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아이 현실 배려 쏙 빠진 반쪽짜리 출산대책
부모·아이 현실 배려 쏙 빠진 반쪽짜리 출산대책

[Le view<146>]-결혼을 피하는 이유(①-육아휴직) 부모·아이 현실 배려 쏙 빠진 반쪽짜리 출산대책

육아휴직 기피 고질적 문제 해결 요원, 짧은 휴직기간도 문제

르데스크 | 입력 2022.11.10 17:25

 

▲ 최근 현행 육아휴직 제도를 두고 예비 부모들의 볼멘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제도 자체가 이해관계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 없이 다소 강압적인데다 유연성도 부족하다 보니 육아휴직 사용 시점부터 종료 시점까지 ‘고민의 연속’이라는 이유에서다. 사진은 세종시의 한 어린이집을 찾은 윤석열 대통령. [사진=뉴스1]

 

출산을 앞둔 예비 부모와 이제 갓 아이를 낳은 초보 부모들은 현행 육아휴직 제도에 대한 불만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제도 취지에는 공감하나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많아 효과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제도 자체가 이해관계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 없이 다소 강압적인데다 유연성도 부족하다 보니 육아휴직 사용 시점부터 종료 시점까지 ‘고민의 연속’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육아휴직 쓰나 안 쓰나 결국엔 퇴사…보기에만 그럴싸한 반쪽 정책”

 

출산을 3개월 앞둔 홍은진 씨(29·여)는 요즘 들어 부쩍 고민이 많아졌다. 10명 안팎의 직원이 일하는 작은 회사에서 자신이 빠지면 나머지 동료들에게 돌아가는 업무 부담이 상당할 수밖에 없고 그렇다고 새로운 직원을 채용하기엔 회사 사정이 녹록치 않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1년 넘게 자리를 비우는 동안 직원을 채용하지 말라고도, 그렇다고 자신의 빈자리를 메울 새로운 직원을 채용하라고도 말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셈이다.

 

정부에서 육아휴직을 허용한 회사에 지원금을 준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회사의 기회비용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것도 홍 씨의 걱정거리다. 현행 육아휴직 기업지원금 제도는 최초 3개월 간 월 200만원을, 이후엔 월 30만원을 각각 지원한다. 단 육아휴직 허용 후 6개월 이상 고용을 유지해야 한다. 6개월 내 직원의 자발적인 이직이 있으면 자격이 박탈된다.

 

홍 씨는 “사실 내 입장에서 보면 육아휴직 제도는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다”며 “회사 사정을 뻔히 알고 동료들의 고충이 눈에 선한데 어떻게 나만 좋자고 육아휴직을 쓸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이어 “고민은 하지만 어차피 답은 나와 있다”며 “회사에 파격적인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 한 후임자를 뽑도록 하고 나는 나중에 상황이 나아지면 그 때 새로운 회사에 입사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서울의 한 대기업에 다니는 유성은 씨(36·여)는 약 2달 전 육아휴직 종료기간에 맞춰 회사에 복직했지만 여전히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출산을 위해 휴직을 한 이후 기존 부서에 새로운 인원이 충원되면서 복직 후 유 씨는 새로운 부서에 배치됐다. 기존과 전혀 다른 업무를 익혀야 하지만 퇴근 후 육아를 하다 보니 아무래도 습득이 더딘 편이라 주변 동료들에게 미안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 [그래픽=석혜진] ⓒ르데스크

 

특히 주변 동료들이 자신을 불편해하는 느낌을 받을 때엔 눈치까지 보여 스트레스가 상당하다. 결혼 전에는 회사 내에서도 나름 일 잘하는 직원으로 인정받았는데 지금은 중요한 일에서 배제되는 경우도 잦아졌다. 회사에서 스트레스가 쌓이다 보니 퇴근 후 남편과의 다툼도 부쩍 늘었다. 낮에 아이를 봐주는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유 씨에겐 큰 부담이다.

 

유 씨는 “남들은 큰 기업에 다니면서 마음편이 육아휴직 쓰고 복직까지 해서 돈을 버는 데 무슨 걱정이 있냐고 하겠지만 정말 모르고 하는 소리다”며 “아이를 가진 시점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도 남 눈치를 안 본 적이 없다”고 호소했다. 이어 “육아휴직 제도가 출산율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것처럼 알고 있는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며 “일부 도움이 되겠지만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선 결국엔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사실 나와 같은 문제는 단순히 근로자에 대한 지원만으론 한계가 있다고 본다”며 “회사에 어떤 정책적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 한 회사 입장에서도 육아 휴직자에 대한 배려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유 씨는 “육아휴직을 허용한 기업에 파격적인 세액공제 등 특별한 인센티브가 부여되지 않는 한 아무래도 배려를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다”고 피력했다.

 

“육아휴직 기간 달랑 1년, 아직 말도 못 하는 갓난아이 두고 출근이 가능한가”

 

대기업 계열 항공사 승무원으로 재직 중인 이윤정 씨(37·여·가명)는 육아휴직 종료를 앞두고 어렵게 퇴사를 결심했다. 여성이 많은 업종 특성 상 다른 기업에 비해 육아휴직 제도가 잘 정착돼 있지만 현실 여건 상 회사를 다니기가 어려워진 탓이다. 이 씨는 육아휴직 기간이 1년 밖에 되지 않다보니 이제 갓 돌 지난 아이를 두고 복직한다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친정이나 시댁에 아이를 맡길까도 고민했지만 장거리 비행이 잦아 한 달에 보름 이상은 갓 돌 지난 아이와 24시간 내내 떨어져 있는 게 맞나 싶어 이내 생각을 접었다. 육아 도우미를 고용할까도 고민했지만 최근 인건비가 너무 올라 사실상 회사에서 받는 월급 중 상당 부분을 도우미 인건비로 줘야하다 보니 경제적 측면에서 회사를 다니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었다.

 

 

▲ 갓 출산한 부모들은 현재 1년으로 정해진 육아휴직 기간을 두고 너무 짧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이제 갓 돌이 지난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 자체가 불안하다는 지적이다. 사진은 서울의 한 산부인과 신생아실. [사진=뉴스1]

 

이 씨는 아이가 2돌 정도만 지났어도 가벼운 마음으로 복직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 회사에 무급휴직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결국 이 씨는 남편과의 상의 끝에 회사를 그만 두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여전히 심난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특히 나중에 나를 위한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 지가 가장 큰 고민이다. 남편과 결혼 전 아이를 두명 낳기로 한 약속도 제대로 지킬 수 있을지 선뜻 확신이 서지 않는다.

 

이 씨는 “육아휴직 기간 1년은 사실 너무나 짧다고 생각한다”며 “1년이면 아이가 이제 갓 돌을 지났을 때인데 아무리 육아시설이 잘 발달돼 있다 해도 말도 못하는 아이가 하루 종일 엄마와 떨어져 있으면 어떤 심정이겠나”라며 “특히 우리 같은 특수 직종들은 출·퇴근 개념이 없기 때문에 사실상 아이와 생이별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육아휴직 제도 덕분에 안심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어차피 결과가 매한가지라면 있으나 마나한 제도라고 생각한다”며 “직종이나 직군 별로 육아휴직 기간에 차등을 두거나 아예 일괄적으로 육아휴직 기간을 연장하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성토했다.

 

올해 출범한 윤석열정부도 현행 육아휴직 기간이 짧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한 모습이다. 정부는 지난 6월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저출산 대책으로 육아휴직 기간을 현재의 1년에서 1년 6개월로 반년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행 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기간을 연장하기 위해서는 남녀고용평등법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 개정이 필요한데 아직까지 이렇다 할 구체적 내용은 없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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