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황건적의 난’ 연상케 한 종교인의 일탈
[데스크칼럼] ‘황건적의 난’ 연상케 한 종교인의 일탈
▲ 오주한 정치부장

구약성경 레위기에는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사랑하듯 하라”는 말이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 20조는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못 박고 있다. 때문에 많은 성직자들이 생명존중‧정교(政敎)분리 원칙을 지키면서 만민의 존경을 받고 있다.

 

그런데 최근 한 종교인이 ‘대통령 전용기 추락 기원’ 취지의 글을 SNS에 버젓이 올려 모두를 아연실색케 했다. 성인(聖人)의 가르침을 따른다는 종교인이 본류를 벗어나 현실정치에 참여하려 할 경우 빚어지는 폐해도 새삼 주목받는다.

 

서기 2세기경 후한(後漢) 말기 인물인 장각은 도교 일파인 태평도의 교주였다. 본래 도교는 치자(治者)의 자세인 공수신퇴(功遂身退‧공을 이루면 권력에 집착하지 말고 물러나야 한다), 무위자연(無爲自然‧순리를 거슬러 백성을 도탄으로 몰아넣지 말라) 등 노자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했다.

 

그런데 후한시대 인물인 우길이 창시한 태평도부터 조금씩 기복신앙적인 면모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태평도는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중환자에게 부적 태운 물을 마시게 한 뒤 완쾌되지 않으면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몰아갔다.

 

이러한 태평도 교리를 배운 장각은 백성들을 현혹해 세력을 불려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공수신퇴‧무위자연이라는 도교 본류의 정신도 망각한 채 마각을 드러냈다. “창천이사 황천당립, 세재갑자 천하대길(蒼天已死 黃天當立, 歲在甲子 天下大吉‧푸른 하늘이 이미 죽었으니 마땅히 누른 하늘이 서고 갑자년에 천하가 크게 길하리라)”이라는 저주의 구호를 외치며 황건적(黃巾賊)의 난을 일으켜 만백성을 피비린내 나는 전란으로 몰아갔다.

 

혹자는 ‘천하가 크게 길하리라’ 등을 두고 황건적의 난이 천하만민을 위한 기의(起義)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상 목적은 철저히 장각 자신의 ‘권력욕’이었다.

 

우선 장각은 스스로를 천공장군(天公將軍)이라 칭한 뒤 동생 장보‧장량을 각각 지공장군(地公將軍)‧인공장군(人公將軍)에 봉했다. 천하 의사(義士)들을 중용하는 대신 일가족 위주로 조직을 지배한 것이었다. 앞서 400년 전 진나라 말기에 난을 일으킨 진승‧오광이 이성(異姓) 군벌들을 중용한 점과 비교하면 황건적의 난이 얼마나 기의와 거리가 먼 지 알 수 있다.

 

결정적으로 장각은 겉으로는 만민을 구제한다면서 민생악화 주범인 십상시(十常侍)와 은밀히 접촉해 주변을 아연실색케 했다. 거사에 앞서 제자 마원의‧당주 등을 수도 낙양에 보낸 뒤 환관 봉서‧서봉에게 막대한 뇌물을 안기고 반란 성공을 위한 내응을 요구한 것이었다.

 

이는 황건적의 난이 장각 한 사람의 정치권력만을 위한 폭동임을 자인(自認)한 것이나 다름없는 행태였다. 장각이 정말 현인인 줄 믿고 따랐던 제자들 일부도 이 어처구니없는 행보에 혀를 내둘렀다. 멀리 갈 것 없이 환관들에 대한 거사일자 통보 임무를 맡을 정도로 장각이 신임했던 당주마저도 변심하고 낙양 입성 직후 조정에 고변(告變)할 정도였다.

 

당주의 배신으로 인해 서둘러 반란을 일으킨 장각은 천하를 생지옥으로 몰아갔다. 그는 정교분리 원칙을 어기고 ‘하느님’을 뜻하는 천공 칭호를 사용하며 스스로를 지배자 반열에 올린 뒤 제 정치권력 확충에만 골몰했다.

 

그 사이 장각의 반란군은 백성을 제 자신처럼 아끼고 보호하는 대신 “믿음이 없기 때문에 죽여야 한다”고 자기합리화하며 가는 곳마다 무자비한 약탈‧학살을 벌였다. 아비규환(阿鼻叫喚) 끝에 후한 말기 약 5000만명에 달했던 인구는 서진(西晉) 시기에 600만명 정도로 급감했다.

 

‘대통령 전용기 추락 기원’ 논란을 일으킨 문제의 종교인을 두고 공교롭게도 야당은 침묵하고 있다. 전국 곳곳에서 ‘죽음을 기원하는 성직자’ ‘3류 정치인’ 등 비판과 우려가 속출한다. 이 사건이 제발 ‘한국판 황건적의 난’ 시발점(始發點)은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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