 관리할 경우 법이 허용하는 범위(156시간)의 90%인 140시간만 근로하게끔 하는 식이다. 또 반기 단위는 총 312시간의 80%인 250시간, 연 단위는 625시간의 70%인 440시간까지만 연장근로가 허용된다.

 

▲ [그래픽=석혜진] ⓒ르데스크

 

미래연은 근로자가 일하는 날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출·퇴근 시간도 근로자가 결정할 수 있도록 선택적 근로시간 정산 기간도 전 업종에 3개월 이내로 확대하는 방안도 내놨다. 현재는 연구개발 업무 외에는 1개월로 제한돼 있다는 데 이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를 도입해 연장근로시간을 저축했다가 휴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개선도 권고했다.

 

미래연은 고령화 시대에 대비하는 동시에 청년 고용까지 늘릴 수 있는 임금체제 개편 방안도 내놨다. 나이가 많을수록 무조건 많은 월급을 가져가는 현행 호봉제를 개편해 직무·성과급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직무와 역할, 성과, 숙련도 등에 따라 임금을 조정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통해 고령자의 계속 고용을 꾀해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 이후 70년간 유지돼 온 임금체계 개편을 성사시키려면 근로자 부분 대표제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는 노조가 회사와 협상을 통해 직무나 직군 등과 관계없이 획일적으로 임금체계를 적용하는데 부분 대표제가 되면 특정 직무나 직군, 부서 단위로 업무 특성에 맞게 임금체계를 자율적으로 선택해 적용할 수 있다. 한 회사에 여러 개의 임금체계가 공존할 수 있는 것이다.

 

노동개혁의 핵심 동력 청년세대 “현행 제도는 공장맞춤형, 대대적인 수술 대환영”

 

미래연의 이번 발표는 사회적인 이슈로 급부상했다. 이해관계자들도 각기 다른 반응을 내비치며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야당과 노동계, 시민사회 단체 등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야당인 민주당은 미래연의 권고안에 대해 ‘저임금, 장시간 노동 체계 회귀 시도’라는 날 선 반응을 보였다. 양대노총도 즉각 입장문을 내고 미래연의 개혁안이 장시간 노동 체계로의 회귀는 물론, 임금의 하향 평준화, 노동의 질 개악 등이 우려된다고 비판했다.

 

반면 경제계는 100% 만족 입장은 아니지만 제도의 연착륙 가능성까지 고려한다면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찌감치 노동개혁 추진 의지를 피력해 온 윤 대통령은 권고안을 토대로 정부 입장 조속 정리해 개혁을 추진하겠다며 미래연의 주장에 힘을 보탰다.

 

 

▲ 다수의 청년들은 주52시간제, 호봉제 등이 실정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공정과도 거리가 멀다는 반응을 보였다. 사진은 청년 직장인들의 모습. [사진=뉴스1] 

 

노동시장의 이해관계자 중 하나이자 정책 추진 동력이 될 청년세대의 반응 또한 대체로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장시간근로 산정단위 변경, 호봉제 폐지 등 그동안 역대 정권에서 매번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끝내 시도하지 못했던 이번 노동개혁의 핵심 내용에 대해 대체로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대부분 기존 제도가 실정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공정과도 거리가 멀다는 반응을 보였다.

 

서울 소재 한 대기업에 재직 중인 홍승철 씨(33·남)는 “우리나라 노동 관련 제도나 법은 예전 산업화 시기에 만들어진 탓에 공장 근로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지금처럼 일의 효율을 중요하게 여기고 개개인의 성향을 중요시하는 사회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더 많이 일해서 돈을 더 많이 벌고 싶은 사람이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는 것인데 지금 제도는 개개인의 니즈를 전혀 반영하고 있지 않다”며 “그런 측면에서 이번 근로시간 개편안은 상당히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서울소재 한 디자인 회사에 재직 중인 유은희 씨(35·여)는 “디자인 업무 특성 상 프로젝트를 수주함과 동시에 곧장 업무가 시작되고 별도의 프로젝트가 없을 땐 크게 하는 일이 없다”며 “그런데 주 52시간 제도가 시행된 이후에는 일이 밀려 있을 때도 억지로 퇴근해야 할 때가 많아졌다. 우리 일은 천천히 고민하는 시간도 많아야 하는데 제도 때문에 시간에 떠밀려 완벽한 작품을 내놓지 못할 때도 많아져 성취감도 그만큼 적어졌다”고 토로했다.

 

이어 “예전부터 일이 많을 때 바짝 일하고 일이 없을 때 푹 쉬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자주했는데 앞으로 지긋지긋한 공장맞춤형 근로제도가 바뀐다고 하니 너무 잘됐다는 생각이 든다”며 “이제 우리나라도 공장만 가동하는 게 아니라 서비스·연구 분야도 많이 선진화 됐기 때문에 그에 걸맞은 근로제도 도입이 시급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경기도 소재 한 중소 제조업체에 재직 중인 김영준 씨(29·남)는 “사실 지금 일하고 있는 회사를 보면 단순 작업이 대부분이라 젊은 직원의 생산성이 훨씬 높다”며 “그런데도 연차가 높은 직원들은 단순히 오래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더 많은 월급을 받는다. 과연 지금과 같은 호봉제가 공정한 것인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고 전했다. 이어 “이번에 성과 중심의 임금체제로 개편한다고 하는데 아마 기업 생산성이나 근로자들의 업무의욕 고취에 상당히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부연했다.

 

미래연은 이번 권고안은 우리 사회에서 조속히 해결돼야 할 시급과제라며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라도 정부가 빠른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래연 좌장인 권순원 숙명여자대학교 교수는 “제안된 권고와 추가 과제에 시급히 대응하지 못하면 우리 노동시장은 경쟁력을 잃어갈 것이고 인적 자원의 역량과 가치는 위축될 것이다”며 “정부도 상황의 절박함에 공감하고 제안된 개혁 과제를 꾸준하고 신속하게 추진해달라”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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