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하철역에 마련된 운동 공간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 역에서 옷을 갈아입은 뒤 한강으로 달려 나가거나 회사 근처 코트에서 점심시간을 활용해 풋살을 즐기는 식이다. 단순히 시설을 둘러보기 위해 찾는 것이 아니라 평소 운동과 여가생활에 필요한 공간으로 지하철역을 활용하는 모습이다.
서울시는 지하철 유휴공간을 운동·문화시설로 바꾸는 ‘펀스테이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여의나루역은 러닝 준비 공간으로 쓰이며 뚝섬역에는 헬스·트레이닝 시설이 운영된다. 먹골역에는 체력 측정·스크린 파크골프 시설이 있고 광화문·회현·월드컵경기장역에는 러너지원공간이 마련됐다. 시청역과 을지로입구역 사이에는 K-문화 스테이션이 들어섰다. 운동 코트와 정원·휴게공간을 갖춘 문정역 조성에는 서울시 예산 약 50억원이 투입됐다.
서울시가 안내한 여의나루역 물품보관함 기본요금은 4시간 기준 소형이 평일 2200원·주말 3100원이다. 중형은 각각 3300원·4600원이며 기본시간을 넘기면 추가 요금이 붙는다. 탈의 공간을 이용하고 소형 보관함에 짐을 맡긴 뒤 야외에서 달린다면 평일 기본 지출은 2200원이다. 여의나루역에서 만난 서민후 씨(29·남)는 운동에 드는 지출을 이용 이유로 꼽았다. 서 씨는 “요즘 같은 불경기에 보관함 이용료만 내면 운동을 즐길 수 있어 좋다”며 “마침 가을이라 달리기 좋은 날씨가 됐다”고 말했다.
회현역 러너 지원공간을 찾은 박규석 씨(34·남)는 운동 전후 이동이 편리하다는 점을 꼽았다. 박 씨는 “역에 내려 바로 옷을 갈아입고 운동하러 갈 수 있어 좋다”며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도 편리하다”고 말했다. 회현역 러너지원공간 인근 상인도 평일 오후와 주말에 이용객이 찾는다고 설명했다. 회현역 시설은 개찰구 안에 자리해 남산 일대에서 달리는 시민들이 지하철 이동과 운동 준비를 연결할 수 있는 위치다.
무료 러닝 강습에도 시민들의 참여가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가 지난 4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광화문역·회현역·월드컵경기장역에서 러닝 프로그램 95회가 진행됐으며 총 1147명이 참여했다. 입문자 수업부터 장거리 달리기를 준비하는 과정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된 결과다. 탈의실과 파우더룸 등 운동 전후 편의시설을 이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해진 일정에 맞춰 강습을 받으며 운동을 배우려는 수요도 나타난 셈이다.
뚝섬역 시설 운영업체가 공개한 일반 헬스 1개월권 가격은 7만5000원이다. 인근 민간 헬스장 한 곳의 공개 가격인 1개월 8만원보다 5000원 낮아 약 6.3% 저렴하다. 월 구독권은 첫 달 2만9900원이며 이후에는 월 3만9900원으로 안내됐다. 일일 이용권은 1만5000원이다. 뚝섬역 핏스테이션을 찾은 김민지 씨(33·여·가명)는 평소 지하철역을 오가다 시설을 발견했다. 김 씨는 “오며 가며 보고 이런 곳이 있구나 싶어 찾아왔다”며 “가격도 집 인근 헬스장보다 저렴한 것 같아서 한번 체험하려 한다”고 말했다.
문정역에서는 회사 동료들과 풋살을 즐기러 나온 이용객을 만날 수 있었다. 서준 씨(34·남)는 “회사가 근처라 동료들과 운동하러 나왔다”며 “가격도 저렴하고 위치도 좋아 점심시간에 와서 운동하기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퇴근 후나 주말에 시간을 따로 내기보다 근무지 인근에서 점심시간을 활용해 운동을 즐겼다.
문정역 다목적코트의 기본 이용료는 50분에 1만원이다. 같은 송파구의 성내천 풋살장은 평일 주간 기준 2시간에 4만원으로 안내돼 있다. 이용 시간이 달라 분당 기본요금으로 환산하면 문정역은 200원·성내천은 약 333원으로 문정역이 약 40% 낮다. 구장 규모와 시설 조건은 다르지만 대관 기본요금에서는 차이가 났다. 문정역에서 10명이 비용을 나누면 50분 이용에 1인당 1000원을 부담하며 10명을 초과하면 추가 요금이 붙는다.
문정역에서 만난 주민구 씨(42·남)는 아이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방문했다고 설명했다. 주 씨는 “아이와 함께 나들이로 자주 온다”며 “이렇게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니 시민 입장에서는 좋다”고 말했다
문정역 주변 상인들은 새 공간을 찾는 방문객이 상가 이용으로 이어질지 지켜보고 있었다. 인근에서 8년간 장사한 유성혁 씨(52·남)는 “아직 체감하지는 못했지만 주변 상인들은 상권이 활성화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며 “앞으로 공연도 많이 진행한다고 해 내심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용객들이 현재 느끼는 비용과 이동 편의에 맞물려 상인들은 상권 효과에 기대하고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불경기 속에서 고가의 헬스장이나 전용 스포츠 시설 대신 접근성이 우수하고 비용 부담이 적은 지하철역 인프라를 활용하려는 소비자들의 합리적 선택이 눈에 띈다”며 “일상적인 이동 경로 내에서 운동과 휴식을 동시에 해결함으로써 시간적·경제적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경향이 강화된 것이다”고 분석했다.
이어 “지하철역 유휴공간의 재탄생은 단순히 빈 곳을 채우는 것을 넘어 시민들에게 생활 밀착형 복지 공간을 제공하는 의미가 크다”며 “향후 이러한 공간이 단순 편의 제공에 그치지 않고 주변 지하상권과의 연계성을 높일 수 있는 다채로운 문화·체육 콘텐츠로 확장된다면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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