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만 가격 하한선이라니…그럼 제조·서비스는요”
“물류만 가격 하한선이라니…그럼 제조·서비스는요”

 

▲ ‘안전운임제’를 둘러싼 논란이 점화되고 있다. 총파업까지 불사할 정도의 엄청난 혜택을 특정 분야에만 부여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사진은 총파업 출정식 중인 화물연대 조합원들. [사진=뉴스1]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이하 화물연대)의 총파업을 계기로 ‘안전운임제’를 둘러싼 논란이 점화되고 있다. 총파업까지 불사할 정도의 엄청난 혜택을 특정 분야에만 부여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화물기사의 안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안전운임제’라는 모호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사실상 ‘최저가격 보장제도’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게 결정적 이유다.

 

그동안 화물연대 총파업이나 안전운임제 등에 관심이 없었던 일반 국민조차 해당 제도에 대해 불합리하다는 반응을 내비치고 있다. 시장 거래에 있어 가격이란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의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인데 하한선을 정한다는 개념 자체가 잘못됐다는 주장이다. 안전운임제의 논리대로라면 외식업 분야의 메뉴 가격, 제조업의 제품 가격 등도 전부 하한선을 정해야 한다며 이는 곧 소비자 부담을 키우는 행위라는 게 여론의 중론이다.

 

5개월 만에 또 거리로 나선 화물연대, 정부·산업계 “극단적 이기주의…강경대응 취할 것”

 

국토교통부, 재계 등에 따르면 화물연대 소속 조합원들은 24일 0시부터 무기한 전면 총파업에 돌입했다. 총파업에 참여한 화물 근로자 수는 화물연대 추산 약 2만5000명이다. 이날 오전 10시 전국 16개 지역에서 동시에 총파업 출정식을 가진 후 시위를 벌였다. 이번 총파업에는 화물연대에 가입하지 않은 일부 기사들도 동참한 것으로 전해졌다.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 영구화 △적용 차종과 품목을 기존 컨테이너·시멘트 외에 철강재, 자동차, 위험물, 사료·곡물, 택배 지·간선 등 5개 품목으로 확대 등을 요구한 상태다. 이 중 핵심은 안전운임제다. 지난 6월 총파업 당시 국토부가 안전운임제 연장과 품목 확대를 약속했지만 말을 바꿨다는 게 화물연대의 주장이다.

 

안전운임제란 시멘트, 레미콘, 컨테이너 등의 화물차주가 지급받는 최소한의 운임을 공표해 이들의 적정 임금을 보장하도록 하는 제도다. 최저임금제도와 흡사한 개념이다.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8년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과 함께 일몰제(유효 기간이 정해진 법)로 도입된 제도다. 당초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간 시행 후 폐지될 예정이었다.

 

지난 6월에 이어 불과 5개월여 만에 벌어진 화물연대 총파업에 정부와 산업계는 크게 우려하고 있다. 물류운송에 차질이 빚어질 경우 산업현장에 엄청난 혼란이 찾아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 윤석열 대통령은 화물연대 총파업을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물류 시스템을 볼모로 잡는 행위’로 규정하며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을 포함하여 여러 대책들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사진은 화물연대 총파업으로 한산해진 부산항 입구. [사진=뉴스1]

 

대한상의,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무역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제 6단체는 성명을 통해 “최근 우리 경제는 고물가·고환율·고금리의 복합위기를 맞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와 국회, 기업과 근로자 등 모든 경제 주체의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다”면서 “수출경쟁력을 악화시키는 화물연대의 일방적인 운송거부는 즉각 철회하고 안전운임제는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우려한 정부는 강경대응 카드를 꺼내 들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화물연대 총파업을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물류 시스템을 볼모로 잡는 행위’로 규정하며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을 포함하여 여러 대책들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어 “차량의 진출입을 차단하고 정상 운행에 참여한 동료를 괴롭히는 것은 타인의 자유를 짓밟는 폭력 행위다”며 “지역별 운송거부, 운송방해 등의 모든 불법적인 행동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하게 대응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주무부처 수장인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도 강경 대응 기조를 명확히 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운송 거부와 방해가 계속된다면 국토부는 국민이 부여한 의무이자 권한인 운송 개시명령을 국무회의에 상정할 것임을 미리, 분명히 고지해두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어 “화물연대가 안전을 내세워 자신의 소득을 일방적으로 올리려 하고 국토부의 수십차례 소통 노력을 호도하는 것은 국민 이해를 받지 못할 것이다”며 “불법에 대해 일체 용납 하지 않고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히 대응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에 따르면 운송사업자나 운수종사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화물운송을 집단 거부해 화물 운송에 커다란 지장을 주는 경우 국토부 장관이 업무개시를 명령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운수종사자가 이를 거부하면 3년 이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아직까진 운송개시명령이 발동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안전운임제 도입은 직군·직종 차별…서비스업·요식업·제조업 등 100% 안전 어디 있나”

 

이번 화물연대 총파업은 기존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과거와 달리 일반 국민까지 이례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체감 경기가 크게 악화된 상황에서 화물연대 파업이 고통을 더욱 가중시킬 수 있다는 우려감이 반영된 결과로 분석된다. 동시에 파업의 발단이 된 안전운임제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그동안은 관심이 덜해 개념 자체를 몰랐는데 실체를 알고 보니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내용의 제도라는 지적이 많다.

 

▲ 여론 안팎에선 화물연대 총파업의 발단이 된 안전운임제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그동안은 관심이 덜해 개념 자체를 몰랐는데 실체를 알고 보니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내용의 제도라는 지적이 많다. 사진은 한 레미콘 공장의 모습. [사진=뉴스1] 

 

서울 용산구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병준 씨(45·남·가명)는 “그동안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는데 얼마 전 우연히 왜 파업하는 지를 듣고 깜짝 놀랐다”며 “안전운임제 때문이라던데 그 내용을 보니 참으로 가관이더라. 물류비용의 하한선을 보장해준다는 내용인데 아닌 말로 안전 때문이면 세상에 위험하지 않은 일이 어디있나. 그런 개념이면 우리 같이 식당일 하는 사람도 화상 위험을 안고 하는데 음식 가격도 하한선을 보장해야 하는것 아니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기도 소재 한 중소기업에 재직 중인 안승우 씨(33·남)는 “안전운임제는 용어부터가 잘 못 됐다고 본다. 엄밀히 따지면 ‘최저화물비 보장제’ 쪽에 가깝지 않느냐”라며 “그렇게 따지면 우리 같이 제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항상 위험성을 안고 사는데 제조업 제품에도 최저가격을 보장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꼬집었다.

 

충남 소재 한 사업체를 운영하는 홍미진 씨(44·여·가명)는 “용역이나 서비스, 제품 등의 가격은 수요가 공급보다 많을 땐 올라가고 적으면 내려가는 식으로 결정되는 것 아니냐”며 “그런 것 상관없이 최저가격이 보장되면 결국엔 소비자들만 피해를 입게 된다”고 꼬집었다. 이어 “만약에 물류에만 이런 제도가 적용되면 나중엔 다른 업종에서도 도입을 요구할텐데 결국 최종 피해자는 선량한 국민이 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 역시 일반 국민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무역협회 정만기 부회장은 “호주가 2016년 안전운임제를 도입했다가 2주만에 폐기했었다. 인프라 투자 비용이 많이 들고 차주들 일감이 줄었기 때문이다. 현재 호주 뉴사우스 웨일즈주에서 시행하고 있지만, 과태료 처분이 없는 권고 수준이다”고 설명했다.

 

전경련 권태신 부회장은 “안전운임제가 시행되는 동안 안전운임제 대상인 사업용 특수차 사고는 오히려 8% 늘었다”며 “정부가 가격에 직접 개입하면 반작용이 더 크다. 세상에 유례없는 규제를 하는 건 소수 기득권자의 이기주의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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