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배신의 아이콘’의 비명소리
[데스크칼럼] ‘배신의 아이콘’의 비명소리
▲ 오주한 정치부장

적국과 손잡고 내부총질을 일삼다가 끝내 배신했음에도 친정 복귀에 성공한 사례는 예나 지금이나 흔치 않다. 망은배의(忘恩背義)라는 말처럼 한 번 배신한 자는 쉽게 은혜를 잊어버리고 언제든 재차 배신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라이벌정당과 손잡고 자당(自黨) 대통령 탄핵에 앞장선 뒤 중도를 기치로 독립했다가 실패를 맛본 끝에 겨우 복당한 행위가 재조명되고 있다. 최근 또 다시 라이벌정당과 박자를 맞춰 내부총질에 나섰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앞서 해당 행위자에 대해 복당을 허용할 때 단단한 안전장치를 마련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위‧촉‧오 삼국시대 인물인 맹달이 떠오른다. 촉한(蜀漢)의 한중왕 유비 수하였던 맹달은 주군의 양아들과 권력다툼을 벌이고 주군의 의형제 사망을 방치했다가 위나라에 투항한 인물이다. 적국에서 중용돼 친정을 몰아세우던 그는 입지가 위태롭게 되자 다시 촉한 복귀를 허락받았지만 제갈량은 철저한 안전장치를 마련해 거듭된 배신을 응징했다.

 

정사(正史) 삼국지 등에 의하면 맹달은 옹주 부풍군 미현 사람으로 기근을 피해 촉(익주)으로 피난한 뒤 익주자사 유장을 섬겼다. 동료였던 장송‧법정 등이 촉 땅을 유비에게 바치려 하자 적극 가담했으며 유비의 입촉(入蜀) 후에는 의도태수에 임명됐다.

 

서기 219년 한중에서 벌어진 결전에서 유비가 조조에게 승리하고 한중왕이 되자 맹달은 상용군 평정 임무를 맡았다. 유비의 양아들 유봉과 함께 상용태수 신탐의 항복을 받아내는 공을 세웠지만 유봉과 화합하지 못하고 그를 시기‧질투하며 사사건건 충돌했다.

 

나아가 형주를 지키던 관우가 조조를 치기 위해 북벌(北伐)에 나섰다가 손권의 후방기습으로 위기에 처하자 원군을 보내는 대신 죽음을 방치했다. 이렇듯 내부총질을 일삼던 맹달은 유비가 책임을 물을 조짐이 보이자 수만 명의 부곡(部曲)을 이끈 채 망설임 없이 위나라에 투항했다.

 

유비의 한중공방전 승리와 한중왕 등극, 관우의 북벌 등 잇따른 악재에 시달리던 위나라는 촉한 사정에 훤한 맹달을 중용했다. 조조의 아들 조비는 맹달을 자신의 수레에 태우거나 제후에 봉하는 등 후대했다. 또 상용‧방릉‧서성 등 3개 군(郡)을 묶어 신성군을 신설한 뒤 맹달을 그곳 태수로 임명했다.

 

무려 위나라의 서남쪽 방어 임무를 전부 맹달에게 일임한 것이었다. 맹달은 나아가 위나라 상장(上將) 서황 등과 함께 상용을 공격해 유봉을 축출하기도 했다. 이렇듯 적군과 손잡고 친정을 위기로 몰아넣던 맹달이었지만 조비가 사망하고 위나라 조정대신들이 자신을 경계하자 또다시 두 마음을 품었다.

 

맹달은 227년 촉한 승상 제갈량이 위나라를 겨냥해 북벌에 나서자 거사를 결심하고 투항의사를 내비쳤다. 형주마저 잃어버리고 오로지 촉 땅의 전력만으로 거대한 위나라를 상대해야 했던 촉한은 맹달의 항복을 반겼다. 만약 맹달의 내응이 성공한다면 단숨에 위나라의 서남쪽 영토를 차지하고서 역적인 조씨 일족 턱 밑에 비수를 들이댈 수 있었다.

 

그러나 제갈량은 조비와 달랐다. 손바닥 뒤집듯 너무나 쉽사리 배신을 일삼던 맹달이 북벌 과정에서 재차 마음을 바꾼다면 전군이 출격해 텅텅 빈 본국(本國)이 맹달의 군마 앞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 있었다. 상용은 익주‧형주‧사례(司隸) 3개 주(州)를 잇는 교통요충지 중의 요충지였다.

 

이에 제갈량은 맹달의 거사라는 모험에 승부를 거는 대신 안전을 우선시했다. 맹달이 변심하지 못하도록 수하를 시켜 신탐의 동생 신의에게 모반 계획을 흘린 것이었다. 이미 위나라에 충성하던 신의는 곧바로 이 중대기밀을 조정에 보고했다. 실제로 맹달은 조비의 아들 조예가 ‘너를 믿는다’는 취지의 뜻을 전하자 거병하는 대신 좌고우면(左顧右眄)하는 등 배신의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신용도 제로’의 이 꼴을 본 위나라 표기장군 사마의는 그대로 기습을 가해 상용을 공격했다. 맹달의 생질(甥姪‧누이의 아들) 등현은 망설임 없이 성문을 열고 삼촌을 팔아먹었다. 맹달은 농성(籠城) 십수일만에 사로잡혀 참수됐으며 수급(首級)은 저자거리에 조리돌림 당한 뒤 백성들이 보는 앞에 불태워졌다. 피아(彼我)가 합작해 희대의 배신자를 처단한 셈이었다.

 

라이벌정당과 손잡고 돌이킬 수 없는 내부총질을 벌인 뒤 실체를 알 수 없는 중도를 표명하며 독립하고서 실패를 거듭하다가 친정에 복귀한 후 근래 ‘배신의 행보’에 나선 정치인들을 두고 맹달을 연상케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정당은 누구 한 개인의 것이 아닌 뜻을 같이하는 만인(萬人)의 소유물이다. 제 성질에 맞지 않다고, 제 권력욕을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해서 공동체에 대한 배신을 거듭하는 건 결국 맹달처럼 천하만민 앞에서 제 신용도만, 제 명줄만 깎는 처사다. 배신의 정치 이전에 상용성에서 울려 퍼진 배신자의 비명소리를 진지하게 되새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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