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이리교자의 무리들
[데스크칼럼] 이리교자의 무리들
▲ 오주한 정치부장

‘이세교자(以勢交者) 세경즉절(勢傾則絶), 이리교자(以利交者) 이궁즉산(利窮則散)’이라는 말이 있다. 수나라의 유학자 왕통의 언행을 기록한 문중자(文中子)에 나오는 구절이다. 바로 “세력으로 뭉친 자는 세력이 기울면 배신하고, 이익으로 뭉친 자는 이익이 다하면 배신한다”는 뜻이다.

 

전국시대의 사상가 장자의 가르침을 기록한 장자(莊子)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장자는 “군자(君子)의 사귐은 물처럼 담담하지만 소인(小人)의 사귐은 단술처럼 달콤하고, 군자는 담담하게 긴 인연을 맺지만 소인은 단맛이 다하면 단번에 인연을 끊는다”고 말했다.

 

고래(古來)로 이익만으로 뭉친 자들은 서로에 대해 배신에 배신을 거듭해왔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이전투구(泥田鬪狗) 싸움 끝에 공멸을 면치 못했다. 대표적 사례로는 기원전 7세기 춘추시대 제나라를 막장으로 몰아넣은 암군 양공이 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등에 의하면 양공은 즉위 때부터 사리사욕만을 추구했다. 희공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에게는 이중년이라는 숙부가 있었다. 동생인 이중년이 사망하자 슬퍼한 희공은 조카인 공손무지와 아들인 양공을 동등하게 대우했다. 이에 불만을 품었던 양공은 희공이 숨지고 옥좌에 앉자마자 공손무지를 멀리 내쫓아버렸다.

 

양공이 사욕만을 좇는 사이 국운(國運)은 크게 기울었다. 사마천은 그에 대해 “많은 사람을 함부로 죽이고 처첩과 난잡한 행실을 저질렀으며 백성을 속이기 일쑤였다”고 혹평했다.

 

양공의 최대 막장행각은 다름 아닌 ‘근친상간’이었다. 양공은 오래전부터 이복여동생인 문강과 간통을 저지르고 있었다. 문강이 노나라 환공에게 시집간 뒤에도 두 사람의 관계는 은밀히 이어졌다. 기원전 694년 환공과 문강이 제나라를 방문하자 양공은 또다시 이복여동생과 침실로 향했다.

 

천륜(天倫)을 저버린 천인공노할 현장을 목격한 환공은 대경실색했다. 그가 이 ‘검은머리 짐승들’을 처단하기 위해 거병(擧兵)할 목적으로 귀국하려 하자 양공은 그제야 공포에 사로잡혔다. 양공은 끝내 환공을 제거하기로 마음먹고 희대의 역사(力士)였던 팽생을 끌어들였다.

 

양공은 사죄한다는 명목으로 환공에게 술을 대접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상태였던 환공은 끝내 만취하고 말았다. 그를 부축하기 위해 다가갔던 팽생은 껴안는 척하며 엄청난 완력으로 환공의 갈비뼈를 부러뜨려 살해했다.

 

양공과 운명공동체가 된 팽생은 부귀영화(富貴榮華)를 기대했다. 그러나 돌아온 건 하늘같은 권세와 산처럼 쌓인 재물이 아닌 토사구팽(兔死狗烹)이었다. 부친의 석연치 않은 죽음을 의심하던 환공의 아들 장공은 양공을 찾아가 따지며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여전히 처벌이 두려웠던 양공은 “내가 시킨 게 아니라 팽생이 제멋대로 한 짓”이라고 덮어씌운 뒤 팽생을 죽여버렸다.

 

은폐된 진실 앞에 양공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심신(心身)이 피폐해진 채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팽생은 어느 날 양공이 사냥에 나서자 복수에 착수했다. 멧돼지로 분장해 매복하고 있던 팽생은 양공을 기습했으며 놀란 양공은 신발 한 짝마저 잃어버린 채 궁궐로 도주했다.

 

설상가상으로 과거 양공에게 쫓겨났던 공손무지도 마치 팽생과 약속하기라도 한듯 군사를 이끌고 궁궐을 습격했다. 양공은 옷장에 숨었지만 공교롭게도 그 앞에는 앞서 잃어버렸던 신발 한 짝이 떨어져 있었다. 머리채가 잡힌 채 끌려나온 양공은 민생을 도탄에 빠뜨리고 인륜(人倫)을 저버린 죄로 목이 떨어졌다. 오로지 사리사욕만으로 뭉친 최측근 팽생과 함께 배신에 배신을 거듭하다가 끝내 비참하게 목숨을 잃은 것이었다.

 

‘단군 이래 최대 부패사건’으로 일컬어지는 개발특혜 사건 등 각종 범죄의혹 연루자들의 이전투구가 근래 볼거리다. 검찰 수사망이 조여오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의 측근으로 알려졌던 유동규 전 성남도시공사 본부장은 결국엔 태도를 바꿔 이 대표를 ‘몸통’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앞서 이 대표는 유 전 본부장을 두고 “모르는 사람”이라는 취지로 주장한 바 있다. 

 

두 사람의 진실공방을 두고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와 같은 대의가 아닌, 오로지 일신(一身)의 권세‧이익만을 목적으로 뭉쳤던 세력의 당연한 말로라는 평가가 나온다. 통일신라 말기의 학자 고운(孤雲) 최치원은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에서 “어리석은 자는 이치를 거슬러 패한다”고 일갈했다. 당나라 시기 난을 일으킨 황소(黃巢)는 이 격문을 읽다가 너무 놀라 침상에서 굴러 떨어졌다고 한다. 오늘날 이세교자‧이리교자의 무리들의 각성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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